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수도인 워싱턴DC에는 처음부터 전시를 목적으로 지어진 박물관과 미술관들도 많지만, 다양한 관공서들이 고유한 업무의 목적으로 건설되었다가 그 일과 관련된 소장품들을 건물 일부에 전시관을 만들어 공개하는 장소도 많이 있다. 그러한 곳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이고 또 내셔널몰에서도 가까워 방문하기에 좋은 곳이 바로 미국의 중요한 문서와 기록들을 수집 관리하는 기구인 NARA(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에서 운영하는 국립 문서보관소 박물관(National Archives Museum)이다.
내셔널몰의 국립미술관 조각정원 구경을 마치고, 북쪽으로 헌법가(Constitution Ave) 길을 건너면 바로 1935년에 완공되었다는 내셔널아카이브 건물(National Archives Building)이 서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일단 3월 이른 봄의 햇살이 너무 뜨거웠기 때문에, 길가 푸드트럭에서 파는 버블티 한 잔 사서 마시기로 했다. 모녀가 무슨 맛을 먹을까 열심히 의논하는 중...
망고 맛으로 고른 버블티를 들고 신전같은 건물의 입구에서 모녀가 사진을 찍었다. 기둥들 사이에는 3월 여성의 달을 맞아서 여성참정권과 관련한 특별전시가 열리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배너가 걸려있다.
건물이 멋있어서 정면에서 광각으로 부녀사진도 한 장 찍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썰렁한거야~ 문 닫았나...?" 그게 아니라, 관람객들의 입구는 정면 계단의 왼쪽으로 따로 만들어져 있었다.
푸른색 바탕의 박물관 로고가 무슨 그림인가 했더니, 독수리의 머리와 날개로 건물 정면 꼭대기 좌우에 만들어진 조각을 형상화한 것이었다. 입장하는 줄이 두 개로 나누어진 것이 보이는데, 그냥 기다려서 들어가는 사람들이 왼편에 서있고, 비어있는 오른편은 티켓을 예매한 사람들이 기다리지 않고 들어갈 수 있는 줄이다. 여기를 클릭해서 recreation.gov 사이트에서 일인당 $1로 예매가 가능한데, 이 날 우리는 예매없이 5분 정도만에 들어갔지만 여름방학 성수기에는 30분 이상 기다리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렇게 기다리고 있으면 가끔 하얀 제복을 입은 경비원이 나와서는 전시장은 사진촬영이 금지이므로 카메라와 핸드폰을 모두 가방에 넣으라고 했다. (미리 건물 외관 사진을 많이 올린 이유가 있었음^^) 또 형식적으로 가방 안을 살펴보는 다른 스미소니언 박물관들과는 달리,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면 비행기 탑승할 때와 같이 엑스레이 검색을 통과해야만 입장이 가능했다. 그래서 이하 아래의 사진들은 박물관이나 관련 사이트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1층 입구의 정면에는 David M. Rubenstein Gallery라고 명명된 '권리의 기록(Records of Rights)' 상설전시실이 있다. 데이비드 루벤스타인은 세계최대 사모펀드 중의 하나인 칼라일그룹(Carlyle Group)의 창업자인 억만장자로 2011년에 이 전시실을 새로 만드는데만 13.5백만불을 기부했는데, 그 뿐만이 아니라 사진 오른편에 보이는 노란색 특수 보관함에 들어있는 오래된 양피지 한 장을 2007년 경매에서 21.3백만불에 사서는 이 곳에 영구대여 형식으로 기증했다.
그 양피지는 바로 인권을 최초로 성문화한 문서이자 민주주의의 시초로 여겨지는 영국의 대헌장(大憲章), 마그나카르타(Magna Carta)로 1215년에 최초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고, 1297년에 영국의 왕이었던 에드워드 1세의 인장이 달려있는 것이다. 이 외에 전시실 안에는 링컨이 서명한 노예해방(Emancipation Proclamation) 문서 등의 인간의 권리와 관련된 미국의 많은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2층으로 올라가서 두꺼운 문을 밀고 들어가면 '자유의 헌장들(Charters of Freedom)'이라 불리는 중앙홀이 나오는데, 사진처럼 밝은 것이 아니라 굉장히 어둡고 실내온도가 뚝 떨어졌다! 좌우로 경비원이 지키고 있는 중앙에 4페이지로 된 헌법 원본이 있고, 그 왼쪽에 독립선언서, 오른쪽에 권리장전이 특수보관함에 전시되어 있는데, 이 사진에는 없지만 철문 앞에도 경비원이 지키고 서서는 홀 안의 사람들이 어느 정도 빠지고 나면 조금씩 입장을 시키고 있었다.
각각 독립선언서와 헌법을 제출하는 장면을 상상으로 묘사한 중앙홀 좌우 둥근 벽면의 포크너 벽화(Faulkner Murals)는 캔버스를 벽에 부착해서 그린 그림으로는 미국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두워서 그림이 있는지도 잘 모를 정도였고, 모든 전시박스 앞에는 사람들이 빼곡히 서서 시계방향으로 천천히 움직이면서 관람을 하게 된다.
요즘 미국정치학 수업을 듣는 따님이 왼쪽 구석부터 모든 전시를 꼼꼼히 보신다고 해서, 시간이 한 참 걸려서야 1776년에 작성된 미국 독립선언서(Declaration of Independence) 앞에 설 수 있었다. 크게 씌여진 제목과 제일 윗줄의 문장 그리고 아래쪽 가운데 가장 크고 진하게 싸인한 존 핸콕(John Hancock)의 서명 이외에는 거의 읽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글자가 희미해졌는데, 옛날에 35년 동안이나 햇빛이 비치는 곳에 잘못 보관되어서 그렇다고 한다.
커다랗게 씌여진 "We the People"로 시작하는 1787년에 씌여진 미국 헌법(Constitution of the United States) 4페이지를 휠체어에 앉으신 분까지 총 4명만 보고 있지만, 현실은 우리처럼 제일 앞에서 빈틈을 주지 않고 여기까지 움직여 온게 아니라면 가까이서 직접 읽어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뒤에 서있는 사람들이 빈틈이 생기면 바로 침투해 들어옴^^) 또 사람들 뒤쪽에도 경비원들이 지키고 있어서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기만 해도 바로 제지가 들어왔다.
중요 3문서의 마지막으로 미국의 권리장전(Bill of Rights)은 헌법에서 빠진 인권 부분을 명시적으로 보완하기 위해 1789년에 이 문서로 12개 조항을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그런데 이 문서의 첫번째와 두번째 조항은 주의회의 다수 동의를 받지 못해서 폐기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보통 수정헌법 1조(First Amendment)로 알고 있는 종교, 언론, 집회의 자유 등은 이 문서의 세번째 조항에, 또 미국의 총기옹호론자들이 성배처럼 여기는 무장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2조(Second Amendment)는 네번째에 씌여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I'm going to steal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한 2004년도 디즈니 영화 <내셔널트레져> National Treasure 앞부분에 주인공이 독립선언서를 훔치기 위해서 문서보관소의 이 중앙홀을 사전답사하는 장면을 위에 보실 수 있다. (독립선언서를 지하 보관실에서 훔치는 장면과 뒷면에 그려진 암호와 지도를 찾는 장면 등의 편집본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이 영화는 중앙홀에서 열리는 파티 장면까지 모두 실제로 여기 문서보관소에서 촬영을 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개봉 다음해에 방문객이 40%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중앙홀을 나오면 그 뒤쪽으로 출입문을 금고처럼 만들어 놓은 Public Vaults가 홀의 뒤를 한바퀴 돌면서 만들어져 있다. 이 외에도 작은 특별전시실을 잠깐 구경하고는 마지막으로 1층의 기념품 가게에 들렀다.
지난 번 국립 초상화 미술관 포스팅에서도 다른 여성 대법관들과 함께 있는 그림을 보여드렸던 "Notorious RBG"의 기념품 코너가 따로 만들어져 있었다. 미국 대법원 건물도 한 번 구경하러 가봐야 되는데, 지금은 낙태에 관한 판결문이 사전에 유출되어 이와 관련한 시위대들 때문에 접근이 불가능하도록 폐쇄된 상태이다.
위에 잠깐 소개했던 <내셔널트레져>의 편집본을 보면, 진짜 독립선언서를 훔쳐서 돌돌 말아 양복에 숨긴 니콜라스 케이지가 여기 기념품가게를 통해서 밖으로 나가려다가 직원에게 들키는 장면이 나온다. 직원은 사진 아래에 보이는 가짜 기념품을 훔친 것으로 생각한 것이고...^^ 1776년에 독립선언서가 발표된 장소인 필라델피아의 인디펜던스홀을 예전에 방문했던 여행기에서도 이 영화를 소개했었지만, 미국의 역사를 대중에게 알리는데 나름 크게 기여한 영화로 위기주부는 재미있게 봤던 것 같은데 왜 평점은 별로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