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원 여행기

뉴베드포드 고래잡이 국립역사공원(New Bedford Whaling National Historical Park)과 포경 박물관

위기주부 2022. 4. 11.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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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에서 워싱턴까지 짧은 봄방학 여행계획을 세우면서 어디를 들러야 하나 참 고민이 많았다. 왜냐하면 캘리포니아에만 9개나 있는 내셔널파크(National Park)가 그 750 km의 경로 부근에는 하나도 없을 뿐더러, 그 아래 레벨의 내셔널모뉴먼트(National Monument)도 자연의 경치로 지정된 곳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립공원청이 지정한 '다른 국립공원들'은 많이 있는데, 거의 대부분 역사와 관련된 곳들이라서, 그 중 몇 곳만 골라서 구경하기로 했다. (물론 경로 가운데 있는 도시인 뉴욕이 최고의 관광지이기는 하지만, 올여름에 몇 번 방문할 기회가 오기 때문에 이번에는 들리지 않았음)

그나마 자연의 경치로 지정된 국립공원이라 할 수 있었던 케이프코드 국립해안(Cape Cod National Seashore) 구경을 마치고, 1시간 정도 차를 달려 도착한 곳은 아직 매사추세츠 주에 속하는 뉴베드포드(New Bedford)라는 항구도시였다. 일단 점심을 먹기 위해서 아내가 검색으로 찾은 '까만고래' 블랙웨일(Black Whale) 식당으로 들어가고 있다.

오전 11시가 좀 지나서 거의 문 열자마자 들어와서 창가에 여유있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마침 일요일이라서 그랬는지 1시간여 후에 우리가 식사를 마치고 나갈 때에는 사진에 보이는 자리가 모두 만석이었다는...

시원한 맥주가 한 잔 먼저 나왔다~ 창밖으로는 항구의 풍경이기는 한데, 요트가 떠 있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어선들이 빼곡히 정박해 있는 어업기지(?)의 모습이었다.

최근에 따님과 같이 여행할 때는 먹고 자는데 급을 조금씩 올려보고 있다. "지금은 우리 카드로 계산하지만, 좀 있으면 너 카드로 계산하지 않겠어? 이렇게 미리 급을 좀 올려서 선심을 써놔야 나중에 너가 좋은데 데려갈거 아니야~ 시간 금방 간다." 모녀의 뒤로는 까만 고래 한마리가 지나가고 있다.

점심을 잘 먹고 잠깐 차를 몰고 뉴베드포드(New Bedford)의 구시가지로 왔는데, 도로가 어느 유럽의 뒷골목처럼 돌멩이를 박아서 만들어져 있었다. 왼편에 커다란 '대왕 오징어'가 보이는 곳은 오징어 박물관이 아니라, 그걸 먹고 사는 고래를 잡는 것에 관한 뉴베드포드 포경 박물관(New Bedford Whaling Museum)이다.

비지터센터를 찾다가 먼저 마주친 이 Seaman's Bethel 건물은 1832년에 만들어진 '선원들의 예배당'으로, "Call me Ishmael."로 시작하는 허먼 멜빌(Herman Melville)의 1851년 소설 <백경>에 등장하는 장소이다. 내부에는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한 존 휴스턴 감독 및 그레고리 펙 주연의 1956년 영화 <모비딕(Moby-Dick)>에 등장하는 보트 모양의 설교단(pulpit)이 만들어져 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이 날은 내부를 구경할 수는 없었다.

작년으로 25주년이 되었다는 현수막이 걸려있는 뉴베드포드 고래잡이 국립역사공원(New Bedford Whaling National Historical Park)의 비지터센터를 찾았는데, 이 건물도 예전에 은행으로 사용되었던 역사적인 Corson Building이라고 한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우리를 아주 반갑게 맞아주고, 위기주부가 수집하는 공원 브로셔도 먼저 뽑아서 건네 주었던 직원의 뒷모습이 나왔다. 그가 건넨 브로셔는 2개였는데 다른 하나는 남부 흑인노예들의 탈출을 의미하는 '지하철도(Underground Railroad)'에 관한 것으로, 당시 뉴베드포드가 남부를 탈출한 흑인들이 자유를 얻어서 생활한 대표적인 북부의 도시들 중 하나이다. 지난 연말에 동네 근처 내셔널하버 여행기에서 소개했던 노예제 폐지론자인 프레더릭 더글라스(Frederick Douglass)도 자유인으로 처음 뉴베드포드에 정착했고, 앞바다 낸터컷(Nantucket) 섬의 집회에서 1841년의 연설로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서 소개영화를 보기 위해서 극장으로 이동하는 통로의 벽에 아래와 같은 소설 <백경>에 나오는 글귀가 씌여있고, 이 항구를 출발한 포경선들이 돌아다녔던 바다들이 표시된 세계지도가 벽에 걸려있다.

"For many years past the whale-ship has been the pioneer in ferreting out the remotest and least known parts of the earth."

다른 국립공원은 몰라도 역사공원을 방문하면 비지터센터에서 보여주는 영화를 반드시 봐야 한다. <The City That Lit The World>라는 영화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전기가 발명되기 전까지 불을 밝히는데 사용된 고래기름을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한 곳이 여기라고 한다. 왼쪽의 포스터는 영화에도 나오지만 알래스카에서도 제일 북쪽에 사는 부족의 마을까지 가서 고래잡이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곳에 가면 Iñupiat Heritage Center라고 미국 국립공원청 홈페이지에 소개된 가장 높은 위도의 장소가 있단다.

비지터센터를 나와서 Water St와 만나는 정면에는 지금도 은행으로 사용되는 1831년에 지어진 The Double Bank 건물이 신전처럼 우뚝 서있다. 포경업의 전성기이던 19세기에는 뉴베드포드(New Bedford)가 세계 최대의 포경항구였고, 거주민들의 평균소득으로 따져본다면 한 때 '전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the wealthiest city in the world per capita)'였을거라고 한다.

앞서 정면 모습을 보여드린 뉴베드포드 포경 박물관(New Bedford Whaling Museum)의 고래꼬리 조형물로, 국립역사공원 안에 위치하기는 하지만 별도의 입장료가 있어서 그냥 지나치려던 곳인데, 아까 친절한 비지터센터의 직원이 박물관 로비를 구경하는 것은 공짜라고 해서 들어가 보았다.

아주 예전에 "미국에서 꼭 가봐야할 '고요하고 놀라운' 아름다움이 있는 10곳"이라는 제목의 포스팅을 올린 적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낸터컷 섬에 있는 고래뼈가 천정에 매달린 포경 박물관이었다. 비록 그 섬은 비싼 뱃삯 때문에 이번에 못 갔지만, 이렇게 고래뼈는 여기서 원 없이 볼 수가 있었다. 바닥에 놓인 핑크색은 고래의 심장 모형이라고 하는데 아이들이 통과하며 놀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여러 종류 고래의 꼬리 크기를 비교한 전시물 앞에서 아직은 실내 마스크를 한 모녀의 모습이다.

고래의 뼈도 종류별로 매달려 있고, 앞쪽에 보이는 까만 것은 고래의 입과 혀의 모형이었던 것 같다. 로비의 벽에도 많은 전시가 있어서 입장료도 없이 둘러보기가 미안할 정도였는데, 유료인 박물관 내부에는 포경선을 생생하게 재현해 놓았다고 한다.

"우리는 이 정도 둘러보는 것으로 충분해요~"

지혜와 함께 고래들에 관한 기본적인 설명이 씌여있는 안내판을 읽고있는 모습을 아내가 광각으로 찍었다.

옛날옛적 위기주부의 18번이 송창식 선배님의 <고래사냥>이었다~ ♪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 뿐이네 ...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 그런데, 동해를 건너고 태평양을 건너고, 또 대륙을 건너서 참 멀리도 왔다...

갈 길이 멀어서 우리는 다시 출발해 4시간 가까이 로드아일랜드, 코네티컷, 뉴욕 주를 차례로 논스탑으로 지나 뉴저지 턴파이크를 탄 후에야 휴게소에 들렀다. 맨하탄의 스카이라인이 멀리 보이던 휴게소의 이름은 빈스 롬바르디(Vince Rombardi)로 미식축구 우승컵이 바로 그의 이름을 땄는데, 뉴욕 브루클린 출신이지만 코치 경력을 뉴저지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잠깐만 쉬면서 커피 한 잔만 마시고는 철지난 봄눈이 조금씩 내리는 고속도로를 2시간 이상 더 달려서, 보스턴으로 올라갈 때는 지나가지 않았던 펜실베니아(Pennsylvania) 주로 들어가서 숙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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