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원 여행기/케이프코드

케이프코드(Cape Cod) 국립해안의 프로빈스타운(Provincetown)과 감자칩 포장지의 너셋(Nauset) 등대

위기주부 2022. 4. 8.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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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면서 전망이 좋은 숙소에서 자게 되면, 그 전날 여행기의 마지막 사진과 다음날 여행기의 첫 사진이 모두 그 숙소에서 바라본 같은 풍경에 시간만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보스턴에서 워싱턴까지 편도 2박3일의 봄방학 가족여행에서 정말 오래간만에 그렇게 바다를 바라보는, 아내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뷰(view)'가 좋은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냈었다.

전편의 마지막 사진은 전날 흐린 오후의 밋밋한 모습이었지만, 다음날 해뜨기 전에 바다 위로 이렇게 맑은 하늘을 보여줘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메마른 풀숲과 짙푸른 바다가 같은 방향으로 바람에 쓸려가는 것이 멋있어서, 핸드폰을 제자리에서 꼭 붙들고 그냥 찍어본 동영상이니까 안 보셔도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릭하시겠다면... 전체화면으로 해서 뚫어지게 쳐다보시면 수평선 우측 1/4 지점에서 등대도 하나 찾으실 수 있다.

우리가 숙박한 곳은 매사추세츠 주의 케이프코드 국립해안(Cape Cod National Seashore) 지도의 제일 위쪽에 보이는 마을인 프로빈스타운(Provincetown)이다. 미리 준비한 빵과 요거트, 즉석죽으로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는 차를 몰고 항구쪽 부두로 나가봤다.

부두 주차장에서 제시카와 맞장 뜨는 우리집 차... 맑아져서 다행이었지만, 바닷바람이 너무 추워서 모녀는 내리지도 않았다.

전편에서 알려드린 것처럼 보스턴(Boston)에서 여기 프로빈스타운까지 여름철에는 페리를 타고 올 수도 있단다. 찾아보니까 Bay State Cruise라는 선사에서 5월~10월 기간에만 운행을 하는데, 고속선(Fast Ferry)은 어른 $63부터로 1시간반이 소요된다.

돌아보니까 굉장히 특이하고 높은 탑이 눈에 띄었는데, 1620년에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온 '순례의 조상들'을 기념하는 필그림 모뉴먼트(Pilgrim Monument)이다. 그들은 전편에서 소개했던 플리머스(Plymouth)에 정착했다고 해놓고, 왜 여기에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지는 잠시 후에 다시 알려드린다.

여름 휴가철에는 굉장히 붐비는 '섬머타운'이라지만, 자동차 뒷유리창과 건물 지붕에 밤사이 하얗게 진눈깨비가 내려서 쌓일만큼 추웠던 3월 중순의 이른 아침에는 거의 유령마을 '고스트타운' 수준으로 적막했다.

말끔하게 지어진 타운홀(Town Hall) 너머로 필그림 기념탑과 박물관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이는데, 역시 비수기라서 아예 문을 열지 않았다. 저 탑이 이 마을에 세워진 사연을 알아보기 위해서 마을 끝에 있는 Pilgrims' First Landing Park라는 곳을 찾아갔다.

공원 중앙에 만들어진 이 동판에 따르면, 대서양을 건너 항해한 필그림들은 1620년 11월 11일에 이 부근에서 육지를 처음 밟았다. 하지만 원래 그들의 목적지는 훨씬 남쪽인 지금의 버지니아였기 때문에, 이 땅에서는 영국 국왕의 특허장을 사용할 수가 없어서 자체적으로 식민지를 수립해야 했다. 그래서 이 앞바다에 정박한 메이플라워 호의 선실에서 성인 남자 41명이 서명한 계약서를 체결하는데, 그것이 바로 메이플라워 서약(Mayflower Compact)으로 식민지의 기본법이 되고, 궁극적으로 미국의 정치사상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건이다.

이제 케이프코드 국립해안을 둘러보기 위해서 북쪽에 있는 프로빈스랜드(Province Lands) 비지터센터를 찾아왔는데, 역시 비수기라 문을 열지 않았고 내부는 수리중이었다. 참, 필그림들은 자신들이 도착한 여기가 삼면이 바다인 길쭉한 반도라는 것을 확인한 후에 다시 모두 배에 올라서, 그해 12월 21일에 케이프코드 만(Cape Cod Bay)을 서쪽으로 건너 전편에 소개했던 플리머스(Plymouth)에 최종적으로 상륙을 해서 마을을 건설한 것이다.

위로 올라간 김에 제일 북쪽의 해안인 레이스포인트비치(Race Point Beach)까지 왔는데, 센 바람에 모래까지 날려서 도저히 차에서 내릴 수가 없었다. 주차장에 외롭게 세워져 있던 저 차는 거의 '샌딩(sanding)'으로 페인트 도장이 벗겨진 것처럼 보일 정도여서, 저 사이로 걸어가서 대서양과 만나는 것은 포기하고 바로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6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트루로(Truro) 마을의 하이랜드 등대(Highland Lighthouse)를 찾아왔다. 안내판에 필기체로 씌여있는 "I have a room all to myself; it is natures."라는 말은 전편에서 소개했던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의 <코드곶> 책에서 따온 것이다.

이 해안공원에 있는 18개의 등대들 중에서 그냥 '케이프코드 등대'라고 불리는 대표적인 등대라고는 하지만, 혼자 저기까지 걸어가볼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곳에서 진짜로 유명한 등대는 따로 있기 때문인데, 그래서 다시 차에 올라서 더 남쪽으로 달려서 어제 들렀던 입구쪽 비지터센터가 있는 이스트햄(Eastham) 지역까지 내려갔다.

바로 그 등대는 스톱(Stop) 표지판과 똑같은 빨간색으로 윗쪽을 칠해놓은 너셋 라이트하우스(Nauset Lighthouse)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필그림들이 상륙한 첫 해 겨울에 절반 이상이 목숨을 잃었지만, 나머지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옥수수 씨앗을 주고 농사법을 가르쳐 준 원주민들이 '너셋(Nauset)'인데, 독립된 원주민 부족은 오래 전에 소멸되었고 그 이름만 이렇게 남아있다고...

케이프코드에 와서 이 등대를 안 보고 가면, 뉴욕 여행에서 타임스퀘어를 빼먹는 것과 같다는 설득에 따님도 차에서 내려서 주차장에서 여기까지 걸어왔다~

왼편의 아내는 이런 벤치 하나 우리집 뒷마당에 놔두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오른편의 지혜는 등대 보고 사진도 찍었으니 빨리 따뜻한 차로 돌아가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안내판의 설명이 굉장히 복잡한데 (클릭해서 직접 읽으실 수 있음), 간단히 정리하면 1836년부터 여기 많은 등대들이 세워졌다가 심한 바닷바람에 낡아 버려지고, 지금의 등대는 1923년에 만들어져서 1940년부터 위쪽만 빨간색으로 칠했다는 내용이다.

빨간 등대야 한국에도 있고 별로 높지도 않아서, 사실 특별할 것 없는 이 너셋 라이트가 '감자칩 등대'로 불리며 유명해진 이유는 바로 아래와 같이 미동부에서 인기있다는 케이프코드 감자칩(Cape Cod Potato Chips)의 포장지에 떡하니 등장해주시기 때문이다.

봄방학 여행계획을 세울 때 코스트코에서 이렇게 처음 눈에 띄어서 샀는데, 안 짜고 기름기도 적어서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또 먹고 있다. 등대 구경을 마친 우리가 모르고 지나쳤던 케이프코드의 하이애니스(Hyannis) 마을에서 1980년에 탄생한 감자칩으로 동부에서는 제법 유명한 브랜드이다. 하이애니스는 보스턴 출신인 케네디 대통령의 고향이라서 박물관도 있으며, 전편에서 소개한 마사스빈야드(Martha's Vineyard)와 낸터컷(Nantucket) 섬으로 배가 떠나고, 무엇보다 무료로 감자칩 공장투어가 가능하다고 하므로 다음 번에는 꼭 들러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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