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미서부를 여행할 때는 메사버디(Mesa Verde) 내셔널파크를 필두로 국립공원청이 관리하는 많은 원주민 유적지가 있었던게 기억이 난다. 그러나 미동부로 이사와서는 신대륙의 발견부터 남북전쟁 시대까지의 역사적 장소들은 많지만, 그 이전 시기의 유적지들은 동부에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작년말 오하이오 주 1박2일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로 들렀던 공원은, 놀랍게도 서구문명이 처음 만났던 인디언들 보다도 훨씬 더 오래된, 즉 북아메리카 대륙에 존재했던 고대문명의 흔적이 발견된 장소였다.

오하이오 주도인 콜럼버스(Columbus)에서 정남향으로 약 50마일 떨어진 칠리코시(Chillicothe) 부근의 호프웰 문화 국립역사공원(Hopewell Culture National Historical Park)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이 도시가 현재는 인구 2만여명의 평범한 군청소재지에 불과하지만, 1803년에 오하이오가 미국의 17번째 주가 되었을 때는 첫번째 주도(state capital)였다고 한다.

문 닫는 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 도착한 비지터센터는 예상대로 아주 적막했는데, 오른편의 안내판 두 개를 직접 읽으실 수 있도록 고해상도로 다시 보여드리면서, 여기가 어떤 유적지인지 먼저 간단히 소개를 한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한마디로 여기는 대략 기원전 200년부터 기원후 500년까지 지금의 미동부 지역에 널리 퍼져있던 문명이 최초로 발견된 장소를 보존하는 국립 공원이다. 포함되는 유적지 6곳을 보여주는 오른쪽 공원 지도에 Hopewell Mound Group이라 표시된 장소가 1891년에 고고학자들에 의해 처음 발굴되었는데, 그 고대인들이 스스로를 뭐라 불렀는지는 물론 어떤 언어를 사용했는지 조차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 땅의 당시 주인이었던 사람의 성씨인 '호프웰(Hopewell)'을 그냥 사용한게, 결국 광범위한 고대문명 전체를 일컫는 말이 되었단다.

호프웰 문명의 특징인 흙을 높이 쌓아서 만든 봉분(封墳, burial mound)이 발견된 장소들이 붉은 점으로 표시된 지도로, 멕시코 만(Gulf of Mexico)에서 오대호까지 거의 모든 미시시피 강 유역에서 유사한 문명의 흔적이 발견된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놀라운 것은 화살표로 표시된 것처럼 멀리 떨어진 타지에서 나는 특산품을 서로 교역하는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넓은 비지터센터 실내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그 고대인들의 후손이라 할 수 있는 여러 인디언 부족의 깃발로, 오하이오에서 메릴랜드 서부까지 이르는 넓은 땅을 지배했던 쇼니족(Shawnee Tribe) 지파들이 제일 앞쪽에 걸려있다. 직원과 자원봉사자가 뜬금없는 위기주부의 방문에 상당히 당황해 하던 기억이 나는데, 안내영화를 틀어주면 퇴근이 늦어질까봐 걱정하는게 느껴져서 그냥 괜찮다고 했다.^^

이 곳이 2023년에 미국의 25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는 안내판으로, 흙언덕을 마운드(mound)라는 단어 대신에 어스워크(earthwork)로 써놓았다. 이 단어는 '토목공사'에서 나무 목(木)을 뺀 토공사(土工事) 또는 줄여서 '토공'이라 번역되는 듯 하다. 참고로 1978년에 서두에 언급한 메사버디가 첫번째, 옐로스톤(Yellowstone) 내셔널파크가 두번째 미국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건물 밖으로 나오면 유적지가 눈앞에 펼쳐지는데, 여기는 안내판의 모형처럼 정사각형의 테두리 안에 22개의 크고작은 흙언덕이 조밀하게 모여 있어서 마운드시티 그룹(Mound City Group)으로 불린다.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는 있지만, 흙언덕의 위로는 올라가지 말라는 안내판이 작게 만들어져 있었다. 이 장소는 1920년에 군부대를 만들기 위해 땅을 갈아엎는 과정에서 유물이 나와 알려지게 되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화장된 유골과 함께 판상으로 얇게 쪼개지는 광물인 운모(Mica)가 발견된 것으로, 안내판의 우측 사진처럼 운모판을 조심스럽게 깍아서 형상을 만들기도 했단다. 특히 Hopewell Mound Group에서 발견된 길죽한 손바닥 모양의 운모판이 가장 유명해서 호프웰 문화를 대표하는 이미지로도 자주 사용이 된다.

대부분의 토공 내부에서 유골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피라미드처럼 장례의식에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으며, 그러한 행사를 진행하기 위한 임시건물을 나무로 지었던 흔적이라 한다. 하지만 바닥에 동그랗게 보이는 말뚝들은 2천년 전에 박은 것은 아니고, 아마도 복원하면서 만든 것으로 생각된다.

이 발굴지에서 가장 크고 높은 7번 마운드의 왼편으로 주차장이 있는 비지터센터 건물이 작게 보인다. 안내판의 단면도를 보면 그냥 마구잡이로 쌓아 올린 것이 아니라, 진흙과 모래 및 자갈을 교대로 덮으면서 체계적으로 봉분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 안에서 구리(copper)로 만든 매(falcon)와 다른 형상들의 유물이 다수 출토되었는데, 구리의 성분을 정밀 분석한 결과 채광된 장소가 여기서 600마일이나 떨어진 슈피리어 호(Lake Superior) 부근으로 밝혀졌다. 그 외에도 대서양에 사는 상어와 옐로스톤 그리즐리 곰의 이빨, 멕시코 만의 커다란 소라 조개, 그리고 인간의 두개골을 포함한 여러 뼈들을 깍아서 조각한 예술품들이 출토되었다.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유물은 그들의 얼굴과 각종 동물들이 조각된 작은 '인형 파이프(Effigy Pipe)'로 돌을 깍아서 형상을 만들고 아랫면에서 위쪽으로 구멍을 뚫어 연기가 나오게 만들어서, 화장 등의 의식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단다. 이러한 호프웰 문명은 서기 500년경에 급속히 사라지는데, 활과 화살의 발명으로 사냥감이 줄어 본격적인 농업이 시작되고 또 전쟁이 치명적이 되면서, 더 크고 폐쇄적인 공동체 문화가 시작되어 지금의 여러 인디언 부족들로 갈라지기 시작했을 것으로 짐작할 뿐이란다.

비지터센터로 돌아왔는데 아무도 없다! 설마 불 켜놓고 모두 퇴근...? 이 공원은 기념품들도 따로 특별한 것이 없는지, 그냥 미국 국립 공원들 공통의 퍼즐이나 젱가 등만 책상 위에 몇 개 전시해 놓았다. 이런 곳까지 찾아온 자신이 참 대견하다는 생각을 하며 처음 들어왔던 정문으로 나가보니...

레인저가 오후 4시 칼퇴근을 위해 국기를 게양대에서 내리고 있었다. 여기를 끝으로 웨스트버지니아와 메릴랜드를 차례로 지나 버지니아 집에 도착했을 때는 밤 11시였다. 특히 메릴랜드로 접어들어 최고 해발고도가 877m나 되는 I-68 고속도로에서는 눈이 제법 내려 고생을 하기도 했다. 전날 새벽 4시에 집에서 출발했으니 정확히 43시간의 외출이었는데, 그 중에 21시간 운전을 했고 모텔에서 12시간을 보냈으니, 나머지 10시간 동안 9곳을 구경했던 어찌보면 좀 무모했던 지난 겨울의 오하이오 주 1박2일 여행기를 모두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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