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수도 워싱턴DC 내셔널몰에서는 독립기념일 전후로 50개 주의 문화와 특산물을 소개하는 박람회가 열렸고, 당일에는 무려 85만발의 역대급 불꽃놀이가 폭염과 소나기의 우여곡절 끝에 펼쳐졌다. 그 전 6월에는 백악관 앞마당에서 UFC 격투기 대회도 개최됐었고, 이번 8월말 주말에는 DC의 도심에서 '프리덤 250 그랑프리' 자동차 경주도 열린단다. 근처에 살지만 가볼 시간도 없었고 솔직히 누구 때문에 별로 내키지도 않아 그냥 넘어갈까 하다가, 미국사에 진심인 위기주부 스타일로 건국 250주년 축하 포스팅을 하나 적어본다.
연방우정청(United States Postal Service)에서 250주년을 기념해 다양한 우표를 올해 발행했는데, 그 중에서 '미국 독립혁명의 인물들(Figures of the American Revolution)' 25장 세트가 눈길을 끌었다. 소위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이라 불리는 백인 남성들만 당시에 활동한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려고 흑인과 원주민 및 여성이 다수 포함되어서 찾아 공부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순번과 간단한 소개 아래의 사진을 클릭하면, 이미 본 블로그에 등장한 적이 있으면 해당 글로, 아니면 관련 유적지나 설명으로 연결된다. (핵심 7인의 파운딩파더는 *로 표시)
1. 애비게일 애덤스(Abigail Adams): 미국 독립과 여성의 권리 및 노예제 폐지를 주장한 지식인
바로 아래의 남편보다 대통령 일을 훨씬 더 잘 했을거라는 평가를 받는 영부인이다. 메사추세츠 보스턴 근교의 퀸시(Quincy)에 있는 Adams National Historical Park는 그들 부부와 제6대 대통령이 되는 아들까지 모두 기념하는 장소라서 언젠가는 꼭 방문해야하는 곳이다.
2. 존 애덤스*(John Adams): 대륙회의 대표 및 독립선언서 기초 위원으로 미국의 제2대 대통령
국립미술관에 걸려있는 1~3대 대통령의 초상화들 가운데에 걸려있어 어부지리로 딱 한 번 얼굴이 등장했었다.^^ 평생 앙숙인 오른쪽 제퍼슨 때문에 연임에 실패했지만 말년에 화해했고, 90세까지 장수해서 정확히 독립 50주년 7월 4일에 둘은 몇 시간 차이로 숨을 거두었단다.
3. 아괄롱동과스(Agwalongdongwas): 일명 "Good Peter"라 불리며 미국 독립군을 지원한 오네이다 부족의 지도자
최근의 거의 유일한 무플 포스팅인 스탠윅스 요새(Fort Stanwix) 여행기에 유리창 너머로 등장한 같은 헤어스타일의 인물이 혹시 그였을까? 독립전쟁 중에는 안내와 통역을 맡았었고, 그 후 1784년에 미국 정부와 원주민간의 영토 경계를 정한 스탠윅스 조약 과정에도 참여했다.
4. 제임스 아미스테드(James Armistead): 요크타운 전투 승리에 결정적인 정보를 빼낸 흑인 노예 출신의 스파이
라파예트의 지시에 따라 탈출 노예로 위장해 영국군에 잠입해, 콘월리스 사령관의 시종으로 신임을 얻어 미국 최초의 이중간첩이 된다. 사진은 지금 DC의 프리덤 플라자에서 진행되는 '혁명의 12인 병사들' 단기 전시회에 포함된 황금색으로 빛나는 그의 첫번째 동상이다.
5. 콘플랜터(Cornplanter): 원주민의 생존을 위해 복잡한 선택을 해야 했던 세네카(Seneca) 부족의 추장
혁명기에는 이로쿼이 연맹을 이끌고 영국군에 가담했지만, 미국 독립 후에 평화의 외교관이 되어 원주민 부족의 영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사진의 물건은 조약 체결 후 워싱턴이 직접 그에게 선물했다는 도끼 겸 담뱃대인 Pipe-Tomahawk로 세네카 박물관에 남아 있다.
6. 존 디킨슨(John Dickinson): '혁명의 필객'으로 불리며 식민지의 권리를 옹호하는 많은 글을 쓴 정치가
방문했던 First State National Historical Park의 일부로 그의 농장이 보존되고 있는데, 거기까지 직접 들리지는 못했다. 온건파로 독립선언서 서명은 거부했지만, 그 후 대륙회의에서 연합규약 초안을 작성하고 특이하게 델라웨어와 펜실베니아 주지사를 모두 역임했다.
7.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외교관, 과학자, 노예제 폐지론자로 초대 우정청장
그의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닌 필라델피아에서 예전에 마주쳤던 프랭클린의 버블헤드! ㅎㅎ 독립선언 직후에 파리로 건너가 독특한 너구리 털모자를 쓰고 친미 여론을 형성했고, 새러토가 전투의 승리 후에 루이16세를 설득해 '군사 동맹'을 맺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단다.
8. 엘리자베스 프리먼(Elizabeth Freeman): 미국에서 소송을 통해 "Mumbet"으로 불리던 노예에서 해방된 최초의 흑인 여성
1780년 제정된 메사추세츠 주 헌법의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란 문구에 따라서 소송을 제기해 이겼고, 결국 13개 주들 중에서 메사추세츠가 최초로 1783년에 노예제를 폐지하기에 이른다. 사진은 그녀를 도운 변호사 사무실이 있던 자리에 최근 만들어진 동상이다.
9. 베르나르도 데 갈베스(Bernardo de Gálvez): 영국군을 플로리다에서 몰아내 독립을 도운 스페인령 루이지애나 총독
중남미 독립 영웅들이 모여있는 DC의 내셔널몰 북서쪽 구역을 소개한 글에서 마지막에 이름만 등장했었는데, 이번에 동상의 사진도 뒤늦게 찾아봤다. 특히 2014년에는 지금까지 단 8명밖에 없는 '미국 명예 시민권(Honorary U.S. Citizenship)'이 그에게 추서되었다.
10. 나다니엘 그린(Nathanael Greene): 비폭력의 퀘이커 교도지만 남부 전선에서 독립 전쟁의 판도를 바꾼 대륙군 장군
지난 봄에 혼자 떠났던 역사기행의 첫번째 방문지에서 직접 만났던 '대륙군의 2인자' 그린 장군의 기마상과 안내판이다. 여기 외에도 그의 고향인 로드아일랜드 주에 직접 지어서 살았던 집이 박물관으로 남아 있고, 사망한 조지아 주에도 기념비와 묘지가 만들어졌다.
11.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 워싱턴의 부관이었고 연방주의자 논집을 써 헌법을 옹호한 초대 재무장관
이 모든 역사공부의 사실상 시발점이 된 뮤지컬 '해밀턴(Hamilton: An American Musical)'을 9년전 LA 헐리우드의 팬테이지 극장에서 보기 직전에 찍은 가족사진이다.^^ 그렇게 시작되어 5년전에 동부로 이사를 온게 기폭제가 되었는데, 과연 이 부질없는 학습의 종착역은 어디일까?
12. 레뮤엘 헤인즈(Lemuel Haynes): 독립전쟁에 참전 후 최초의 개신교 흑인 목사가 된 노예제 폐지론자이자 지성인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버림받은 코네티컷, 민병대로 입대해 전투를 치렀던 타이콘데로가 요새, 30년 넘게 목회를 이끌었던 버몬트의 교회, 그리고 말년을 보내고 묻힌 뉴욕 등에 그의 흔적이 있다는데, 사진은 뒤늦게 그의 고향에 세워진 기념석이다.
13.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 유명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는 연설로 혁명의 불을 지핀 정치가
몇 년전 방문했던 리치먼드 주의사당의 워싱턴 기마상 아래에 양팔을 벌린 가운데 인물로, 인근의 세인트 존스 교회에서 "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라 포효하는 모습이다. 버지니아 초대 주지사를 지낸 그의 흔적은 남부 버지니아 몇 곳에 남아 보존되고 있단다.
14. 존 제이*(John Jay): 연방주의자 논집의 저자이자 전쟁을 끝낸 파리 조약의 대표 및 미국의 초대 대법원장
건국의 아버지들은 최대 140여명까지 꼽지만, 역사가 리처드 B. 모리스가 정의한 '핵심 7인(The Big Seven)'들 중에서 유일하게 블로그에 한 번도 이름이 나오지 않았던 인물이다. 대법원장에서 물러난 후 고향인 뉴욕 주지사를 역임해 많은 장소가 주립사적지로 남아있다.
15.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미국 독립선언서의 핵심 초안 작성자이자 초대 국무장관 및 제3대 대통령
벚꽃 필 때 그의 기념관을 방문한 글도 여러 편 있지만, 5년전에 올린 후 지금까지 누적 조회수 14,000회 이상을 기록하고 있는 '스테디셀러' 포스팅인 앞면에는 제퍼슨의 얼굴이, 뒷면에는 완성된 독립선언서를 제출하는 그림이 인쇄된 2달러 지폐에 관한 글을 링크한다.
16. 타데우시 코시치우슈코(Thaddeus Kosciuszko): 새러토가 전투에서 요새를 설계해 승리를 이끈 폴란드 군사 엔지니어
필라델피아에 있는 그의 기념관을 찾아갔던 여행기에서 소개한 그림이다. 가정교사로 들어간 백작의 딸과 사랑에 빠져 신대륙으로 함께 도주하려다 발각되어 두들겨 맞고 쫓겨난 후, 신분 차이로 인한 실연의 절망으로 혼자 죽을 작정으로 미국땅을 밟았던 로맨티스트이다!
17. 라파예트 후작(Marquis de Lafayette): 대륙군의 요크타운 최종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한 프랑스 출신의 장군
백악관 바로 북쪽에 있는 그의 이름을 딴 공원에 세워진 동상으로 미국을 상징하는 여신이 그에게 칼을 바치는 모습이다. 여기 외에도 볼티모어 중심가의 기마상을 봤었고, 뉴욕 맨하탄 유니언스퀘어에는 자유의 여신상 조각가가 만들어 미국에 선물한 그의 청동상이 세워져 있다.
18.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 미국 헌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연방주의자 논집의 저자이자 제4대 대통령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매디슨 스퀘어 가든 등등 그의 이름만 여러차례 등장했지만, 직접 찾아간 곳은 없어서 공식 초상화를 올린다. 뮤지컬 해밀턴에서 덩치 큰 배우가 연기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163cm의 최단신에 몸무게도 45kg에 불과해 병약했지만 85세까지 장수했단다.
19. 토머스 페인(Thomas Paine): 식민지인들에게 독립의 당위성을 알린 불후의 팸플릿 '상식(Common Sense)'의 저자
영국 태생으로 1774년에 필라델피아로 이주해서, 2년후 식민지 독립의 당위성을 주장한 <상식>을 출간해 3개월에 10만부 이상 판매되어 당해 독립선언의 도화선이 되었다. 링크는 뉴욕의 민간 기념관이지만, 사진은 곧 내셔널몰에 들어설 그를 기리는 국립기념물 동상과 조각가이다.
20. 에스더 데 베르트 리드(Esther de Berdt Reed): 독립군을 위한 최초의 대규모 민간 모금 운동을 주도한 여성 운동가
영국 런던에서 만난 식민지 법학도와 결혼해 미국에 왔는데, 남편이 1778년에 펜실베니아 초대 행정관이 되며 퍼스트레이디가 된 후, 익명으로 <Sentiments of an American Woman>을 발간해 여성의 사회참여를 독려하고, 여성회를 조직해 대륙군을 위한 모금 활동을 했다.
21. 폴 리비어(Paul Revere): "영국군이 온다!"라며 한밤중을 달려 전령 역할을 한 보스턴의 은세공사이자 애국자
프리덤 트레일을 하며 잠깐 봤던 올드노스 교회 앞에 세워진, 1775년의 렉싱턴·콩코드 전투 전날밤 그가 말을 달리는 동상이다. 여행기에도 나오는 그 전 1770년의 보스턴 학살을 널리 알린 판화도 그가 제작했고, 1773년의 '보스턴 차 사건'에도 직접 참여했던 '자유의 아들'이다.
22. 데보라 샘슨(Deborah Sampson): 남장을 하고 17개월 동안 대륙군에 복무해 미국 최초로 군인연금을 받은 여성
독립전쟁 말기에 '로버트 셔틀리프(Robert Shirtliff)'란 가명으로 입대해 허벅지 총상을 당하며 직접 전투에 참여했고, 여성으로 밝혀진 후 명예롭게 제대했다. 사진은 고향 도서관에 세워진 동상이고, 링크는 그녀의 이름을 딴 여성 참전용사상을 제정한 메사추세츠 주정부의 소개이다.
23. 폰 슈토이벤 남작(Baron von Steuben): 오합지졸 대륙군을 체계적 정예 군대로 훈련시킨 프로이센 출신의 군사 고문
밸리포지 방문기에서 그의 이름이 처음 등장했으나 이 동상을 그 때 직접 찾아보지는 못했었고, 앞서 언급한 DC의 라파예트 공원에도 동상이 있는데 역시 사진은 건너뛰었다. 그는 남성 참모들과 연인 관계였던 것이 밝혀져, 독립혁명 시기의 대표적인 성소수자로 재조명받고 있다.
24. 머시 오티스 워런(Mercy Otis Warren): 혁명기에 영국의 통치를 비판하는 풍자극과 정치 팸플릿을 쓴 작가이자 시인
메사추세츠 명망가의 딸로 식민지 총독과 관리를 조롱하는 풍자 희곡을 익명으로 발표했고, 혁명 의식을 고취하는 시와 선전문을 썼다. 건국 후에는 3권의 혁명사를 출간해 미국 최초의 여성 역사학자로 여기지기도 하는데, 사진은 케이프코드 법원 앞에 세워진 그녀의 동상이다.
25.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대륙군 총사령관으로서 독립 전쟁을 승리로 이끈 미국의 초대 대통령.
알파벳 순서에 따라 마지막을 장식한 워싱턴은 무슨 사진을 올릴까 하다가, 자유와 승리의 여신 및 13개의 식민지를 상징하는 처녀들과 함께 그려진 의사당 천장화를 보여드린다. 원래 이 건물 아래에 그의 무덤이 만들어질 예정이었으나, 본인의 유언에 따라 살던 집으로 바뀌었다.
이상과 같이 독립 250주년을 기념하는 우표에 등장한 25명에 대한 소개를 마치고 정리해보니, 직접 관련 유적지를 찾아 블로그에 소개했던게 6명, 이름이 잠깐이라도 등장했던게 8명, 그리고 나머지 11명은 처음 알게된 인물들이다. 여기 끝까지 모두 읽으시고 사진들을 클릭이나 터치해 관련 링크를 하나라도 확인하신게 몇 분이라도 계신다면, 서두에 언급한 축하의 목적은 달성된 것으로 생각된다. 무더위가 끝나고 바람이 선선해지면 그 동안 계속 미뤄놓았던 조지 워싱턴이 잠들어 있는 그의 고향집이나 방문을 한 번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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