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이 터지기 직전인 2019년말에 운 좋게 다녀왔던 페루 여행기를 쓰면서, 1980년대에 처음으로 세계여행전집을 봤던 기억을 떠올린 적이 있다. 이제 소개하는 여행지도 그 책의 미국편에서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다리'로 소개가 되었던 것이 분명히 떠오른다. 물론 지금은 훨씬 더 높은 다리가 전세계 특히 중국에 많이 생겼지만, 2001년까지 무려 70년 이상 세계에서 가장 높은 다리였고, 놀랍게 아직까지도 미국에서는 가장 높은 다리의 타이틀을 아슬아슬하게 유지하고 있는 콜로라도 주의 로얄고지브리지(Royal Gorge Bridge)를 찾아가는 날이다.
2차 대륙횡단의 8일째 아침을 맞았던 콜로라도 캐년시티(Cañon City) 모텔의 우리 방앞에 이삿짐차가 서있는데, 외관은 허름하지만 방도 깨끗하고 포함된 아침식사도 괜찮았던 기억이다. 체크아웃을 하고는 강가의 이 마을을 떠나서, 어제 오후에 내려왔던 언덕을 다시 서쪽으로 50번 국도를 따라 거슬러 한 참을 올라가서 절벽에 걸린 그 다리를 찾아갔다.
강풍이 불던 10월말 수요일 아침에 로얄고지 다리공원(Royal Gorge Bridge & Park)의 첫번쩨 손님이 우리 부부였다. 아래에 자세히 설명을 하겠지만 저 로얄고지브리지(Royal Gorge Bridge)는 만들어질 때부터 지금까지 개인소유라서 별도의 입장료를 내야만 구경을 할 수 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매표소 안의 직원 말고는 다른 사람들 아무도 없었지만, 바이러스 때문이 아니라 얼굴이 시러워서 둘 다 마스크를 했다. 나중에 마스크를 벗고 찍은 커플셀카도 많이 있지만, 왠지 이 모습이 그 날 아침의 추억을 더 잘 살려주는 것 같아서 이 컷으로 낙점을 했다.^^
우리 부부가 잠깐 전세 낸 다리를 걸어서 건너는데, 성조기를 봐도 알 수 있지만 바람이 정말 심하게 불었다. 다행히 좌우의 난간이 상당히 높게 만들어져서 겨우 안심하고 걸어갈 수 있었다.
저 아래 흘러가는 아칸소 강(Arkansas River)에서 여기 다리까지의 높이는 955피트(291 m)로, 무려 100년 가까이 '미국에서 가장 높은 다리'의 칭호를 유지하고 있다. 참고로 2등은 아리조나 후버댐 앞에 2010년에 만들어진 Mike O'Callaghan–Pat Tillman Memorial Bridge로 높이가 900피트(274 m)인데, 여기를 클릭해서 10년전에 방문했던 여행기를 보실 수 있다.
로얄고지브리지(Royal Gorge Bridge)는 처음부터 관광을 목적으로 1929년에 당시 35만불(현재로는 약 4백만불)을 들여서 6개월만에 건설된 철제 현수교이다. 즉, 교통을 위한 도로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도 상판은 사진처럼 나무판자로 되어있는데, 가끔 주먹이 들어갈만큼 벌어진 곳도 있었다. 2차대전 후에 이 다리는 텍사스 정유업계의 거부인 Clint Murchison에게 팔렸는데, 그는 자기가 산 다리를 1969년에 죽을 때까지 한 번도 와보지 않았다고 하며, 그의 사후에 후손이 캐년시티와 함께 본격적으로 놀이공원으로 개발을 해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거센 바람에 스마트폰이 날아갈까봐 거의 부서질 듯 움켜쥐고 힘들게 찍었던 동영상을 클릭해서 보실 수가 있다. 다리 아래로 흐르는 강을 따라서 좁은 철로가 놓여있는데, 숙박했던 캐년시티에서 출발하는 관광열차를 타면 다리 아래로 지날 수가 있다. 또 영상 후반부에 보이는 강가의 건물은 여기 절벽 위 공원에서 바닥까지 비탈을 따라 내려가는 1931년에 만들어진 경사철로(incline railway)를 타고내리는 곳인데, 2013년의 화재로 손상된 이후에 현재는 운행을 하지 않는다.
전체길이 1,260피트(384 m)의 다리를 다 건너와서 돌아보니, 이 날의 두번째 손님들이 다리를 건너오고 있다. 돌아갈 때는 다리의 동쪽에 만들어진 입장료에 포함된 곤돌라를 타면 로열고지 협곡과 다리의 전체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하는데...
흑흑~ 강풍으로 운행을 하지 않고 있었다... 빨간 곤돌라 왼쪽으로도 두 개의 줄이 보이는데, 집라인을 타고도 이 협곡을 건너갈 수도 있지만 별도의 티켓을 구입해야 한다. 이 외에도 절벽끝의 그네에 매달려서 날아보는 Royal Rush Skycoaster와 절벽에 설치된 고정로프를 이용해 가이드를 따라서 강가 근처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Via Ferrata라는 암벽등반 프로그램도 있다.
언덕 아래의 작은 무대 뒤로 3층 목조건물과 회전목마 등이 있는 어린이 놀이터인 Tommy Knocker Playland가 있어서,
이렇게 노란 기차를 타고 잠깐 놀았다~^^
다리로 돌아가는데 직원분이 이 쪽으로 걸어오길래 혹시 곤돌라 운행하냐고 물어보니까, 오전 중에는 계속 운행이 불가능할거라고 했다. 장난감 기차만 타면서 오후까지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라서 그냥 곤돌라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타보기로 하고 깔끔하게 포기했다.
다시 건너기 전에 이 쪽에 만들어져 있던 극장 겸 박물관에 들어갔다. 커다란 순록의 머리들 아래에는 다리의 100년 역사와 관련된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안내영화는 2013년의 산불로 다리 양쪽의 시설들이 모두 타버린 후에 복구하는 모습 등을 주로 보여주었다. 즉 다리를 제외한 모든 시설은 최근에 모두 새로 만든 것이라서 최신식이었던 것이다.
건초더미와 호박으로 꾸며놓은 추수감사절 장식 앞에서 사진 한 장 부탁해서 찍고는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돌아갈 때는 다리 한가운데 위치에서 위기주부가 사진을 찍을 차례~
현수교를 지탱하는 오래된 '철사다발'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게 약간 불안해 보였지만, 1980년대에 안전과 관련된 보강공사는 모두 했다고 한다. 다리를 건너 저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지어놓은 비지터센터에서 커피 한 잔 들고 발코니에 서서 다리를 감상할 차례이다.
3백미터 가까운 깊이의 협곡을 보면서, 2018년의 콜로라도 여행에서 방문했던 블랙캐년오브더거니슨(Black Canyon of the Gunnison) 국립공원의 시꺼먼 협곡이 떠올랐다. 블랙캐년의 깊이는 6백미터가 넘으니까 거기에 다리를 놓으면 단숨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다리가 되는데 절대 안 만들겠지? 2022년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다리는 중국의 Duge Bridge로 높이가 565미터이고, 이 로얄고지 다리의 전세계 순위는 24등이다. (참고로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1~6등이 모두 중국 다리이고, 30위 안에 26개가 중국에 있다고 함)
아주 오래전에 봤던 세계여행전집에 나왔던 사진도 이런 구도가 아니었을까? 요즘은 모든 여행정보와 사진이 인터넷에 있어서 쉽게 바로 찾아볼 수 있지만, 가끔은 그 아날로그적인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그 책들이 부산집에 아직 그대로 있을까?) 요즘은 매일 작은 스마트폰 화면으로만 옛날 여행사진들을 보는데, 대륙횡단으로 이사 온 버지니아 집의 셀프 마루공사도 마쳤으니, 인화해서 액자에 넣어뒀던 여행사진들이나 꺼내서 벽에 걸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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