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원 여행기/포토맥헤리티지

메릴랜드 대표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토머스 스톤(Thomas Stone)이 살았던 집을 보존한 국가유적지

위기주부 2023. 9. 5. 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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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6년 7월 4일 미국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56명은 공식적으로 13개 식민지를 대표해서 모인 사람들이었고, 그 말은 소위 대륙에서 '가장 잘 나가는' 정치인과 상인 등이었다는 뜻이다. 즉, 당시 세계 최강의 군대를 가진 영국을 상대로 이미 진행중이던 독립전쟁에서 지는 경우에는, 가지고 있는 많은 재산과 명예는 물론 반역죄로 목숨까지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서명한 것이다. 그러한 '56명의 서명자(The 56 Signers)' 모두를 기리는 워싱턴DC 내셔널몰에 있는 기념물은 이전 포스팅에서 이미 짧게 소개를 해드린 적이 있다.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에 포함되는 그 용감한 56명중에 살던 집이 현재까지 보존되어 국립 공원으로 관리되고 있는 사람은 단 4명으로, 그 중 한 곳이 DC에서 남쪽으로 약 25마일 떨어진 메릴랜드 주의 찰스 카운티(Charles County)에 있는 토머스 스톤 국가유적지(Thomas Stone National Historic Site)이다.

부슬비까지 내려서 더 적막했던 비지터센터의 모습인데, 위기주부도 이번에 '우리 동네 별볼일 없는 국립 공원들' 찾아다니기를 하면서 처음 제대로 알게 되었을 정도로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2008년에 국립공원청에서 관리하는 360곳의 방문자수 순위를 매겼을 때, 워싱턴에서 불과 40km 떨어진 대도시권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간 5,720명으로 344등을 했다고 한다.^^

현관에 세워진 안내판 3면 중의 하나로, 여기 남부 메릴랜드(Southern Maryland)가 초기 미국사에서 중요한 사건들이 지나간 곳이라고 알려준다. 존 스미스 선장이 체사피크 만을 탐험한 경로인 Captain John Smith Chesapeake National Historic Trail, 미국 최초로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를 법률화한 것을 기념하는 Religious Freedom National Scenic Byway, 미국 국가가 탄생하는 모습을 따라가는 Star-Spangled Banner National Historic Trail, 그리고 이미 블로그에서 여러 차례 소개한 Potomac Heritage National Scenic Trail 등이다.

처음 사진의 입구에도 써있었지만, 이런 한적한 공원은 매일 문을 열지는 않아서 방문전에 잘 확인을 해야 한다. 여기는 목~일요일만 문을 여는 것은 알고 맞춰 찾아왔는데, 비지터센터가 잠겨 있는 이유는 오전 10:30에 시작하는 투어가 조금 전에 출발했기 때문이었다.

주도 아나폴리스에서 유명한 법률가였던 토마스 스톤(Thomas Stone)은 병약한 아내를 위해 낙향을 결심하고, 1770년에 여기 고향에 땅을 사서 "바람이 머무는 곳(dwelling place of the winds)"이라는 뜻의 Haberdeventure라 스스로 부른 전원주택을 지었다. 하지만 그는 불과 33세의 나이에 메릴랜드 식민지를 대표하는 4명에 포함되어 1776년 제2차 대륙회의에 참석해서 안내판의 붉은 글씨와 같은 자신의 서명을 독립선언서에 남겼던 것이다. 그런데 안내판의 지도를 보니 이리로 쭉 가면 안 될 것 같아서, 뒤돌아 비지터센터 뒷마당에 난 길을 찾아 갔다.

비지터센터의 뒷문과 바로 연결되지만, 문이 모두 잠겨있었던 관계로 건물을 빙 돌아서야 잘 만들어진 이 보드워크를 찾을 수 있었다. 비가 그쳐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조금 걸어서 숲을 빠져나가니...

이름 모를 기다란 풀들이 잔뜩 자란 들판의 가운데로 넓게 만들어진 산책로가, 먼저 왼편의 가족묘지로 나를 이끌었다.

(이 때 아주 잠깐... 비석을 돌로 만들어서 'STONE'이라고 크게 적어 놓았다고 생각했었음^^) 묘소마다 작은 성조기를 꽂아놓은 것이 이채로웠고, 주인공 토마스 스톤은 가장 왼편의 묘석 아래에 묻혀 있었다.

다시 산책로는 이제 저택으로 이어지는데, 길에 깔린 푹신한 잔디가 물을 잔뜩 머금어서 운동화가 완전히 젖어버렸다~

넓은 앞마당 잔디밭은 우리집보다도 더 관리가 잘 되어 있었는데, 앞서 안내판 아래의 사진처럼 매년 독립기념일에는 여기서 조촐한 행사도 열린다고 한다.

원래는 아내와 두 딸만 데리고 살 작은 집을 지을 계획이었으나 도중에 아버지가 사망해서, 장남이었던 토머스가 6명의 동생들을 모두 데리고 살아야 했기 때문에 좌우의 별채를 추가로 지어서 통로로 연결을 한 구조가 되었단다. 그래서 1780년대에는 이 집에서 몇몇 흑인 노예들을 포함해 25~35명 정도가 함께 생활을 했다고 한다.

스톤 집안의 화려한 이력을 보여주는 안내판으로, 메릴랜드 식민지 총독이었던 고조 할아버지, 미국 헌법에 서명한 외삼촌, 1794~1797년간 메릴랜드 주지사였던 동생과 연방 의원이었던 다른 동생, 그리고 연방 의원이자 판사였던 고조카는 링컨 암살범의 조력자를 변호했던 특이한 이력이 있단다.

독립선언서 서명 후에 토머스 스톤은 고향의 이 집과 아나폴리스를 오가면서 메릴랜드 주상원 의원으로도 활동하며, 나중에 미국 헌법의 토대가 되는 Articles of Confederation 작성 등에 참여했지만, 1787년에 아내가 병사하자 슬픔에 겨워 몇 달을 보내다가 자신도 44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가이드 투어를 못해서 사진을 직접 보여드리지는 않지만, 홈페이지 등에서 확인해보면 집의 내부도 명문가의 저택치고는 검소하고 소박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둘러보기를 마치고 비지터센터로 돌아가다가 잠시 뒤돌아 본 모습이다. 토머스 사망 후 동생이 물려받아서 스톤 집안이 1936년까지 여기서 5대가 더 살다가 다른 사람에게 팔았는데, 1977년에 화재가 나서 거의 버려진 것을 국립공원청이 구입을 해서, 오랜 복원과정을 거쳐 1997년에야 지금의 모습으로 일반에 공개되었다.

비지터센터로 들어가니 직원 2명과 손님 1명이 열띤 역사 토론을 하는 듯 했다. (손님의 아내분은 따로 전시물 관람^^) 여기서 가장 눈에 띈 것은 바로 저 벽에 붙어서 번쩍거리는 400여곳 NPS 공원들의 쥬니어레인저 배지와 패치들이었다! 포스팅을 쓰며 궁금해서 바로 딸의 방에 가서 확인을 해보니, 우리집에도 저 중에서 정확히 17개가 있기는 하다. 저걸 다 어디서 구했는지 물어보나마나 국립공원청 본부에서 모아서 갖다줬다고 할게 뻔했기 때문에, 그냥 밖으로 나가서 북쪽에 있는 또 다른 쓸데없는 국립 공원을 네비게이션에 찍고 출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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