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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인근 '마녀의 도시'로 유명한 세일럼과 해양 국가유적지(Salem Maritime National Historic Site)

위기주부 2021. 9. 8.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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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득한 옛날에 "국보1호 남대문, 보물1호 동대문, 사적1호 포석정" 이렇게 외워야 했던 적이 있다. (이제는 남대문과 동대문은 각각 숭례문과 흥인지문으로 불러야 하며, 몇 호라는 지정번호도 곧 사용하지 않는다고 함) 미국에 국가지정 보물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고, 미국 국립공원들 찾아다니기 좋아하는 위기주부의 버전으로 하자면 "1st National Park는 옐로스톤, 1st National Monument는 데블스타워, 그런데 1st National Historic Site는 어디지?" 해당 분류의 국립공원을 정의하는 법이 통과된 후에 최초로 지정되었다는 것은 그 만큼 객관적으로 중요한 곳이라는 뜻이므로, 미국에서 첫번째 '국가유적지'로 지정된 장소를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보스턴에서 약 15마일(25 km) 정도 북동쪽에 있는 세일럼(Salem)에 도착해서, 중심가의 넓은 공영주차장에 주차하고 사람들을 따라 걸으니 바로 국립공원청의 비지터센터가 나왔다. 성같은 고딕양식의 입구에 '세일럼아모리(Salem Armory)'라고 새겨져있는 이유는, 이 장소가 1636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미국 땅에서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군대조직인 메사추세츠 방위군(Massachusetts National Guard)과 관련이 있던 병기고와 훈련장으로 사용되었던 곳이기 때문이지만, 이 바닷가 마을에 미국 최초의 국가유적지가 생긴 이유는 따로 있다.

"이렇게 큰 NPS 로고가 그려진 카페트는 어디서 샀지?" 안으로 들어서면서 이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던 것 같다~^^ 뉴잉글랜드 지역의 600년이 넘는 해양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1938년 3월 17일에 미국 최초의 '내셔널히스토릭사이트'로 세일럼 해양 국가유적지(Salem Maritime National Historic Site)가 지정이 되었다.

유리상자 안의 디오라마는 옛날 무역선 하역작업을 하는 모습을 재현해놓았는데, 나중에 실제 부두로 나가서 배와 건물을 볼 수 있다. 세일럼은 식민지 시대에는 삼각무역의 중심지였고, 독립전쟁 중에는 영국상선을 약탈하는 사략선(privateer)의 기지로 성장해서, 18세기까지는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들 중의 하나로 1790년 기준으로는 미국에서 6번째로 큰 도시였다고 한다.

비지터센터 내부는 오른편 벽에 세계지도가 걸려있는 등 옛날 무역항을 추억하는 기념품 등으로 채워져 있지만, 가운데 멀리 보이는 서점코너로 가면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누구나 한 번쯤은 "세일럼의 마녀들" 이야기를 들어보셨으리라~ 무고한 사람들을 마녀와 관련자로 몰아서 교수형에 처했던 세일럼 마녀재판(Salem witch trials)은 미국역사에서 공권력으로 행해진 가장 황당하고 부끄러운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1692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세일럼 빌리지(Salem Villages)에서 일어난 마녀 재판으로 5월부터 10월까지 185명을 체포해 19명을 처형하는 등 25명이 목숨을 잃었다. 인간의 집단적 광기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문학 작품과 영화 등의 소재로 널리 쓰였다."

무고한 사람을 범죄자로 몰아가는 것을 뜻하는 '마녀사냥(witch hunt)'이라는 말도 이 사건에서 유래했는데, 최근에 미국에서 자신이 이러한 정치적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다고 가장 많이 주장했던 사람이 전직 대통령이다.^^

비지터센터를 나오면 미국 10대 박물관(또는 미술관)에 든다는 피바디에섹스뮤지엄(Peabody Essex Museum)이 보인다. 1799년 세일럼의 무역선 선장과 화주들의 모임인 동인도해운협회(East India Marine Society)가 전세계에서 모은 진귀한 수집품들을 전시하면서 시작된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 중의 하나이다. 특히 한국 관련 수집품도 1,800여점이나 되며 한국전시실도 따로 운영이 되고있어서, 한국의 개화기 연구자들은 필수적으로 방문해야하는 곳이란다. 우리는 박물관 방문은 생략하고 트롤리 버스를 따라서 중심가로 걸어가 본다.

평일 오전이었지만 제법 많은 관광객들이 붉은 벽돌로 포장된 길을 따라서 중심가를 돌아보고 있다. 대부분의 가게가 미국의 초기 역사나 마녀와 관련된 기념품점 들이고, 작은 박물관 등도 유료로 운영되는 곳이 많아서 마땅히 들어가볼 만한 곳은 없었다. 무엇보다도 마녀로 몰려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떠올라서 별로 내키지가 않았다고나 할까...

또 가로등 아래에는 이런 팔 없는 여성의 조각이 매달려 있었는데, 아마도 옛날 범선의 가장 앞에 장식으로 만들었던 선수상(船首像, figurehead)으로 '항해시대(maritime)'를 기념하는 듯 하지만... 중세시대 유럽에서 마녀를 가려내는(고문하는?) 방법으로 손을 끓는 물에 넣거나 잘랐다는 이야기가 떠올라서 좀 개인적으로는 끔직하게 보였다.

'마녀(魔女)의 도시'를 둘러보는 두 모녀(母女)의 모습이다~ 그런데 마녀에서 점 하나만 빼면 미녀...^^

마녀와 관련된 가게들 보다는 이런 400년 가까운 유서깊은 동부 마을을 가족이 함께 걷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는 장소였다.

1817년에 만들어져 20년 동안 시청으로 사용되었다는 올드타운홀(Old Town Hall) 건물인데, 지금도 마을의 행사나 결혼식 장소 등으로 사용이 되고 있다고 한다. 또 마녀의 도시에서 오래된 건물들 중의 하나라서 귀신이 나오는 고스트하우스(Ghost House)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세일럼에서 가장 오래된 공동묘지라는 차터스트리트 세메터리(Charter Street Cemetry)에서 오래된 묘비들을 둘러보고 있다. 그런데 비석의 뒷모습이 낡고 오래된 것들도 있지만, 사각형 반듯하게 최근에 새로 만든 것들이 보여서 이상하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것은 너무 오래되어서 보존이 필요한 묘비를 이렇게 새로 만든 돌판으로 보호하는 것이었다. 특히 지금 보이는 묘비의 주인공인 Richard More는 바로 그 유명한 메이플라워(Mayflower)를 타고 1620년에 만 6살의 나이로 케이프코드(Cape Cod)에 상륙해 살아남은 사람이라고 하며, 메이플라워 호 탑승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죽은 후 최초로 묻힌 땅에 무덤과 묘비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경우라고 하니 상당히 의미있는 곳이었다.

마녀는 묻혀있지 않은 공동묘지 구경을 마치고, 이제 부둣가 쪽으로 걸어가서 미국 최초의 역사유적지를 둘러볼 차례이다.

세일럼이 무역항으로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에 Aaron Waite와 Jerathmiel Peirce가 함께 50년동안 전세계를 누비며 수집한 진귀한 물건들을 팔던 가게를 국립공원청에서 지금도 운영하고 있다는데, 당시에는 이런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곳인지 몰라서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비지터센터의 디오라마로 봤던 부둣가 건물과 범선이 보이는 부두가 안내판 그림의 기다란 더비와프(Derby Wharf)이고, 그 주변으로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건물들이 함께 세일럼마리타임 국가유적지(Salem Maritime National Historic Site)로 지정이 되어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실제 오래된 범선의 닻을 이용해서 만들어 놓은 국가유적지 표지판 앞에서 부녀가 V자 증명사진 한 장 남겼다.

부두에 정박해 있는 배의 이름은 Friendship of Salem으로 1797년에 건조되었던 길이 52 m의 동인도 무역선(East Indiaman)을 200년이 지난 1996년에 복제해서 만든 것이라 한다. 인터넷의 사진들을 보면 돛대가 훨씬 높고 정박해 있는 모습도 아주 멋진데, 우리가 갔을 때는 보수중인 것인지 돛대의 상단이 사라진 상태라서 조금 아쉬웠다.

위키피디아에 있는 '세일럼의 우정호'가 바람을 받으며 바다를 달리는 멋진 모습이다. 국립공원청 소유의 이 범선은 실제로 사람들을 태우고 항해가 가능한 배로 연안경비대에 등록이 되어 있으며, 옛날과 같이 바람의 힘만으로 장거리 항해가 가능하면서 동시에 현대식 디젤엔진도 가지고 있는 최신의 설계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배의 앞쪽으로 와보니 꽃다발을 들고있는 여성이 선수상으로 조각되어 있었다. 정박해있는 동안에는 매주 토/일요일의 오전 11시에서 오후 3시 사이에만 일반에게 내부가 공개된다고 하므로, 세일럼을 방문하실 예정이거나 범선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참고하시기 바란다.

부두가 시작되는 곳에 있는 국가유적지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인 1819년에 만들어진 세관(Custom House)으로, 미국 소설가 나다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이 1846~1849년 동안 세관원으로 근무하면서, 그의 대표작으로 1850년에 출간된 <주홍글씨> The Scarlet Letter의 줄거리를 구상한 곳이란다. 우리는 이렇게 짧게 세일럼(Salem) 구경을 마치고는 주차장으로 돌아가서, 랍스터 점심을 먹기 위해서 더 북동쪽으로 이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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