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에 미국잡지 인사이더(INSIDER)의 웹사이트에서 "The best-kept secret tourist spot in every state"라는 기사를 재미있게 보고는 구글 마이맵에도 마크를 했었다. 미국 50개주와 DC까지 포함해서 51곳의 '숨겨진 명소'를 소개했는데, 유명한 내셔널파크와 모뉴먼트가 몇 곳 포함되어 있는 것이 좀 의외이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처음 들어보지만 흥미있는 관광지들이었다. 특히 동부의 여러 주들에 그러한 곳들이 많아서, 버지니아로 이사를 온 후에 근처에 있는 몇 곳은 일부러 찾아가볼까 생각을 하는 중에, 지난 8월말 여행에서 멀리 북동부 메인(Maine) 주의 대표로 소개된 곳을 먼저 들리게 되었다.
아카디아 국립공원 관광을 마치고 보스턴으로 내려가는 도중에, 뉴잉글랜드 3박4일 여행의 첫날 저녁을 먹었던 포틀랜드에 조금 못 미친 야머스(Yarmouth)라는 곳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하지만 정차한 이 곳은 고속도로 휴게소가 아니고, 주변에 아무 것도 없는 그냥 3층짜리 사무실 건물이다. "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것은 뭐지?"
사무실 빌딩의 이름은 글로벌빌리지(Global Village)이고, 한 때 네비게이션으로 유명했던 가민(Garmin) 회사의 이름이 보인다. 남의 사무실에 무작정 들어가도 될까 고민했는데, 주중 오후 3시까지 일반에게 공개된다는 안내가 있어서 씩씩하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세계 최대의 회전하는 지구본으로 기네스북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어사글로브(Eartha Globe)를 만나게 된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여기 1999년에 만들어진 '어사(Eartha)' 지구본의 지름은 정확히 41피트(12.5 m)로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모터를 이용해서 23.5도 기울어진 상태로 자전(rotating)을 하는 동시에 그 자전축도 회전을 시켜서 공전(revolving)도 흉내를 내고 있다. 무게가 2.5톤이나 된다는 지구본을 만들어서 이렇게 자동으로 돌아가게 만들려면 제작비도 많이 들었을 것 같다.
홀을 한바퀴 돌면서 구경하다가 한반도가 보여서 얼른 찍었다. 바닥에서 북반구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불평을 할까 했는데, 친절하게 왼편에 보이는 3층 전망대까지도 일반인들이 올라갈 수가 있게 잘 만들어 놓았다.
1976년에 메인주 출신의 David DeLorme이 창업한 지도 제작사인 들로름(DeLorme)이, 1999년에 여기 야머스에 본사 건물을 신축하면서 이 거대한 지구본을 함께 만들었는데, 그 회사가 2016년에 가민(Garmin)에 인수되어서 건물 입구에 가민의 상호가 있었던 것이다. 전망대 2층에서 구경한 후에 아내가 사람이 옆에 있어야 크기를 알 수 있다며 먼저 내려가고 위기주부는 3층으로 올라갔다.
하필이면 노란 육지는 다 지나가고 파란 태평양만 보이는데, 사실 깨끗하고 반질한 지구본을 기대했다면 좀 실망할 수도 있었다. 위도(latitude)는 8도, 경도(longitude)는 10도 간격으로 나누어 약 6천개의 알루미늄 파이프로 골격을 조립한 후에 각 칸에 해당하는 792개의 지도를 프린트해서 붙였는데, 이 때 사용된 데이터의 양이 140GB나 되었다고 한다. (1990년대말에 개인PC의 하드디스크 용량이 잘해야 1GB 정도였던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데이터 양임)
그런데, 심각한 문제 발견! 남태평양 쪽에 똑같은 칠레의 해안가 패널 3장이 잘못 붙어있다... 처음 만들때부터 저랬는지, 아니면 보수를 하다가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들로름이나 가민 회사 사람들이 아무도 이걸 모르지는 않을텐데, 고치지 않는게 하도 이상해서 여행 다녀와서 그 회사에 이메일이라도 보내볼까 하다가 말았다.
왜 지구본을 이 크기로 만들었는지에 대한 설명판인데, 정확히 지구를 1백만분의 1로 축소해서 지금의 크기로 만들기로 한 것이다. (안내판에는 지름이 42피트로 되어 있음) 또한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인 보스턴에 태양(Sun)이 있다고 했을때, 여기 야머스의 위치가 정확히 태양과 지구간의 거리를 1:1,000,000 비율로 줄인 것과 일치하는 장소란다! 가운데 지도는 그 비율로 축소한 태양계를 보스턴을 중심으로 놓아보면, 명왕성(Pluto)은 유럽 스위스의 취리히(Zurich)에 위치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메인주의 숨겨진 명소라는 세계 최대의 회전하는 지구본을 아내도 재미있게 구경하고, 깨끗한 화장실도 잘 이용하고, 다시 계속해서 남쪽으로 운전을 해서 내려갔다. (참고로 또 심심해서 체크해보니, 위기주부는 처음 소개한 기사에 나온 51곳 중에서 여기까지 포함해 8곳을 방문했음)
그런데 점심을 간단히 먹고 가야할 것 같아 중간에 고속도로에서 나와 맥도널드를 갔는데, 인력부족으로 가게 실내에서 먹을 수는 없다고 했다. 할 수 없이 투고를 해서 조수석 네비게이터(=아내)의 지시에 따라 여기 케네벙크포트(Kennebunkport)라는 이상한 이름의 바닷가 마을을 찾아왔다.
중심가를 지나서 바다가 시원하게 보이는 얕은 언덕에 주차를 하고, 차 안에서 바다를 보며 늦은 점심을 먹었다. 우리 좌우로는 모두 연세 지긋하신 분들이 의자를 펴놓고 선탠을 즐기고 계셨다.
이 곳을 아내가 고른 이유는 우리 뒤편으로 이렇게 세인트앤 스톤채플(St. Ann's Stone Chapel)이라는 성공회 교회(Episcopal Church)가 트립어드바이저에 관광지로 떴기 때문이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이 예배당은 1892년에 만들어져서 역사도 오래되었는데, 북대서양의 차가운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라서 여름철에만 예배에 이용되고, 그 외의 기간에는 폐쇄해 놓는다고 한다.
여름 내내 거들떠 보지도 않던 방학숙제를 한꺼번에 하는 아이처럼, 잠깐 자리에 앉아서 이것저것 밀린 기도를 왕창 드렸다...
자세히 보면 정말로 커다란 돌들로 멋지게 아치를 만들었고, 스테인드글래스도 굉장히 아름다웠다. 단순히 자연석으로 장식을 한 것이 아니라, 천장을 제외한 모든 기둥과 벽을 말 그대로 자연석을 다듬어서 쌓아 올린 것이었다.
구경을 마치고 돌아나가며 입구 위쪽의 성가대석(?)을 보니까, 저리로 올라가는 아름다운 계단이 만들어져 있던 뉴멕시코주 산타페의 로레토 채플(Loretto Chapel)이 떠올랐다. (나선형의 '기적의 계단'을 소개한 여행기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스톤처치(Stone Church)를 우리말로 '돌교회'라고 생각하니까, 우리 가족 제2의 고향에 있던 아래의 '유리교회'가 떠올랐다~
한국분들에게 LA의 결혼식 장소로 유명한 팔로스버디스의 웨이퍼러스 채플(Wayfarers Chapel)을 10년전에 방문했던 포스팅을 보실 수 있는데, 지금 여기 메인주 바닷가 마을의 '돌교회'도 이 지역에서 결혼식 장소로 인기있다고 한다.
교회 홈페이지를 보니까 결혼식은 주로 여기 야외 예배당에서 열리는 모양이다. 우리도 끝까지 한 번 걸어가서 벤치에 잠시 앉았다가 차로 돌아갔는데, 홈페이지에도 방패 모양으로 그려져 있던 저 성조기 아래에 함께 펄럭이는 깃발은 영국 성공회의 상징이라고 한다. 전편 끝에 보여드린 사진처럼 보스턴에 들러서 지혜에게 랍스터를 전달해주고 숙박을 했고, 다음날 한 곳만 더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갔으니까, 8월말의 3박4일 뉴잉글랜드 여행기도 이제 마지막 한 편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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