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어느 대도시를 가도 그 곳을 대표하는 공연장들이 모여있는 문화센터가 있다. LA에는 디즈니홀 등을 포함하는 뮤직센터(Music Center)가 있고, 뉴욕에는 지난 달에 방문했던 링컨센터(Lincoln Center)가 있다. 워싱턴DC에는 케네디센터(Kennedy Center)가 있는데, 앞서 두 도시와 차이점이라면 콘서트홀과 오페라하우스 및 대극장의 3개 공연장이 모두 하나의 건물 안에 들어있다는 것이다. 특히 한 나라의 수도에 국가예산으로 건설된 대규모 문화시설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세종문화회관(Sejong Center)과 비견되는 곳이라 할 수 있겠다.
빨간 카페트 위에서 웨딩촬영을 하는 커플을 만난 존 F. 케네디 공연예술 센터(John F. Kennedy Center for the Performing Arts)의 Hall of States 입구에는 미국의 50개 주기가 걸려있고, 남쪽의 다른 Hall of Nations 입구에는 전세계 나라의 국기들이 걸려있는데, 그렇게 두 개의 통로로 1개의 건물 안에 3개의 공연장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한지붕 세가족" 구조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센터 건물 중앙에 위치한 오페라하우스(Opera House)의 입구를 마주보고 세워진 거대한 케네디 두상으로, 딱 보는 순간에 얼마 전에 소개한 다른 메모리얼 동상이 떠올랐는데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아니나 다를까 역시 둘 다 Robert Berks라는 미국 조각가의 작품이었다.
우리가 케네디센터에서 처음 즐기는 공연예술은 바로 뮤지컬 <물랑루즈!>로 2021년 토니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 및 남녀 주연상 등 10개 부문을 수상한 작품으로, 한국어로 번역된 뮤지컬을 작년말부터 올해초까지 서울 블루스퀘어에서도 공연을 했다고 하니 보신 분들이 계시겠다.
공연시간이 많이 남아서 센터의 다른 곳들을 좀 둘러보기 위해 밖으로 나왔는데, 잔디밭 위에 세워진 파란 미술작품 위로 레이건 국립공항에 착륙하는 여객기가 고도를 낮추고 있다. 그 때 멀리서 양복을 입은 키 큰 사람이 위기주부에게 걸어오더니 악수를 청하는 것이 아닌가!
"아이쿠~ 케네디 대통령님 반갑습니다. 이렇게 마중 나오실 줄 알았으면, 제가 옷이라도 좀 챙겨입고 오는건데..."
그런데 악수를 하고 나서도 꼼짝도 안 하시길래 자세히 다시 보니...ㅎㅎ 이 동상은 센터의 남쪽에 많은 소극장 등이 2019년에 추가로 만들어진 'REACH' 구역에 5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진 것이다. 대문자로만 쓰길래 무슨 말을 줄여서 쓴 것인지 열심히 찾아봤지만 약자가 아니고, 예술이 사람들에게 쉽게 "와닿게(reach)" 하자는 케네디의 연설에서 그냥 한 단어만 따온 것이란다~
소극장 실내의 벽에는 앤디 워홀이 만든 아내 재클린 케네디의 커다란 얼굴 작품 'Jackie 1964 (ON RED)'도 걸려 있었다. 얼굴의 미간이 넓은게 딱 백설공주 스타일인데, 반면에 남편 JFK는 미간이 굉장히 좁았다고...^^
건물들이 지하로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는 REACH에서 힘들게 무료 실내악 공연이 있다는 곳을 찾아 왔는데, 겨우 도착했지만 빈자리도 없고 해서 잠깐 서서 듣다가 다시 밖으로 나갔다.
포토맥강 너머로 알링턴 도심의 고층건물들이 보이는데, 저 유람선이 향하고 있는 상류의 조지타운 강가에서 케네디센터와 주변을 바라본 모습은 여기를 클릭해 보실 수 있다. 그리고는 간단한 저녁을 먹기 위해서 다시 본관 윗층에 있는 카페로 향했다.
저녁을 먹고 카페 바로 옆에 있는 Art and Ideals: President John F. Kennedy 전시실을 구경했다. 센터의 설립 배경과 역사 등은 물론이고 케네디 대통령 개인의 생애에 대한 전시도 있기 때문에, 사실상 워싱턴DC에 있는 유일한 '케네디 기념관'이라 볼 수 있겠다.
전임자인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인 1958년에 National Cultural Center의 건설이 결정되어서, 설계 단계에서 케네디 대통령과 영부인이 관여하는 모습의 사진들이 보인다. 그러나 케네디가 취임 2년 10개월만인 1963년 11월 22일에 텍사스에서 암살당하자, 그를 기리는 의미로 이름을 John F. Kennedy Memorial Center for the Performing Arts로 바꿔 1964년말에 착공해서 1971년 9월에 개관을 했던 것이다.
전시장은 케네디 대통령의 문화예술 관련 행보와 업적을 중심으로 꾸며져 있기는 하지만, 멀리 보이는 반대편쪽 입구에는 유명한 1962년의 아폴로 계획 연설 등의 영상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을 달에 보낸 아폴로 계획에 관해서는 여기를 클릭해서, 플로리다 케네디 우주센터 방문기를 보시면 됨)
케네디의 어릴 적 사진과 읽었던 책들 등의 전시도 많이 있는데, 그는 잘 알려진 것처럼 할아버지가 메사추세츠 주의원에 아버지가 당대 10대 부자에 속했던 소위 '금수저' 출신으로, 프린스턴 대학에 입학했다가 총장이 아버지의 친구였던 하버드 대학으로 바로 옮기게 된다.
재미있는 전시물로 케네디의 대학교 졸업 성적표 실물이 있었는데, 확대해서 직접 보실 수 있듯이 A는 하나도 없고 전공한 정치학(Government)도 모두 B 학점을 받았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서 옥상이라고 할 수 있는 루프탑 발코니로 나와 봤다. 케네디센터 바로 북쪽에 있는 저 둥글둥글한 건물이 1974년에 닉슨 대통령을 스스로 물러나게 만든 워터게이트(Watergate) 호텔로, 케네디는 1960년 선거에서 당시 부통령이던 닉슨을 꺽고 대통령이 되었었다. (닉슨은 1968년 선거에 다시 출마해 대통령에 당선되고 4년후 재선까지 성공했으나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하야)
남쪽으로는 왼편에 워싱턴 기념탑, 가운데 링컨 기념관, 오른편에 루즈벨트 기념다리가 보이고, 그 너머의 녹지인 알링턴 국립묘지에 케네디의 유해가 잠들어 있다. 남쪽에서부터 몰려오는 비구름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조금 맞다가 공연을 보러 내려갔는데, 밤에 끝나고 지하 주차장에서 나올 때는 비가 억수같이 내렸었다.
공연장 3개의 입구가 모두 연결된 공간인 Grand Foyer는 그 길이가 190m로 직선의 실내 공간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면적들 중의 하나라고 한다.
오페라 극장으로 입장해서 계단 위 정면에서 바라본 케네디의 두상인데, 거칠게 떡칠한거야 작가의 스타일이라고 쳐도 조각의 얼굴 표정이 뭔가 좀 애매한 느낌이었다...
객석 입구 사이의 공간에 <물랑루즈!> 무대의상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 뮤지컬은 니콜 키드먼과 이완 맥그리거가 주연한 2001년작 Moulin Rouge! 영화를 원작으로 만들어져, 2018년에 보스턴에서 초연되고 2019년에 브로드웨이에 입성했단다.
극장 내부가 의자는 물론이고 벽면이 전부 빨간 벨벳으로 되어 있어서, 처음에는 '빨간 풍차'라는 뜻의 이 뮤지컬에 맞춰서 일부러 적색으로 치장을 한 것으로 오해를 할 정도였다. 바로 사진을 찾아보니까 오페라 하우스는 처음부터 내부가 원래 이렇게 촌스러운 빨간색이더라는...^^
현란한 네온사인과 전구 조명과 함께 라이센스를 받아 편곡한 귀에 익숙한 팝송들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이 많아서,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라스베가스 발리스 호텔의 쇼를 구경하는 것 같은 재미는 있었다. 하지만 1층 객석의 경사가 거의 없어 앞에 여성이 앉았음에도 무대가 편하게 보이지 않는게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고, 전체적으로 집중이 잘 되지 않아서 우리 부부 스타일의 뮤지컬은 아닌 듯 했다.
중간 쉬는 시간에 2층에 잠시 올라가 내려다 본 로비의 모습으로, 아마도 가운데 보이는 케네디와 악수를 했던게 뮤지컬 보다도 더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았다.^^ 그래도 DC 지역에 거주하는 문화시민의 예의상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국립 관현악단(National Symphonic Orchestra)의 연주회를 보러 케네디센터는 다시 방문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수도의 케네디센터를 연고로 해서 '내셔널' 오케스트라로 불리기는 하지만, 실력은 국가대표급이 아니라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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