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원 여행기/내셔널몰

미국 유일의 4선 대통령인 프랭클린 델라노 루스벨트와 흑인 민권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 국가기념물

위기주부 2022. 3. 30.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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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DC의 유명한 봄행사인 벚꽃축제 기간을 위해서 아껴두었던 내셔널몰 남쪽의 인공호수인 타이들 베이슨(Tidal Basin)에 있는 3개의 국가기념물(National Memorial)들을 둘러본 두번째 이야기이다. 1부에서는 벚꽃축제에 대한 안내와 함께 제퍼슨 기념관을 보여드렸었고 (포스팅을 보시려면 클릭), 2부에서는 남은 2개의 기념물들을 묶어서 소개해드린다. 이렇게 3개의 내셔널메모리얼이 위기주부의 방문리스트에 추가되면서, 현재 423개인 국립공원청이 관리하는 NPS Official Units 중에서 대략 100곳 이상을 방문한 것이 되었다.

벚꽃향을 맡으며 타이달베이슨 호수를 시계방향으로 절반을 넘게 돌았을 때 프랭클린 델라노 루스벨트 메모리얼(Franklin Delano Roosevelt Memorial) 안내판이 나왔다. 흔히 줄여서 'FDR'이라 많이 부르는 제32대 루스벨트 대통령을 국가적으로 기념하는 장소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그 전에 오른편 끝에 살짝 보이는 석탑에 대해 먼저 알아보면,

내셔널몰의 벚나무는 1912년에 일본 도쿄 시장이 워싱턴 시에 기증한 것에서 시작되었는데, 그 후로 1930년대까지 일본이 지속적으로 묘목을 공급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41년 진주만 폭격에 화난 사람들이 벚나무 몇 그루를 베어버리기도 했지만, 전후에도 다시 일본이 적극적으로 이 곳의 벚나무와 벚꽃축제에 지원을 하게 되는데, 이 석탑도 요코하마 시장이 1958년에 워싱턴 시에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루스벨트 기념관의 출구에 해당하는 석벽의 제일 아래에 '1933-1945'라고 씌여있는데, 그는 4번이나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어서 12년 이상을 재임한 전무후무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초대 워싱턴 이후로 대통령은 2번을 당선된 이후에는 다시 출마하지 않는 불문율이 있었지만, 루스벨트는 이를 무시하고 4선까지 한 것이다. 그의 사후에 대통령의 3회 이상 중임을 제한하는 수정헌법 22조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사실상 그의 재임기록은 앞으로도 깨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기념관이라고 해서 링컨이나 제퍼슨 메모리얼처럼 거대한 기둥의 건물이 있는 것이 아니라, 넓은 면적에 벚나무와 어우러지도록 자연석과 조각상들로 멋진 산책로를 만들어 놓은 느낌이었다. 기념관은 그의 4번의 임기를 상징하는 4개의 공간이 차례로 만들어져 있는데, 우리가 출구쪽에서 들어온 바람에 그냥 역순으로 소개를 한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사진에 인력거와 유모차가 보이는 것에 알 수 있듯이 모든 경로가 평지에 만들어져 있는데, 루스벨트가 39세의 나이에 소아마비에 걸려서 휠체어에 의지하는 장애인으로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설계를 했다고 한다.

무려 4선을 했음에도 재임기간이 16년이 아닌 이유는 1945년 3월에 4번째 취임을 하고 1달여만에 뇌출혈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오른편에 아내가 보고있는 부조는 국장행렬을 나타낸 것이고, 왼편의 동상은 아내인 엘리너 루스벨트(Eleanor Roosevelt)로 남편 사후에도 유엔 인권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세계인권선언>을 기초하고 채택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회운동가로 미국 역사상 최고의 영부인으로 평가를 받는단다.

2차 세계대전과 정확히 겹치는 1941~1945년의 재임 3기 전시장에, 이 메모리얼을 대표하는 망토를 걸치고 앉아있는 그의 동상이 있는데, 그의 애완견 팔라(Fala)가 함께 만들어져 있다. 공식행사에도 항상 데리고 다녔다는 팔라는 미국의 약 30개의 국가기념물에 있는 유일한 개의 동상이며, 나중에 12살의 나이로 죽어서도 루스벨트 부부의 묘지 옆에 묻혔다고 한다.

전쟁과 대공황이라는 큰 국가적 어려움이 있는 시기였다고는 해도, 전례없던 3선 또 4선 출마는 정말로 '구국의 일념'이고 개인적인 욕심은 없었을까? 만약 63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뇌출혈로 사망하지 않고 4번째 임기를 다 채웠다면 또 어떻게 되었을까? 반짝반짝하는 그의 검지 손가락을 잡고 사진을 찍으면서 그런 생각들이 들었었다~

루스벨트는 1930년대에 대공황 극복을 위한 뉴딜(New Deal) 정책을 추진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 중에는 미국 전역의 국립공원들을 돌아다니면 항상 그 흔적을 만날 수 있는 CCC(Civilian Conservation Corps)를 만든 사람이라는 것이 위기주부에게는 직접적으로 와닿는다.

1929년에 시작된 대공황의 침체기에 그의 첫번째 1933~1937년의 임기가 시작되었는데, 빵을 받기 위해 배급소에 줄을 선 사람들의 동상 등이 만들어져 있었다. 취임 후에 그는 국민들을 상대로 '노변정담(爐邊情談, Fireside chat)'이라 불린 친근한 라디오 연설로 뉴딜정책에 동의를 구했는데, 그래서 라디오를 듣고 있는 가족의 동상도 옆에 만들어져 있다.

갑자기 그 많던 상춘객들은 다 어디가고,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아낙네가 나타났다가 벽 뒤로 사라졌다...

다행히 헛것을 본 게 아니고, 벚꽃과 기념물을 배경으로 웨딩촬영을 하는 커플이었다~^^ 그 뒤쪽 벽에는 루스벨트가 첫번째 취임사에서 했다는 말인 "우리가 유일하게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두려움 그 자체(The only thing we have to fear is fear itself)"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

입구에는 루스벨트가 휠체어에 앉아있는 동상이 따로 만들어져 있는데, 1997년에 이 기념관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없던 동상이다. 장애인 단체 등에서 그가 실제로 휠체어 생활을 했다는 사실을 그대로 알릴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받아들여서 2001년에 추가로 설치된 것이라 한다. 마지막으로 이 기념물에는 원래 벽쪽으로 작은 폭포같은 물이 흐르도록 설계가 되었지만, 쌀쌀한 날씨 때문인지 물은 모두 잠궈놓은 상태였다. 언제 여름철에 다시 방문하게 되면 비지터센터에 들러서 브로셔도 얻고, 그 폭포들에 담긴 의미도 다시 알려드려야 겠다.

큰 길로 나오니까 국립공원청이 주관하는 국립벚꽃축제(National Cherry Blossom Festival)의 무대가 일본 항공사의 후원으로 만들어져 있고, 도로에는 여러 부스들이 만들어져 있었지만 평일 저녁에는 장사를 안 하는지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다.

 

작년에 대륙횡단 자동차여행을 하면서 테네시 주의 멤피스(Memphis)에서 마틴루터킹이 암살당한 장소를 방문했었는데 (여행기를 보시려면 클릭), 흑인 민권운동가인 그를 국가적으로 추모하는 마틴 루터 킹 메모리얼(Martin Luther King, Jr. Memorial)이 마지막 방문지였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벚꽃에 둘러싸인 광장에 MLK의 석상이 미완의 모습으로 세워져 있는데, 그 옆면에 이 사진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Out of the Mountain of Despair, a Stone of Hope"라고 새겨져 있다. 이 말은 그가 1963년에 여기서 조금 북쪽에 있는 링컨 기념관의 계단에서 했던 유명한 <I Have a Dream> 연설의 말미에 나왔던 문구로,

기념물을 정면에서 보면 이렇게 뒤쪽의 '절망의 산(Mountain of Despair)'에서, 마틴루터킹의 석상으로 상징되는 '희망의 돌(Stone of Hope)'이 잘려져 나온 것을 알 수 있다. 또 석상이 완전히 다 깍여져 나온 완성된 모습이 아닌 것은, 아마도 그의 민권운동이 아직도 미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않나 생각된다.

이 동상은 2011년에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가 참석한 가운데 제막되었는데, 제작 당시에 흑인을 하얀 대리석으로 조각하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완성된 후에는 팔짱을 끼고 있는 그의 모습과 얼굴 표정이 너무 완고한 이미지를 풍긴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어찌되었건 워싱턴 내셔널몰(National Mall)에 세워진 최초의 흑인 동상이며, 대통령이 아니었던 사람으로는 4번째 기념물이라 한다.

이렇게 타이들 베이슨(Tidal Basin) 주변의 국가기념물 3곳의 구경을 마치고는, 다시 호숫가로 나와서 벚꽃구경을 했다.

아내가 찍은 짧은 동영상을 클릭해서 보시면, 멀리 호수 건너편의 토마스제퍼슨 메모리얼을 중심으로 걸어왔던 호숫가 풍경과 함께, 포토맥 강가의 레이건 국제공항으로 착륙하는 비행기도 보실 수 있다.

물가쪽으로 축축 늘어진 나뭇가지에도 하얀 벚꽃들이 가득해서, 이렇게 화면에 벚꽃을 꽉꽉 채워서 셀카를 찍을 수가 있는데,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빈 틈을 잘 노려야 했다.

이 근처에 1912년에 최초로 심은 벚나무도 있고, 또 일본에서 기증한 석등도 세워져 있는데다, 잔디밭도 비교적 넓게 만들어져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아예 자리를 깔고 앉아 있는 모습도 많이 보였다.

내셔널몰 남쪽의 Independence Ave가 지나는 Kutz Memorial Bridge를 걸어서 건너 워싱턴 기념탑쪽으로 돌아갈 때는 저녁 7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이었는데도 이제 벚꽃을 구경하러 걸어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서쪽으로 석양을 돌아보면서 해가 지고 저 가로등에 불이 들어올 때까지 있다가 갈까라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주중이고 내일 또 출근하셔야 해서 그만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주차한 곳으로 걸어가면서 내년에는 꼭 DSLR 카메라를 챙겨서 도시락과 돗자리도 들고, 지하철을 타고 다시 와서 반시계 방향으로 돌와봐야 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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