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원 여행기/조지워싱턴

알링턴의 해병대 전쟁 기념비(Marine Corps War Memorial)와 네덜란드 카리용(Netherlands Carillon)

위기주부 2023. 5. 17. 07:16
반응형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DC, 특히 내셔널몰(National Mall) 주변으로는 정말 수 많은 기념물들이 자리잡고 있지만, 1950년대 이전까지 만들어진 것은 모두 전직 대통령 등의 특정인물을 기리는 동상과 기념관이 전부였다고 한다. 그래서 1954년 11월 10일에 헌정된 미해병대 전쟁 기념비(US Marine Corps War Memorial)는 조국을 위해 전쟁터에서 희생한 일반 병사들을 추모하는 최초의 국가기념물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일요일 오전 일찍 찾아온 여기는 버지니아주 알링턴(Arligton)으로, DC의 내셔널몰에서 포토맥 강 건너 서쪽으로 보이는 현대식 빌딩들이 서있는 도시인데, 도심의 로슬린 전철역(Rosslyn Metro Station)까지 메트로를 타고 걸어올 수도 있다.

뒤를 돌아보면 넓은 잔디밭 너머로 비스듬히 게양된(?) 성조기가 보이고, 국립공원청에서 제작한 안내판들이 음성설명 장치와 함께 잘 만들어져 있는데, 이 곳은 독립적인 국립 공원인 조지워싱턴 기념도로(George Washington Memorial Parkway)의 일부로 관리되고 있다.

먼저 아내가 핸드폰으로 찍어준 사진 한 장 잠깐 보여드리면, 위기주부의 손에 DSLR이 보인다. 동부로 이사온지 1년반만에 처음으로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외출해서 이 포스팅의 사진들을 찍어봤는데... 성급한 결론만 말하자면 이제 정말로 빨리 몇백불이라도 받을 수 있을 때 중고로 팔아버려야 할 듯 하다~

미국의 역사나 전쟁사에 전혀 관심이 없으신 분들도, 해병대원 6명이 성조기를 세우는 이 동상의 모습이나 아래의 흑백사진은 분명히 보신 기억이 나실거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이오지마의 깃발(Raising the Flag on Iwo Jima)' 사진은 제2차 세계대전 중 태평양 전쟁의 막바지인 1945년 2월 19일부터 한달여간 계속된 이오 섬 전투(The Battle of Iwo Jima)의 초기인 2월 23일에 AP통신 조 로젠탈(Joe Rosenthal)이 찍은 것이다. 이오지마에서 가장 높은 스리바치(Suribachi) 산을 점령한 미군이 정상에 커다란 성조기를 세우는 이 모습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군의 활약상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진으로 그 해 퓰리처 상을 받았다.

가까이 다가가서 오른편에 아내를 세워놓고 동상의 사진을 찍었는데, 실제로 올려다 볼 때의 규모와 감동이 대단했다. 당시 신문에서 사진을 본 펠릭스 드웰든(Felix de Weldon)이 48시간만에 아주 작은 모형을 만들어서 해병대에 연락을 했고, 그 후 의회의 승인을 받아서 개인들의 성금 등으로 높이 약 24미터의 이 청동상을 완성하는데 9년이 걸렸다고 한다.

기단의 정면 중앙에 씌여진 문구 "Uncommon Valor was a Common Virtue (비범한 용기는 당연한 미덕이었다)"는 이오지마 전투가 끝난 후에, 해병대의 상륙작전을 지원했던 미해군의 체스터 니미츠(Chester Nimitz) 제독이 그들의 용맹함을 칭송한 말이며, 아래쪽 좌우에 앞서 언급한 조각가와 사진사의 이름이 작게 새겨져 있다. 그리고 상단에는 1775년 미국의 독립혁명 전쟁을 시작으로 1950년 한국전쟁까지 해병대가 참전했던 모든 전쟁이 기단을 한바퀴 돌며 적혀있었다.

이 동상의 흥미로운 점은 실제 성조기가 바람에 펄럭인다는 것인데, 1961년 케네디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따라서 어떠한 경우에도 깃발을 내리지 않고 24시간 펄럭이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고 한다. 또 원래 흑백사진에는 하와이와 알래스카가 연방으로 편입되기 전이라서 별이 48개이지만, 이오지마 전투 이후의 여러 전쟁에서도 희생된 모든 해병대원을 기리는 의미로 현재의 별이 50개인 성조기를 게양한다.

뒤쪽으로 돌아가니까 기념비가 만들어진 후에 해병대가 참가한 전투들이 두번째 줄에 추가로 새겨진게 보인다. 옛날에 신문 1면을 장식했던 흑백사진은 일본군을 상대로 승리하는 상징이 되어서, 당시 루즈벨트 대통령이 사진 속 해병 6명의 본국 송환을 명령했지만, 계속된 전투에서 벌써 그 중 3명이 전사했고, 그나마 송환된 3명 중에서도 1명만 사진 속 인물이고 나머지 2명은 그 때 언덕에 있던 다른 군인이었다고 한다.

미동부 고등학생들의 수학여행 필수코스인지, 갑자기 도착한 버스 서너대에서 내린 많은 학생들로 왁자지껄 해졌다~ 미 해병대는 최근인 2016년에야 공식적으로 당시 2명을 잘못 데려왔다는 것을 인정했는데, 다행히 사진 속 인물이었지만 송환되지 못하고 전쟁에 남았던 2명은 무사히 살아서 귀국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기념비는 깃발을 세우는 동상에 등장하는 6명만을 영웅으로 기념하는 목적이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당시 섬에 상륙했던 해병대원 약 70,000명을 포함해 110,000명 이상의 미군이 이오지마 전투에 참가해서, 5주간의 전투 동안에 전사/실종 7,315명 및 부상 19,189명으로 합계 사상자가 약 27,000명이나 되었단다! 섬을 지키던 일본군 약 22,000명 중에서 포로로 잡힌 단 200여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전멸했지만, 그래도 사상자 수(total casualties)로만 비교했을때 태평양 전쟁에서 진주만 공습 이후로 미군의 피해가 일본보다 더 컸던 유일한 전투라고 한다.

참고로 6월부터 8월 첫주까지 매주 화요일 저녁 7시에 Tuesday Sunset Parade 행사가 여기 잔디밭에서 열리는데, 안내판의 사진처럼 해병대 열병식과 군악대 연주 등이 1시간 정도 진행되므로 기회가 되면 한 번 직접 구경을 해봐야 하겠다. (행사일 오후에는 일반 주차장은 이용불가)

기념비 남쪽으로 볼거리가 하나 더 있어서 찾아가는데, 왼편 멀리 엘리베이터 타워처럼 보이는 구조물이 목적지다.

걸어가는 길에 동쪽 잔디밭 너머로 강 건너 워싱턴DC의 대표적이고 독특한 스카이라인(?)이 보인다. 이 지역 TV 방송의 뉴스화면 등에 자주 등장하는 링컨기념관/워싱턴기념탑/국회의사당이 촘촘히 붙어있는 구도의 사진들이 이 언덕에서 찍은 것이다. (카메라의 줌렌즈로 당겨서 이렇게 찍을 수 있었는데, 그러면 DSLR을 팔지 말아야 하나? ㅎㅎ)

네덜란드 카리용(Netherlands Carillon)은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의 유럽전선에 참전하고 전후복구에도 기여한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네덜란드가 미국에 기증하는 선물로 1960년에 만들어진 종(bell) 53개가 설치된 높이 39미터의 종탑이다.

저렇게 크기가 다른 종들을 각각 울려서 음계 연주가 가능하도록 한 악기를 카리용(carillon, 캐릴론)이라고 부른단다. 짧은 자동연주가 주기적으로 되기도 한다는데, 아쉽게도 우리가 방문한 동안에는 저 종들이 울리지 않아서 소리는 못 들었다.

네덜란드와 관련된 기념물이니까 당연히 종탑 주변으로 튤립들이 종류별로 가득 심어진 꽃밭이 만들어져 있는데... 5월이라 이미 다 지고 하나도 없었다. 흑흑~

종탑을 좀 클래식하게 돌로 만들면 더 멋지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가까이 걸어 가봤는데, 좌우로 만들어둔 네덜란드 왕실을 상징한다는 사자상도 이렇게 현대적인 조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을 보니, 기념물의 컨셉 자체를 처음부터 그렇게 잡았던 모양이다.

비록 튤립꽃은 없지만 왠지 커다란 카메라를 가진 사람은 이렇게 쭈그리고 앉아서 작품활동을 해야할 것 같아서...^^ 원래는 바로 붙어있는 국립묘지도 방문을 할 계획이었지만, 이미 많이 걸은 것 같아서 그냥 다음에 딸과 함께 가족이 같이 가보기로 하고, 오래간만에 포토맥 강을 건너서 사진에 멀리 보이는 내셔널몰(National Mall)로 향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