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원 여행기

미국 대통령과 대법원장을 모두 역임한 인물이 태어난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Cincinnati)의 국립사적지

위기주부 2025. 2. 23.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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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의 집정관을 지낸 킨키나투스(Cincinnatus)는 은퇴해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두번이나 군사와 행정을 총괄하는 독재관에 임명되어 로마를 위기에서 구해낸다. 그는 임무를 마친 즉시 모든 권력을 버리고 다시 밭을 갈러 돌아갔는데, 마찬가지로 대륙군을 이끈 조지 워싱턴이 미국독립 후에 바로 고향으로 돌아간 것을 계기로, 1783년에 독립전쟁에서 싸운 대륙군 장교들의 모임인 Society of the Cincinnati가 만들어지고 워싱턴이 초대 협회장에 선출된다. 1790년에 그 회원중의 한 명이 당시 북서부 준주의 작은 마을에 협회 이름을 붙이는데, 그 도시가 바로 지금 오하이오 강가의 신시내티(Cincinnati)이다.

한국에서는 추신수 선수가 잠깐 활약했던 MLB팀 신시내티 레즈(Reds) 정도로만 도시명이 알려진 듯 한데, 빨간색 관중석의 그 경기장이 사진에도 보인다. 흘러오는 강물의 오른편은 바로 켄터키 주이고, 하류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또 인디애나 주가 나와서, 그야말로 오하이오 주의 가장 남서쪽 끝자락이다. 위기주부가 집에서 500마일이나 떨어진 이 곳을 일부러 들린 이유는 사진의 멋진 도심이나 야구장을 구경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적한 주택가에 남아있는 집 하나를 보기 위해서였다.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국립사적지(William Howard Taft National Historic Site)는 미국 제27대 대통령이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집으로 1969년에 지정되었다. 작은 주차장과 함께 별도로 만들어진 비지터센터에 먼저 들렀던 이야기부터 시작하는데, 그 전에 언제 재임했던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궁금해하는 분이 혹시라도 계실까봐 아래에 백악관 공식 초상화 먼저 잠깐 보여드린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대통령으로 1909~1913년 단임을 했던 태프트는 미국 역사상 가장 뚱뚱한 대통령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재임시 최고로 몸무게가 나갔을 때는 160 kg 이상이었다. 그래서 탑승한 군함에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없어서 목수가 급히 두 개를 하나로 합쳐서 만들어야 했다거나, 백악관의 욕조를 큰 것으로 바꿔야 했다는 일화가 있다. 또 마지막으로 콧수염을 길렀고 최초로 메이저리그 시구를 한 대통령이란 기록도 있는데, 7이닝 중간의 스트레치 전통이 그에게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넓은 비지터센터에 유일한 직원과 방문객 한 명... 짧은 안내영화를 보고는 안쪽으로 만들어진 전시실을 한바퀴 돌았다.

 

아주 휑하게 느껴졌던 전시실로 아마도 나중에 보여드릴 넓은 저택의 2층에 따로 업적을 소개하는 전시 공간을 만들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래도 제일 오른쪽에 세워진 배너는 크게 따로 보여드리는게 좋을 듯 한데,

대통령에서 물러난 후에 예일대 헌법학 교수가 되었다가, 1921년 하딩 대통령에 의해 제10대 연방 대법원장으로 지명되어 사망하는 1930년까지 재임해서,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행정부와 사법부의 수장을 모두 역임한 인물이다. 특히 혹평을 받았던 대통령으로서의 정치력에 비해서, 대법원장으로서는 직무를 아주 잘 수행했고 중요한 업적도 많이 남겼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라고 한다.

가장 눈길을 끄는 전시는 신시내티 시장을 지냈던 막내아들 Charles Taft가 낚시하는 인형으로, 머리와 손발이 움직이며 아버지에 대한 회상을 들려주는 애니매트로닉스(Animatronics) 로봇인데, 방문했을 때는 버튼을 눌러도 동작하지가 않았다. 아마도 역대 대통령들의 로봇을 모두 만들어 모아놓은 쇼를 보여주는 디즈니의 협찬을 받아 제작한게 아닐까? ㅎㅎ 참고로 오하이오 상원의원으로 대를 이어 대통령을 꿈꿨던 큰아들 Robert Taft가 블로그에 먼저 등장했었는데, 여기를 클릭해서 워싱턴DC에 있는 그의 기념물을 보실 수 있다.

본채는 그냥 들어가서 자유롭게 둘러보면 된다고 해서 의아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문을 열고 들어가니 다른 직원이 한 명 더 있었다. 궁금한게 있으면 물어보라는 말만 남기고 다시 핸드폰에 집중하시던데... 요즘 미국 연방 공무원들 감원의 칼바람이 불고, 특히 내무부 국립공원청과 농무부 산림청 등등이 심하다는데, 두 사람 모두 자리를 잘 지키고 있는지가 갑자기 궁금하다~

이 집은 주인이 바뀌면서 1940년대에는 아파트로 개조되는 등의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결국 기념재단이 인수해서 대대적인 복원작업을 거쳐서 태프트 대통령이 어린 시절에 살던 1860년대 모습으로 완전히 다시 꾸며졌다고 한다.

거실 벽에는 그의 부모 초상화가 좌우로 걸려있는데, 집안은 대를 이은 법조인 가문으로 그의 아버지 알폰소는 그랜트 행정부에서 전쟁장관과 법무장관을 역임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윌리엄은 아버지의 모교인 예일대를 차석으로 졸업한 후에 신시내티 로스쿨을 다니며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 오하이오 주 검사와 판사를 거쳐서 불과 33세의 나이에 연방 법무차관으로 임명되며 정계로 진출했다.

윗층으로 올라오는 계단과 복도의 구조가 상당히 특이했고, 2층의 대부분 방들은 전시실로 꾸며져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보통 이런 복원된 역사적 저택은 화장실이 없거나 닫혀 있는게 보통인데, 여기는 일반 방문객이 사용 가능하도록 개방되어 있던 것도 기억이 난다.

전쟁장관(Secretary of War)으로 재직하던 1905년에 식민지 필리핀을 가는 길에 루즈벨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일본을 몰래 들러서, 우리가 옛날 역사책에서 배운 일본의 조선 지배를 미국이 묵인하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체결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렇게 '루즈벨트의 황태자'로 일찌감치 낙점을 받아서, 1908년 선거에서 쉽게 승리해서 제27대 대통령이 되지만... 결국은 또 루즈벨트의 어깃장으로 재선에 실패해서 단임으로 끝나게 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역시 국립사적지로 지정된 전임자의 저택을 방문한 여행기에서 설명드렸다.

마지막으로 들어간 방은 커다란 8인용 식탁과 다른 고풍스런 가구들로 꾸며져 있는데, 평면TV가 마치 당시 물건인 것처럼 놓여있는 느낌이 좀 특이했다. 대법원장으로 생을 마감한 태프트 대통령은 알링턴 국립묘지에 묻혔고, 그의 집안은 이후에도 법조인 및 정치가를 계속 배출해서 증손자들까지 국방부 차관과 오하이오 주지사 등을 지냈다.

작년 12월에 엉겁결에 혼자 떠났던 1박2일 오하이오 주 여행의 둘쨋날 오후, 집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신시내티(Cincinnati)까지 와서도 이렇게 역사공부만 하고는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무슨 학교 건물같았던 비지터센터 주차장으로 돌아가 이제 버지니아를 향해 동쪽으로 8시간이나 운전을 해야 하지만 모든 여정이 끝난게 아니다... 돌아가는 길에 오하이오 주 안에서 들러야할 '넓은 의미의 국립 공원'들이 아직 두 곳이나 더 남아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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