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원 여행기

미국의 '잃어버린 식민지'와 남북전쟁 역사가 있는 로어노크 섬의 포트롤리(Fort Raleigh) 국립사적지

위기주부 2022. 10. 29.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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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1년전에 버지니아(Virginia) 주로 이사를 온 후부터, 미동부를 돌아다닌 여행기를 쓰고 있으면... 본인이 미국사를 전공하는 역사학도가 된 착각을 하는 것 같다. 열심히 찾아보고 정리해서 재미있게 블로그에 올려봐야 알아주는 사람도 거의 없는데, "왜 계속 이 짓을 하고있을까?"라는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지난 9월에 집에서 남쪽으로 다녀온 1박2일 여행도 거의 '역사투어'에 가까웠는데, 지금의 미국땅에 영국인들이 최초로 식민지를 건설했던 두 곳이 목적지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일단 본편은 자료조사와 정리를 다 마쳤으니 평소처럼 논문...이 아니라 여행기를 완성하고, 앞으로도 역사공부를 계속 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을 좀 해봐야겠다.

전편에서 소개한 미국에서 가장 높은 등대를 구경하고 (여행기를 보시려면 클릭), 노스캐롤라이나(North Carolina) 주의 해안을 따라 길게 만들어진 섬들을 이어주는 다리를 달려 북쪽으로 올라가고 있다. 사진 정면에 나지막히 건물들이 보이는 땅이 그 평행사도(Barrier Island) 안쪽에 있는 로어노크 섬(Roanoke Island)으로, 이제 찾아가는 유적지가 있는 곳이다.

Whalebone Junction 삼거리에서 시작되는 64번 국도로 좌회전 후에 또 다리를 건너면 로어노크 섬이다. 마땅히 점심을 먹을만한 곳이 없어서 만테오(Manteo) 마을의 맥도널드에서 투고를 해서 국립공원의 피크닉 장소에서 먹기로 했다.

섬의 제일 북쪽에 포트롤리 국립사적지(Fort Raleigh National Historic Site)가 있는데, 그 밑에 별도로 적혀있는 두 곳은 아래의 공원지도를 보며 설명을 드리기로 한다. 참고로 노스캐롤라이나 주도(state capital)도 같은 사람의 이름을 딴 롤리(Raleigh)인데, 실제 영어발음은 '랄리'에 가깝지만 대부분의 한글 사이트에서 '롤리'로 표기를 해서 그에 따르기로 한다.

먼저 다른 색으로 표시된 엘리자베스 가든(The Elizabethan Gardens)은 1950년대에 조성된 영국식 정원인데, 시간도 없었고 별도의 입장료가 있어서 들리지 않았다. 또 수변무대(Waterside Theatre)는 1937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여름마다, 이제 소개할 '잃어버린 식민지'를 소재로 한 로스트 콜로니(The Lost Colony) 야외공연을 하는 장소이다. 2차 세계대전 중인 1944년과 코로나 팬데믹이 정점이던 2020년의 두 시즌만 건너뛰고 지금까지 계속 같은 내용의 공연을 한 장소에서 하고 있는데, 이것은 오케스트라가 동원되는 공연으로는 미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이어지는 기록이라고 한다.

그 두 곳을 빼고나면 사실 여기서 남는 것은 거의 이 비지터센터 밖에는 없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여기 나무 그늘의 피크닉테이블에서 늦은 점심으로 '1+1버거'를 참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다.

비지터센터에 붙어있는 이름인 린제이 워런(Lindsay Warren)은 1941년에 이 곳이 국립사적지로 지정되는데 기여한 연방 하원의원이다.

안내영화 시작까지 시간이 좀 남아서, 먼저 제일 안쪽에 보이는 전시실을 구경했다. "그럼 역사공부를 또 시작해볼까?"

1584년에 영국인 월터 롤리 경(Sir Walter Raleigh)이 당시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후원으로 신대륙을 탐험해, 여기 로어노크 섬에 도착해서 최초로 잉글랜드 깃발을 꼽고 '처녀여왕'을 기리는 의미로 버지니아(Virginia)라 명명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탐험대 수준이라서 오래 머물 수 없었고, 다음 해에 병력을 끌고 다시 와서 주둔지를 만들기는 했지만 역시 또 포기하고 철수해야 했다.

마침내 1587년 여름에 친구인 존 화이트(John White)를 책임자로 여성과 어린이가 포함된 약 120명의 이주민이 도착해서 여기에 최초의 잉글랜드 식민지를 건설한다. 하지만 원주민과의 분쟁 및 식량부족 등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자, 연말에 존 화이트가 보급품과 추가인력을 데리고 다시 돌아오기로 하고 영국으로 떠나게 된다. 남아있는 사람들 중에는 존 화이트의 딸과 사위, 그리고 최초로 아메리카 대륙에서 태어난 영국계(English) 사람으로 기록된 그의 손녀인 버지니아 데어(Virginia Dare)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스페인과 전쟁 중이던 영국은 바로 구호선단을 보낼 여력이 없었고... 결국 화이트는 손녀의 3번째 생일인 1590년 8월 18일에야 로어노크 섬에 돌아왔지만, 마을은 전투가 벌어진 흔적도 없이 버려진 상태로 120명의 사람들도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고 한다. 유일한 단서는 울타리 기둥에 새겨진 '크로아토안(Croatoan)'이라는 남쪽 원주민 부족의 이름이었기 때문에, 화이트는 바로 40마일 떨어진 그 곳에 가서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폭풍우도 몰아치고 그의 선원들은 스페인 무역선의 해적질이 항해의 주목적이라서 탐사를 거부하는 바람에 사라진 사람들의 행방은 결국 미궁으로 남았다.

이상의 내용을 모두 보여주는 안내영화를 재미있게 보고 다른 전시실로 들어갔더니, 그 곳에는 왼쪽의 월터 롤리 경과 오른쪽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신대륙 탐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창문 너머 실루엣으로 보이는 두 명이 움직이면서 실제 대화를 하는 영상이 나오는데, 아내가 조종판 앞에서 꼼꼼히 내용을 읽어보고 있는 모습이다. 롤리는 영국의 정치인, 탐험가, 작가, 시인이자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의 총신으로, 진흙길 위에 자신의 값진 망토를 펼쳐 엘리자베스 1세를 지나가게 했다는 일화로 유명하며, 일설에는 그가 엘리자베스 1세의 숨겨진 애인이라는 주장도 있단다.

특히 그는 신대륙에서 들여온 담배를 영국에 최초로 전파한 인물로 유명한데, 그가 담배연기를 내뿜자 하인이 불이 붙은 줄 알고 롤리에게 물을 퍼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렇게 엘리자베스 시절에는 잘 나가던 그였지만... 1603년에 제임스 1세가 즉위하자 정쟁에 휘말려 런던탑에 갇혀 12년을 보내야 했으며, 65세에 특별사면을 받아서 다시 신대륙으로 탐험을 떠나지만, 항해중에 스페인과 싸우지 말라는 왕명을 어겼다는 이유로 다시 송환되어서, 결국 웨스트민스터에서 참수형으로 최후를 맞이한 한마디로 '풍운아'라 할 수 있다.

비지터센터 앞마당에 세워진 Freedmen's Colony Monument라는 까만 기념비에 우리 부부가 비친 모습이 살짝 보인다. 시간이 한참 흐르고 흘러 1860년대 미국 남북전쟁 때 북군이 로어노크 섬을 점령해서 롤리 요새(Fort Raligh)를 만들고, 남부 여러 주에서 탈출한 흑인 노예들을 여기에 받아들여 그들의 목숨을 살린 것을 기념하는 것이다. 볼거 다 본거 같았지만 그래도 국립공원에 왔으니 조금은 걸어주는 것이 예의일거 같아서, 비지터센터 옆으로 만들어진 길을 따라서 안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공원지도에 1896 Monument라 되어있는 비석인데, 이 장소의 역사적 가치를 최초로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협회에서 1896년에 만들어서 세운 것으로, 앞서 언급한 영국인들의 탐험 기록들과 함께 이 땅에서 태어난 Virginia Dare가 세례받은 이야기 등이 자세히 적혀있다.

20세기 들어서 여기 '로어노크의 잃어버린 식민지(Lost Colony of Roanoke)'의 고고학적 발굴이 진행되기는 했지만 대장간의 쇳덩이나 도자기 조각 등이 약간 나온 것 말고 큰 성과는 없는 것 같다. 아슬아슬하게 남아있는 무슨 건물의 흔적같이 보이는 이것도, 1585년에 영국 탐험대가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모습으로, 1950년대에 일부러 다시 만든 토성(Earthen Fort)의 잔해일 뿐이다.

전시실에 작게 붙어있던 삽화로, 존 화이트가 사람들은 사라지고 'CROATOAN' 글자만 남아있는 로어노크 식민지(Roanoke Colony)에 돌아온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여드린다. 이 잃어버린 식민지와 흔적없이 사라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양한 상상력이 더해져서 소설과 영화의 소재가 되었으며, 지금도 DNA 분석기법 등을 이용해서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추적을 하는 사람들도 있단다. 이렇게 월터 롤리(Walter Raleigh)가 주도했던 영국인들의 첫번째 아메리카 식민지는 실패로 끝났지만, 그 후 런던 주식회사(London Company)에서 다시 3척의 배로 100여명의 남성을 1607년에 북쪽의 체사피크 만 안쪽에 상륙을 시켜서 성공적으로 식민지를 건설하게 되는데... 그 곳도 다음날 오후에 직접 찾아갔으므로, 이어지는 1박2일 여행기에서 역사공부는 계속된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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