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거리두기, 소셜디스턴싱(social distancing) 또는 한국에서만 쓰는 표현인 '언택트(untact)' 등의 말이 새로 생겨난 이 코로나 시대에, 미국에서는 새삼스레 주목을 받는 자동차 도로가 있다. 바로 '미국에서 가장 외로운 도로(The Loneliest Road in America)'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미국 50번 국도(U.S. Route 50)가 네바다(Nevada) 주의 북부를 동서로 횡단하는 구간이다.
여행전에 미리 공식 홈페이지에 신청해서 받은 소책자에 소개된 도로의 지도와 이런 별명이 붙게 된 <라이프 매거진> 1986년 7월호의 기사 내용이다. 오른편 영어원문을 읽어보시면 되겠지만, 화면이 작은 분들을 위해서 네바다 50번 도로에 대한 미국 자동차여행 협회인 AAA 담당자의 말만 아래와 같이 번역을 해봤다.
"그냥 텅텅 비었어요, 볼만한 게 전혀 없습니다. 우리는 이 도로 여행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자동차여행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거기는 운전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만약 황량한 곳에서 살아남는 생존기술이 없다면 말이죠."
그래서 마지막에 다시 보여드릴 이 소책자는 바로 서바이벌가이드(Survival Guide)이고, 전체 460km를 달리면서 지나는 마을들의 지정된 장소에서 도장을 받도록 되어있다. (위의 지도에 4곳은 찍혀있음) 언택트 9박10일 자동차여행의 6일째인 목요일 오전, 우리는 리노(Reno)에서 80번 고속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조금 달리다 빠져서, 펀리(Fernley)에서 첫번째 도장을 받는 곳을 찾아갔다.
가이드에 표시된 상공회의소(Chamber of Commerce) 건물을 찾아갔는데 작은 마을이라서 그런지 문이 닫혀있다... 대신에 마을 동쪽 입구에 있는 카지노에 가면 도장을 받을 수 있다고 안내되어 있어서 다시 차에 올라서 출발~
파이오니어크로싱(Pioneer Crossing) 카지노의 간판인데, 당연히 카지노니까 고층호텔의 리조트가 뒤돌아 보면 있을 것 같지만...
식당과 술집을 겸하는 소박한 단층건물이 우리를 맞이했다. 여기는 라스베가스가 아니지!^^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카지노의 현금 창구에서 일하시는 분이 우리 서바이벌가이드에 첫번째 도장을 찍어주셨다. 그리고 다시 차에 올라 43km 떨어진 두번째 마을 팔론(Fallon)으로 출발했는데, 그 구간은 별로 외롭거나 썰렁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팔론(Fallon)은 북부 네바다의 농업중심지에 공군기지도 있는 제법 큰 도시였고, 이렇게 카운티 박물관도 잘 만들어져 있었다. 사실 여기서도 상공회의소를 먼저 갔는데, 직원이 도장을 받으려면 이 박물관으로 가라고 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그래서 두번째 생존도장은 박물관 직원이 찍어줬다. 박물관을 둘러보는 것도 공짜라고 했는데, 의외로 볼거리가 참 많았다.
아메리카 원주민이 이 지역에 살던 때부터 서부개척과 근대의 역사까지 아주 잘 전시해놓았는데, 여기는 고가구와 골동품들만 해도 제법 가치가 나갈만큼 방을 잘 꾸며놓았었다. 특히 서부개척 당시에 왜 이 지역에 마을이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역사도 설명이 잘 되어 있는데,
바로 서부시대 미국의 동부와 서부를 연결하던 포니익스프레스 트레일(Pony Express Trail)을 따라 마찻길이 만들어지고, 다시 그 마찻길을 따라 1913년에 개통된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를 연결하는 최초의 자동차도로인 링컨하이웨이(Lincoln Highway)의 네바다 구간이 지금 50번 도로인 것이다. 역사 공부는 잠시 후에 계속하기로 하고, 모두 화장실에 들렀다가 차에 올랐다. 왜냐하면 다음 마을은 무려 180km나 진짜 외롭게 달려야 나오기 때문이다!
팔론에서 동쪽으로 40km 정도 달리면 멀리 모래산이 보이고, 표지판을 따라 좌회전을 해서 들어가는 모습이다. 국토관리국(Bureau of Land Management, BLM)에서 관리하는 샌드마운틴 레크리에이션에리어(Sand Mountain Recreation Area)는 높이 200m의 모래산으로 OHV(off-highway vehicles) 애호가들에게 인기있는 곳이라 한다. 우리는 모래썰매를 탈 것은 아니고... 여기 피크닉테이블에서 점심을 해먹기 위해서 찾아가는 중이다.
진입로 중간쯤에서 왼편으로 들어가면 위에 언급한 포니익스프레스 우편배달부들의 쉼터였던 샌드스프링 스테이션(Sand Springs Station)이 있다는데 들어가보지는 않았다. 이렇게 50번 도로는 서부개척시대부터 1950년대 초까지 솔트레이크시티와 샌프란시스코를 연결하는 주요 도로였지만, 1956년에 여기보다 북쪽으로 I-80 고속도로가 두 도시를 연결하게 되면서 통행량이 급격히 줄었고, 결국은 미국에서 가장 외로운 도로로 전락하고 말았단다.
'모래산 휴양지' 입구를 지나서 들어왔는데... 길도 비포장이고 피크닉테이블도 안 보이고, 무엇보다도 저 정체불명 철제 컨테이너들에 분위기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냥 돌아나가기로 했다. "그럼, 점심은 어디서 해먹지? 다음 마을은 140km나 떨어져 있으니까, 1시간반은 가야 되고, 중간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던 것 같은데..."
이런 아무것도 없는 길을 배고픔을 참고 운전하는데, 아내가 핸드폰으로 찾아보니까 20마일(약 30km) 정도 앞쪽에 식당이 있다고 한다. 그것도 구글평점이 아주 좋은... "21세기의 생존기술(survival skills)은 인터넷이구나~"
샌드마운틴 진입로를 나와 50번 도로로 좌회전을 해서 약 20분 동안 30km를 달려서 미들게이트 스테이션(Middlegate Station) 식당에 도착할 때까지의 블랙박스 영상을 4배속으로 편집한 것을 클릭해서 보실 수 있다. 그냥 미국에서 가장 외로운 도로를 달리는 것이 어떤 풍경인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서 올려드린다.
정말 네온사인과 지붕의 위성안테나만 없으면 서부시대 영화셋트라고 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던 건물의 문을 끼익 열고 아내와 지혜가 들어가고 있는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기둥에 좀 가렸는데 출입문 옆에는 아래와 같이 씌여있다...
WELCOME TO MIDDLEGATE
THE MIDDLE OF NOWHERE
ELEVATION 4600FEET
POPULATION 17 18
왼편에 걸어오는 사람은 군인도 경찰도 아닌데 허리에 권총을 차고 있고, 청바지에 빨간 순수건을 목에 두르고 위기주부를 쳐다보시는 분이 식당 주인이었다. 내부 사진이 없는 이유는 바와 테이블에 왼편 손님과 같이 권총을 차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커다란 DSLR 카메라를 들이대면 권총을 뽑을 것 같았다~^^
마당에는 기름탱크와 주유기 하나가 있고, 그 너머로 마차와 캠핑트레일러, 그리고 담소를 나누는 서부의 사나이들...
주문을 하고 아내와 지혜는 수레바퀴 아래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가운데 주황색 셔츠를 입은 분은 사진의 바이크를 타고 혼자 50번 도로를 달리다 쉬어가는 중이고, 앞서 권총을 차고 계시던분은 일행 여성들과 왼편 테이블에 앉으셨다. 그리고 제일 오른편에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가게주인...
카메라를 들고 뒤로 물러나서 식당의 전체 모습을 찍어 보았다. (오른편으로 모텔 건물이 있음) 1850년대 포니익스프레스 라이더들이 말을 타고 지날 때부터 지금 2020년까지 똑같은 자리에서 황량한 네바다 사막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식사와 술과 또 잠자리를 제공하고 있는 곳이다. 뭔가 뭉클~
이 때까지도 몰랐다... 우리 가족 3명이 여기 'Middle of Nowhere'의 쓰러져가는 식당에서 '인생버거'를 먹게 될 줄을!
왼쪽부터 웨스턴버거, BBQ샌드위치, 베이컨치즈버거... 물론 음식의 맛이라는게 배고픔과 분위기, 주변 상황 등에 영향을 받는 것이 크지만, 아내와 지혜도 냉정하게 버거의 맛만으로 따져도 최고였다고 입을 모았다.
네바다 주에서 1990년대에 처음 'The Loneliest Road in America'라고 아래에 써서 만들었던 50번 도로 표지판이 미들게이트 모텔 벽에 붙어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평생 잊을 수 없는 점심을 먹고, 이제 다시 동쪽으로 미국에서 가장 외로운 도로를 끝까지 달리면서 만난 마을과 사람들 이야기는 2편에서 이어진다.
처음 언급했던 소책자인 네바다 하이웨이 50번 서바이벌가이드(Survival Guide)의 표지와 마지막 페이지이다. (혼자 신청했는데 친절하게 두 권을 보내줬음) 마지막 페이지 엽서에 5곳 이상의 스탬프를 받아서 관광청으로 보내면, 네바다 주지사의 서명이 들어간 생존증명서와 기념품을 보내준단다. 우리는 사진처럼 6곳의 도장을 받아서 보냈는데, 기념품이 무엇인지는 역시 2편 마지막에 함께 보여드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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