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의 마지막에서 이어짐) 사우스캐롤라이나 캠던(Camden)에서 대륙군을 완파한 영국군의 콘월리스 장군은 북진을 시작하며, 퍼거슨 소령에게 충성파 민병대로만 구성된 1,000명의 병력을 주며 서쪽 산악지대 측면 방어를 맡겼다. 그는 애팔래치아 산맥 너머의 '오버마운틴맨(Overmountain Men)'이라 불리던 개척민들에게 "영국왕을 따르지 않으면 직접 산을 넘어가 너희 마을을 잿더미로 만들겠다!"는 협박을 공개적으로 보내며 기세등등하게 캐롤라이나 식민지 내륙을 점령해 나갔다.

그러나 오만한 협박은 산악지대 사냥꾼들의 분노를 폭발시켰고, 오히려 그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산을 넘어 내려와 퍼거슨의 부대를 찾아와서 전투를 벌였는데, 그 장소가 1933년부터 킹스마운틴 국립군사공원(Kings Mountain National Military Park)으로 보존되고 있다. 공원 간판에 이번에는 기다란 소총이 그려진 이유와, 또 국립공원청 로고 옆에 있는 작은 트레일 마크에 대해서도 차차 아시게 된다.

당시 3월말 초봄 좋은 날씨의 일요일이었고 전날 잠깐 업타운을 구경했던 대도시인 노스캐롤라이나 샬럿(Charlotte)과도 가까운 거리라서 그런지, 하이킹을 하러 온 사람들로 주차장에 차들이 아주 많았다.

멀리 연두색 새순이 돋아난 나무들이 가리지 않도록, 나지막히 잘 지어놓은 비지터센터로 걸어간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모자 등의 작은 기념품 진열대에는 성조기와 예전에 설명한 적이 있는 뱀이 그려져 있는 노란색의 개즈던 깃발(Gadsden flag) 및 노스캐롤라이나 주기와 함께 유니언잭도 보이는게 특이하다. 영국을 상대로 싸웠던 여기 독립전쟁에서 실제 영국군은 딱 1명뿐이었는데, 바로 서두에 언급했던 인물로 그에 대한 전시가 실내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도 이채롭다.

작게 비스듬히 보이는 얼굴의 패트릭 퍼거슨(Patrick Ferguson, 1744~1780)은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14세에 입대해 명사수로 이름을 날렸는데, 당시 총구로 화약과 탄환을 쑤셔넣는 전장식 소총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총열 뒤쪽을 열어서 장전하는 후장식 '퍼거슨 라이플(Ferguson's Rifle)'을 직접 개발했다. 영국군은 그 특별한 총기를 100여정 만들어서 그에게 해당 소총 부대의 훈련과 지휘를 맡겼는데, 오른편에 전시된 것은 현재 단 10여정 남아있는 진품들 중의 하나란다.

그래서 그는 초상화에서도 소총을 들고 있는데, 영국이 필라델피아를 점령하는 발판이었던 1777년 9월의 브랜디와인 전투(Battle of Brandywine)에서 맹활약을 하다가 오른팔에 총을 맞아 거의 손을 못 쓰게 되자 왼팔로 검술과 사격을 익혀서 계속 복무하는 의지를 보였다. 특히 그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에 정찰을 나갔다가 대륙군 장교를 발견했고, 그의 사격술로 충분히 저격이 가능했지만 멀리서 등 뒤를 쏘는 것은 신사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해서 살려줬는데, 그 목숨을 구한 장교가 바로 조지 워싱턴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단다.

숲속에서 벌어진 전투를 상징하는 듯이 거대한 나무 형상을 만들어 전시물들을 보여주는 노력이 대단했는데, 왼편에는 말을 타고 산을 넘었던 독립파 민병대원의 전형적인 모습과 소지품을 보여주고 있다.

디오라마처럼 영국 군복인 레드코트를 지급 받아서 입은 사람은, 독립전쟁 초기부터 뉴욕과 뉴저지에서 독립에 반대하고 영국에 충성했던 사람들로, 퍼거슨 소령이 지휘한 전체 약 1,000명의 충성파 민병대원들 중에서 120명에 불과했단다. 그들은 나름 훈련을 받은데로 머스킷 소총으로 대충 한 방 쏘고 총검돌격을 했지만, 독립파 민병대원들은 장전 속도는 느리지만 정확도가 높은 라이플 소총을 들고 나무 뒤에 숨어서, 사냥꾼의 실력을 발휘해 멀리서 적군들을 정확히 맞췄단다.

우측의 5번 비지터센터에서 조금 걸어가다가 반시계 방향으로 한바퀴 돌면서, 먼저 독립파가 포위 공격을 시작한 아래쪽을 지나 충성파가 진을 쳤던 능선의 기념물들을 구경하고 돌아오는 코스가 노란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하지만 이렇게 순환 1.5마일을 모두 둘러볼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이제 보여드리는 두 안내판이 있던 갈림길에서 바로 능선으로 올라갔다 돌아오는 코스를 택했다.

킹스마운틴 전투는 사실상 식민지인들 사이의 내전이라 할 수 있는데, 영국을 계속 지지한다고 충성파(Loyalist) 또는 왕당파(Tories)로 불렸던 민병대원들 대부분은 군복이 없었기 때문에 피아식별을 위해서 모자에 나뭇가지를 꽂았고,

식민지의 독립을 지지하는 애국파(Patriot) 또는 영국에서 왕당파에 맞서는 사람들을 일컫는 휘그(Whigs)로 불린 의용군들 역시 모두 군복이 없었기 때문에 모자에 하얀 종이를 묶어서 표식으로 삼았단다. (서로 그렇게 구별하기로 미리 약속이라도? ㅎㅎ) 우측 작은 지도에 이들이 어느 지역에서 출발했는지가 녹색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좌측 상단의 버지니아 남부와 지금의 테네시 산악지역에서 출발한 그룹과 우측에 캐롤라이나 북부에서 출발한 그룹이 가운데 만나서, 퍼거슨의 충성파 민병대를 추격한 경로를 보여주는 지도이다. 모두 2,000명 정도의 애국파가 모여서 처음에는 엉뚱한 쪽으로 이동하다가 방향을 틀었고, 하단의 킹스마운틴에 주둔하고 있다는 최종 정보를 확인하고는 전날밤에 지원자 900명이 밤새 말을 타고 행군을 해서 다음날 오후 3시에 도착해 포위 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그 애국파 민병대가 산을 넘어 이동한 총 330마일(약 530km)의 경로는 현재 오버마운틴 빅토리 국가역사로(Overmountain Victory National Historic Trail)로 별도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지만, 아쉽게도 위기주부가 좋아하는 독립적인 오피셜 유닛(official unit)은 아직 아니란다~^^

능선의 정상에 해당하는 9번 위치에 있는 높이 8.5미터의 대리석 탑인 백주년 기념비(Centennial Monument)는 관련 주정부와 민간 주도로 1880년에 만들어졌다. 단 1시간만의 전투로 충성파는 240명 이상이 사망하고 나머지 대부분이 포로로 잡혀 부대가 전멸했지만, 애국파의 사망자는 28명에 불과한 완벽한 독립군의 승리였고, 이렇게 좌측 날개를 잃은 영국군은 북진을 일시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조금 아래쪽으로 1909년에 연방정부가 건립한 높이 25미터의 뾰족한 화강암 오벨리스크인 U.S. Monument가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 그러나 사실 여기 군사공원에서 가장 발길을 멈추게 하는 기념물은 그 옆에 작게 따로 있었다.

능선이 끝나는 10번 위치에 있는 표석으로, 말을 타고 부하들을 지휘하던 퍼거슨 소령이 마지막 방어선이 무너진 후에 소수의 장교들과 포위망을 뚫고 탈출을 하려다 총을 맞은 위치를 알려주고 있다. 이 옆에 세워진 안내판의 사진이 아주 특이해서 따로 아래에 보여드리면...

당시 군부대는 취사와 세탁 등을 담당하는 민간인 여성이 동행하는 경우가 흔했는데, 퍼거슨 소령의 막사에도 두 명의 여성이 일하고 있었단다. 그 중 한 명이 전투가 시작된 직후에 산을 내려와 독립파에 투항해서는 퍼거슨이 붉은 색의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있다고 알려줬단다. 그래서 독립파 명사수들이 퍼거슨을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었고, 동시에 8발 이상의 총탄이 명중해서 그 자리에서 즉사를 했다는 이야기다. 반면에 다른 한 명의 여성은 끝까지 그의 옆을 지키다가 함께 총을 맞아서 사망했고,

전투가 끝나고 독립파는 바로 아래 11번 골짜기에 예를 갖추어 퍼거슨과 '버지니아 살(Virginia Sal)'이란 여성을 함께 매장했단다. 그 후 스코틀랜드 전통에 따라서 사람들이 돌을 하나씩 올려서 자연스럽게 케른(Cairn)이 만들어졌는데, 지금도 이 돌무덤 아래에 이 전투의 유일한 영국인이었던 패트릭 퍼거슨과 아메리카 식민지 출신의 그녀가 영원히 함께 잠들어 있단다.

패배한 적장의 무공을 기리는 이 비석은 1930년에 미국인들의 성금으로 만들어졌는데, 당시 150주년 기념식에는 허버트 후버 대통령과 영국군 관계자를 비롯해 최대 75,000명의 군중이 운집을 했었단다! 이렇게 미국 독립전쟁 최대의 내전이자 제퍼슨이 "성공의 물길을 돌린 승리"라 평가한 킹스마운틴 전투에 대한 학습을 끝내고, 그로부터 3개월여 후에 이번에는 양측 정규군이 바로 인근에서 격돌한 장소를 또 찾아간다. 이 놈의 쓸데없는 역사 공부는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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