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들어본 적이 있는 <해저 2만리>와 <80일간의 세계일주>의 작가로 SF 문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프랑스 소설가 쥘 베른(Jules Verne)의 작품 중에 1864년작 <지구 속 여행> Journey to the Center of the Earth 소설이 있다. 2008년에 같은 영어 제목의 영화로 제작된 것을 기억하는 분도 계실텐데, 원작 소설과 영화에서 주인공 일행이 지하의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 땅 속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바로 아이슬란드 섬의 서쪽 끝에 있는 사화산 스나이펠스요쿨(Snæfellsjökull)의 분화구였다고 한다.

오로라 사진으로 유명한 장소 구경을 마치고 계속 스나이펠스네스(Snæfellsnes) 반도의 서쪽을 향해 달린다. 반도의 서쪽 끝부분 전체는 화산의 이름을 따서 스나이펠스요쿨 국립공원(Snæfellsjökuls þjóðgarður)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입구 마을에 아주 멋진 건물의 최신 비지터센터가 만들어져 있었지만, 이미 오후 5시가 넘어서 문을 닫았기 때문에 그냥 지나쳐서 바로 땅끝의 노란 등대를 찾아갔다.

포장도로를 벗어나서 이런 바닷가 용암지대에 만들어진 거친 비포장 도로를, 지프 레니게이드 4WD 렌트카를 몰고 땅끝의 등대를 향해 달리는 것 자체가 재미있었던 기억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영어로는 대부분 오렌지색이라 표현을 하는 것 같지만, 위기주부는 개나리색이라 부르고 싶은 색깔의 정사각 기둥 모양의 이 등대는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데... 지금 우리처럼 육지에서 가까이 볼 때는 '피난처 등대'라는 뜻의 스칼라스나가비티(Skálasnagaviti)로 불리지만,

이러한 검은 현무암 절벽의 바닷가 위에 우뚝 솟아있어서, 뱃사람들에게는 '검은 절벽 위'를 의미하는 스뵈르툴로프트 등대(Svörtuloft Lighthouse)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여기가 아이슬란드 섬의 서쪽 끝이니까, 저 수평선 너머 혹시 그린란드가 보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이렇게 잘 만들어진 전망대에서 사방을 둘러보며 했었던 기억이 나지만, 구글어스로 확인을 해보니 여기서도 그린란드(Greenland)까지는 직선으로 400 km 이상 떨어져 있는 먼 거리이다.

절벽 아래로는 차갑고 무서운 북대서양의 거친 파도가 깍아놓은 바위 아치와 다양한 새들도 구경할 수 있었는데, 더 멋진 아치와 더 많은 바닷새들이 이후로도 계속 등장하게 된다.

파란 하늘 아래 개나리색 등대의 사진을 다시 보니 다른 두 곳이 떠오르는데, 페루 리마 벽화마을의 스타벅스와 포트워싱턴 공원의 비지터센터 건물이지만, 두 곳 모두 날씨는 흐려서 이런 선명한 대비는 아니었다.^^ 그리고 여기서는 등대의 뒤쪽으로 구름에 가린 모습만 살짝 보여주는 스나이펠스요쿨 화산과 빙하는 다음 목적지의 주차장에서 아래와 같이 깨끗하게 전체를 볼 수 있었다.

얼핏 낮아 보이지만 1,446 m 높이의 약 70만년 전에 폭발해서 만들어진 순상화산으로 정상부에 빙하와 함께 '지하세계'로 이어지는 통로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여기는 도로변에 넓은 주차장이 만들어져 있어서 커다란 관광버스들도 보였는데,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당일 투어로 스나이펠스네스 반도 투어를 할 때 반드시 들리는 가장 유명한 볼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참, 빙하와 반도의 이름 앞에 공통으로 들어간 '스나이펠스'는 비슷한 영어 발음의 '스노우폴(snow fall)'이란 뜻이란다~

그 볼거리는 바로 바닷가 절벽 위애 성채처럼 우뚝 솟아있는 론드랑가르(Lóndrangar) 바위로, 방금 관광버스가 떠나서 그런지 전망대를 우리 가족이 독차지할 수 있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사진 아래쪽의 사람들처럼 걸어서 가까이 가면 옛날 건물의 흔적과 함께 높이 75미터의 바위탑을 더 자세히 볼 수도 있는데, 지역 민담에서는 엘프들이 사는 장소라 여겨지기도 하고 유명 시인이 악마를 만난 장소라 묘사하기도 하는 등, 아이슬란드 사람들에게는 신화와 신비로 가득찬 상상력이 깃든 바위산이라 한다.

발 아래를 보니 이끼 낀 바위섬의 한쪽으로만 갈매기들이 가득 앉아 있어서 그들이 울어대는 소리가 아주 시끄러웠다.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새들도 엄청 많아서 따라 구경을 하다 반대편으로 시선을 돌리니,

아래쪽에 별도의 전망대가 또 만들어져 있어서 그리로 가보기로 했다. 그리고 절벽의 색깔은 다르지만 거칠고 원시적인 해안선의 풍경이 4년전에 가족여행으로 다녀왔던 북부 캘리포니아 바닷가를 또 떠올리게 한다~ 점점 옛날 여행들의 추억을 먹고 사는 듯...ㅎㅎ

좀 전의 바위섬은 물론이고 우리가 서있던 전망대 바로 아래의 절벽까지, 정말 무수히 많은 바닷새들이 집을 짓고 있었고 또 저녁 식사를 먹는지 계속 바다와 둥지를 오가며 날아다녀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동영상도 많이 찍었지만 그냥 생략^^) 대부분은 하얀 갈매기같아 보였지만 특이하게도 바위섬의 아래쪽 1/3 지점을 자세히 보니,

새들도 혹시 흑백차별을 하는지 거기만 펭귄을 좀 닮은 것 같기도 한 까만 새들이 따로 모여 있었다... 이미 저녁 7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이걸로 끝이려니 생각했는데, 가이드님께서 국립공원을 바로 벗어난 마을에 하나 더 볼 것이 남았다고 또 네비게이션에 입력하셨다.

슬슬 어두워지기 시작해서 그런지 여기서 처음 봤을 때는 굴뚝이 있는 돌로 만든 집인 줄 알았지만, 오른쪽의 안내판을 열심히 읽은 따님이 이 지역 신화 속에 등장하는 반인반트롤(half-man half-troll)의 거인 바르두르(Bárður)의 석상이라고 알려주었다.

모녀가 함께 높이 6미터의 석상 가운데 통로의 뒤쪽에서 다정한 척 포즈를 취했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노르웨이 왕의 서자였는데 위협을 피해 가족과 함께 아이슬란드로 이주했으며, 큰 딸이 사고를 당하고 이복형제와 심하게 다툰 후에 스나이펠스요쿨 빙하산으로 올라가 사라졌다 한다. 그 후로 사람들은 바르두르가 이 지역의 수호신인 스나이펠스아스(Snæfellsáss)가 되었다고 믿으며, 어려움이 있을 때 도움을 청하는 전통이 생기게 된다.

돌을 쌓아서 만든 커다란 코와 수염의 묘사가 인상적이었던 이 조형물 자체는 비교적 최근인 1985년에 아이슬란드 조각가가 만들었단다. 찬바람이 점점 더 심해졌지만, 여기도 바닷가 절벽에 구멍 뚫린 바위가 있다고 해서 정말 마지막으로 찾아가보기로 했다.

작은 구멍이 하나 더 있는게,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아치스 국립공원의 '더블오(Double-O)' 아치가 또 떠오른다. (여기를 클릭해 사진은 보실 수 있음) 근처에 사람이 위로 올라갈 수 있는 바닷가 아치도 있다지만, 이제는 정말로 자러 갈(?) 시간이 되어서 2시간반 거리의 예약한 숙소를 찍고 출발했다.

무인 주유소에 들러서 차에 기름을 넣고 신용카드로 결제해야 입장이 가능한 화장실을 이용하고 나와보니, 사모님이 아직도 해가 지지 않은 들판에서 풀을 뜯고 있는 양들의 사진을 찍고 계셨다. "귀여운 아이슬란드의 양들도 내일이면 이별이네..."

레이캬비크 교외의 에어비앤비 숙소에 어김없이 밤 10시가 넘어 도착을 해서, 스팸 구이와 남은 반찬으로 저녁을 맛있게 먹고 여행기 프롤로그에 언급했던 것처럼 남은 맥주 예닐곱 캔을 모두 마시며 즐거운 대화를 나눈 후에, 새벽 1시쯤 잠자리에 들기 직전에 짐을 모두 펼쳐놓은 지저분한 모습이다. 소설 <지구 속 여행>의 주인공들은 아이슬란드 화산의 분화구로 들어가서 모험을 한 후에 분출하는 용암을 타고 다시 땅 밖으로 나오니 이탈리아 남부의 어떤 화산섬이었다고 하지만, 다음날 우리는 뗏목 대신에 비행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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