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바닷가로/바다와 해변

올드머니들의 별장이 모여있는 햄튼(The Hamptons)과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 나온 몬탁(Montauk)의 등대

위기주부 2023. 9. 13.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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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전에 미동부의 대학을 들어갔던 딸과 이야기를 하면서 처음 '올드머니(old money)'라는 표현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뉴욕을 중심으로 한 미동부에서 할아버지 또는 그 윗대에서부터 지금까지 먹고 사는데 걱정이 전혀 없는 부자 집안을 보통 그렇게 부르는데, 그들을 구분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여름을 보낼 '햄튼의 별장'을 가지고 있냐는 것이란다. 우리같은 보통 사람들은 그냥 모텔 이름 '햄튼인(Hampton Inn)'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뉴욕 주 롱아일랜드의 동쪽 끝 지역인 그 햄튼(또는 햄프턴)에 대해서 먼저 알아보자.

롱아일랜드(Long Island)는 섬의 동쪽이 집게발처럼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데, 그 갈라진 남쪽을 영어로 The Hamptons라는 복수형으로 부른다. 그 지역에서도 부자들의 별장이 있는 곳은 대부분 남쪽 해안 마을들로 웨스트햄튼(Westhampton), 햄튼베이(Hampton Bays), 사우샘프턴(Southampton), 이스트햄튼(East Hampton) 등의 이름이 보이지만, 정작 그냥 햄튼(Hampton)이라는 마을은 없다는 것이 함정! 우리 부부는 파이어 섬(Fire Island)을 구경하고 나서, 일부러 그 마을들을 잇는 로컬 도로를 천천히 동쪽으로 달리면서 좌우의 으리으리한 별장들을 구경했다.

그러다가 처음 주차한 곳은 이 지역에서도 가장 화려한 중심 휴양도시라는 이스트햄튼(East Hampton) 다운타운이었다. 휴가 시즌이 지난 월요일이라서 좀 한산한 듯 했지만, 그래도 시내의 거리는 숨길 수 없는 부티가 줄줄 흘렀는데...

잘 가꿔진 꽃들이 매달린 가로등 옆의 빨간 벽돌 건물은 루이비통 매장이었고,

도로 건너편에 바닷 바람에 낡아서 곧 쓰러질 듯한(?) 2층집은 샤넬이 입점해 있었다. 여기서 우리도 올드머니들처럼 점심을 사먹을까 했으나 시간이 좀 이른 듯 해서, 약간 더 동쪽으로 달려 전날 지인 아내분께서 알려주셨던 전망좋은 바닷가 호텔을 한 번 찾아가보기로 했다.

그 리조트의 이름은 거니스(Gurney's)인데 발렛파킹만 가능하고 레스토랑 가격도 상당히 쎈 것 같아서, 그냥 자동차로 돌아서 바로 나왔기 때문에 간판 사진은 위키에서 가져왔다. 호텔명이 '거니'라서 요즘 한국의 누구 별명이 떠올랐지만, 영단어 gurney는 '바퀴달린 들것'을 의미하며 사람의 성씨로 사용된다고 한다. 그리고 간판의 가운데에 씌여있는 가장 동쪽 끝의 마을 이름인 몬탁(Montauk)은 옛날 영화에 중요한 장소로 나왔었다.

"Meet me in Montauk."

짐 캐리와 케이트 윈슬렛 주연의 2004년 영화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했던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영화에 나오는 몬탁의 눈 내린 바닷가 모습이다. 롱아일랜드에 사는 조엘이 발렌타인데이 아침에 맨하탄으로 가는 출근 기차를 기다리다가, 갑자기 건너편 승강장으로 달려가서 반대 방향인 섬의 동쪽 끝 몬탁으로 향하는 텅 빈 기차를 타는 것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철로가 끝나는 실제 몬탁역(Montauk Station)과 인근의 바닷가 별장 등이 영화촬영 장소로 유명하다지만, 우리는 그냥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는 땅끝 마을의 등대를 찾아갔다.

뉴욕 주립공원인 Montauk Point State Park 주차장에 $8을 내고 주차한 후에 바라보니, 커다란 간판을 너무 많이 세워놓은 것이 좀 이상했지만, 전체적으로 잘 관리되고 방문객들도 많은 관광지다운 곳을 찾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그러나 저 등대와 박물관을 가까이서 구경하기 위해서는 주차비와는 별도로 성인 $15의 입장료를 저 천막이 쳐진 곳에서 내야 했다! 왜냐하면 등대와 부속건물은 주립공원에 속하지 않고, 1996년 클린턴 대통령의 서명에 따라 공식적으로 Montauk Historical Society 소유가 되었기 때문인데, 붕괴 위험으로 1960년대에 철거될 뻔한 이 등대의 보존 노력을 주도한 단체라고 한다.

우리는 그래서 입장은 하지 않고, 그냥 기념품 가게와 화장실만 이용하고는 전망대쪽으로 나와봤다. 롱아일랜드의 동쪽 끝까지 왔더니 거리상으로 코네티컷 주를 거의 다 가로지른 것이 되어서, 사진의 정면 북동쪽 앞바다 너머로는 로드아일랜드(Rhode Island) 주이다.

바닷바람이 제법 세고 차갑기는 했지만, 그래도 땅끝 마을에 왔으니 바다쪽으로 가봐야 할 것 같아서, 주립공원 산책로를 따라서 몬탁포인트(Montauk Point)로 걸어 내려왔다. 등대는 Turtle Hill 언덕 위에 처음엔 절벽끝에서 90m 거리에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불과 30m 거리라고 한다. 그래서 정부에서 1960년대에 철거를 계획했지만, 상기 단체의 노력으로 제방을 만들어서 그대로 보존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옛날 제방도 수명이 다 되어서 다시 절벽이 침식되는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에, 사진에 번호가 씌여진 10~15톤이나 되는 바위들을 가져와서 추가로 보강하는 2년간의 작업을 작년에 새로 마쳤는데, 그 공사비만 무려 3천만불이 들었다고 한다. 위키에 따르면 공사비 절반은 뉴욕주 재정에서 부담했고, 나머지 절반은 상기 단체에서 후원금을 모금한 것이라고 하니, 따로 입장료를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바람이 세게 불어서 머리카락이 좀 웃기게 나오기는 했지만, 롱아일랜드 여행기념 커플셀카는 이 한 장 뿐이라서 블로그에 남겨둔다~

닫힌 정문 게이트 너머로 까치발을 하고  대표 사진을 찍었는데, 높이 34m의 몬탁포인트 등대(Montauk Point Lighthouse)는 미국의 초대 워싱턴 대통령의 서명으로 진행된 최초의 공공사업으로 1796년에 건설되었다. 특히 뉴욕주(New York State)에서는 최초로 만들어진 등대이면서, 미국에서 현재까지 불을 밝히고 있는 옛날 등대들 중에서도 4번째로 오래된 상당한 역사적 가치가 있단다.

그래서 2012년에는 역사유적(National Historic Landmark)으로도 지정이 되었는데, 미국의 등대로는 11번째였다고 한다. 이렇게 뉴욕 롱아일랜드 섬의 동쪽 끝까지 와서 제일 유명한 볼거리를 구경한 후에, 왔던 길을 조금 돌아가다가 도로변에 있는 허름한(?) 식당에 차를 세웠다.

그 곳은 랍스터롤을 전문으로 하는 '런치(LUNCH)' 식당으로 자동차와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랍스터롤 음식 사진이야 뻔하니까 따로 올리지는 않는데, 2개 시켜서 먹었더니 가격이 $80이나 하더라는...! 그리고 다시 햄튼 지역의 여러 마을들을 지나서 돌아가야 했는데, 도로가 하나뿐이라서 1시간 이상은 정체가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맨하탄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딸에게, 나중에 혹시 돈을 많이 벌어서 '뉴머니(new money)'가 되더라도 햄튼의 별장은 사지 마라고 카톡을 보냈다. 교통도 불편하고 물가도 비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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