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원 여행기

사우스캐롤라이나 최초 독립전쟁 전투와 막바지 포위전이 벌어졌던 나인티식스(Ninety Six) 국립사적지

위기주부 2026. 5. 23.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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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가장 특이한 지명을 딱 하나만 꼽으라면 1950년에 주민투표를 통해 인기 라디오 퀴즈쇼 '트루스 오어 컨시퀀시스(Truth or Consequences, 진실 또는 대가)'로 마을 이름을 바꾼 곳이 떠오르는데, 2015년에 뉴멕시코 주의 화이트샌드 국립공원을 방문할 때 근처로 지나간 적이 있다. 그 외에 직접 찾아가 소개한 적도 있는 Zzyzx를 비롯해 Hell, Boring, Whynot 등등 특이한 단어 지명들은 매우 많다. (버지니아와 켄터키에 Korea 마을도 있음!) 지난 3월말의 사우스캐롤라이나 2박3일 여행 둘쨋날 처음 방문한 장소도 만만치 않은데... 마을 이름이 나인티식스(Ninety Six), 즉 그냥 숫자 '구십육(96)'이다.

그 곳에 미국 독립전쟁 당시의 마을터와 전투가 벌어졌던 요새 등을 발굴해서 복원한 나인티식스 국립사적지(Ninety Six National Historic Site)가 있다. 주차장으로 들어가며 비어있는 조수석 창을 내리고 찍은 공원 간판인데, 보통의 클래식한 명조체 대신에 깔끔한 고딕체와 흰색 테두리까지 더해져서 이름이 더욱 특이하게 느껴졌다.

나무들 사이로 비추는 아침햇살 아래에 봄꽃들이 피어 있는 건물은 별채로 지어진 화장실이었다~ 그 옆 공터에 안내판 서너개가 세워져 있었는데, 일단 제일 궁금해 하실 내용이 적혀 있는 하나만 먼저 보여드린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식민지 시대에 남부 최대의 항구였던 찰스턴에서 내륙 깊숙히 위치한 체로키 부족의 케오위(Keowee) 마을까지 무역로가 만들어졌는데, 여기가 케오위까지 96마일을 남겨둔 지점이라서 이렇게 불리기 시작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단다. 지도에 붉게 표시된 그 무역로와 다른 남북 방향의 길들이 이 마을에서 교차해서, 당시 변방의 요충지라 남부에서 독립전쟁의 총성이 가장 먼저 들린 곳이기도 하단다.

막 문을 연 비지터센터에 들어갔더니 직원들이 당황하는 모습 말고는 특별한 볼거리가 없어 바로 나왔고, 석판 위에 올려진 작은 포신은 독립전쟁 마지막 해인 1781년에 벌어졌던 스타포트 전투(Battle of Star Fort)에서 실제 사용된 것이란다. 여기서 시계방향으로 1마일의 산책로를 따라 한바퀴 돌아보게 되는데, 숲을 지나 작은 개울을 건너니 넓은 초원을 내려다보는 2층의 전망대를 만들어 놓아서 올라가봤다.

여행 첫날의 첫번째 목적지로 소개했던 길포드코트하우스에서 영국군 본대를 해안으로 물러나게 한 그린 장군의 대륙군 1,000명이 내륙을 따라 남하해서 여기 도착한 것은 5월 22일이었다. 존 크루거(John Cruger) 중령이 지휘한 토착 왕당파(Loyalist, 충성파)로만 구성된 550명은 흙으로 그림과 같은 '팔각별 요새'를 높이 4m로 만들어 버티게 되고, 대륙군은 적의 사격을 피하기 위해 지그재그로 참호를 파며 접근한 것이 독립전쟁 중 가장 길었던 약 한 달간의 공성전인 나인티식스 포위전(Siege of Ninety Six)이다.

참호의 끝자락에는 요새 안쪽을 내려다 보며 사격을 할 수 있도록 6월 13일 하룻밤 사이에 나무를 쌓아 당시에는 높이 9m로 만들었다는 라이플 타워(Rifle Tower)를 부분적으로 복원을 해놓았는데, 이에 대한 작은 설명판에서 반가운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지그재그 참호와 이 저격용 나무탑을 설계한 사람이 바로 독립혁명의 유명한 공학 장교로 '유럽에서 온 로맨티스트' 타데우시 코시치우슈코(Tadeusz Kościuszko)였다. 특히 그가 야간 참호공사를 직접 감독하는 중에 왕당파가 요새를 나와 기습을 하는 바람에, 도망치면서 엉덩이를 총검에 찔려 부상을 입기도 했단다. 타워는 완성했지만 적군이 성벽에 모래주머니를 추가로 쌓아 높이는 바람에 별다는 효과가 없었고, 병행해서 땅굴을 성벽 아래까지 파서 폭약으로 무너뜨릴 작전도 진행했다. (80여년 후 피터스버그 포위전에서 북군이 같은 방법을 씀)

그러나 안내판의 그림처럼 40m 정도 팠을 때, 찰스턴에서 출발한 영국 지원군 2,000명이 이틀 후 도착한다는 소식에 조급해진 그린 장군은 땅굴 공사를 중단하고 정면돌파를 결정한다. 남북전쟁의 남군 총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의 아버지가 되는, 조지아 오거스타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포위전에 합류한 당시 25세의 헨리 리 3세(Henry Lee III) 중령의 기병대 150명에게 마을의 후방기지를 습격하게 하고, 도끼와 갈고리를 든 돌격대 50명을 선발해서 성벽 아래의 뾰족한 나무 장애물과 위의 모래주머니를 제거해서 길을 만드는 임무를 맡긴다.

6월 18일 정오에 총공격을 시작해 리 중령은 후방을 점령했으나, 스타포트는 45분만에 돌격대 30여명이 사망해도 뚫지 못하자 그린 장군은 후퇴를 명한다. 그리고는 바로 다음날 대륙군 전체가 퇴각하며 포위전은 왕당파의 승리로 끝났지만, 영국도 변방의 기지를 더 유지하기 어려워 몇 주 후에 마을과 요새를 모두 불태우고 찰스턴으로 철수했단다. 직역하면 '버려진 희망(Forlorn Hope)'인 안내판 제목은 군대에서는 자살특공대 또는 선봉대를 의미하는데, 그 유래가 네덜란드어로 '희생 부대(Verloren Hoop)'를 부르는 말이 영어의 발음이 비슷한 다른 단어들로 바뀐 것이라 한다.

목책요새(stockade fort)를 복원해놓은 그 후방까지 걸어오면 6년전 남부 독립전쟁의 서막에 대한 설명판이 있다. 1775년 4월에 최초의 렉싱턴·콩코드 전투가 벌어지고 불과 몇 개월만에,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도 혁명을 지지하는 독립파(Patriots, 애국파) 500여명이 먼저 요새를 차지하자, 이번에는 왕당파 민병대 1,900명이 포위해서 대치를 하는 정반대의 상황이었단다. 우발적인 교전으로 양측에 소수의 사망자가 나오고 3일만에 휴전에 합의해서 큰 충돌 없이 1775년 11월의 첫번째 나인티식스 전투는 끝났지만,

평화로웠던 이 날의 풍경과는 달리... 물러났던 독립파가 다른 식민지와 연합군을 만들어 재공격해서 내륙의 왕당파를 궤멸시켰고, 1780년에 영국의 지원을 받은 왕당파가 다시 내륙을 점령하고 그 때의 보복을 하는 등, 사우스캐롤라이나는 독립파와 왕당파 간의 내전 양상으로 발전해서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졌고, 독립전쟁의 승패가 사실상 결정된 요크타운 이후는 물론이고 1783년에 영국군의 철수가 끝날 때까지 계속 무력충돌이 일어나는 불씨가 되었단다.

그 첫번째 전투 200주년에 만들어진 기념비로, 독립파 민병대의 유일한 사망자였던 제임스 버밍햄(James Birmingham)을 기리고 있다. (요새를 포위 공격하던 왕당파는 4명이나 사망) 그래서 그는 사우스캐롤라이나는 물론이고 "매사추세츠를 벗어난 남부에서 미국 독립을 위해 목숨을 잃은 최초의 전사자"란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순환 탐방로가 끝나고 다시 주차장이 보이는 곳에 로간 로그하우스(Logan Log House)가 서있다. 이 2층 통나무집은 인근 지역에 1780년대 후반에 만들어졌는데, 현대식 내외벽을 덧대고 증축을 해서 그냥 보통 주택인줄 알았다가 1967년 재개발 과정에서 통나무 골조가 발견되어 기적적으로 철거를 면할 수 있었단다. 그 후 통나무에 번호를 매기며 하나하나 분해한 후에 1971년에 이리로 가져와서 다시 옛날 방식으로 재조립을 해서, 처음에는 임시 방문자 안내소로 사용을 하다가

지금은 18세기 가구와 식기류를 채워서 독립전쟁 당시의 변방 개척지의 선술집으로 내부를 꾸며놓았다. 위기주부가 방문했을 때는 닫혀 있어서 철문 사이로 이렇게 사진만 찍었으나, 행사가 있는 날에는 내부가 개방되어 당시 복장을 한 자원봉사자들이 방문객들을 맞이한단다.

처음 공터에 세워진 다른 안내판으로 독립혁명 기간에 전투가 일어났던 곳을 모두 빨갛게 표시해놨다. 1777년 10월 사라토가 전투에서 참패한 영국은 남부 식민지라도 지키겠다는 계산으로 1778년 12월에 사바나(Savannah), 1780년 5월에 찰스턴(Charleston)을 차례로 점령했다. 몇달 후 남부를 되찾기 위해 남하한 대륙군 4,000명도 캠던 전투로 전멸을 해서 캐롤라이나 식민지는 완전히 영국의 수중에 들어갔으나... 이어지는 이야기는 지도에서 여기 위쪽에 표시된 두 장소를 방문한 여행기에서 계속된다. (이러다가 미국혁명 전쟁사 책이라도 쓰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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