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바닷가로/산과 계곡

LA에서 로켓엔진과 원자로 야외실험을 했던 산타수사나 필드랩(Santa Susana Field Laboratory)

위기주부 2021. 5. 4.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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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날씨도 우중충했고, 하이킹을 가보기로 생각한 장소도 별볼일 없을 것 같아 그냥 또 건너뛸까 했다... 하지만, 건강한 중년(?)을 위해 일주일에 한 번 이렇게라도 운동을 해줘야 하는데 벌써 두 주나 건너뛰었고, 블로그도 10여일째 개점휴업 상태라서 주섬주섬 챙겨서 느지막히 집을 나섰다. 참, 지난 두 주 동안 주말 하이킹을 못했던 이유는 마지막에 알려드린다~

1 Black Canyon Rd 주소의 벤츄라카운티 시미밸리(Simi Valley)에 속하는 세이지랜치 공원(Sage Ranch Park)에 도착했을 때도 바다에서 밀려온 짙은 아침안개는 전혀 걷히지를 않았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다 낡은 도로를 5분 정도 걸어서 올라오니, 넓은 비포장 주차장과 함께 주차비 5불을 내라는 안내가 나온다. "이럴 줄 알고 아래 도로쪽에 주차했지롱~" 그런데, 녹색으로 깔맞춤을 한 안내판들 사이에 흰색 표지판 하나가 눈에 띈다.

한바퀴 도는 루프트레일의 동남쪽 1/4은 폐쇄되었기 때문에, 공원 가운데 언덕을 지나는 우회로로 돌아와야 한다는 그림인데, 트레일 남쪽에 회색으로 칠해진 부분의 이름이 큼지막하게 씌여져 있다. Santa Susana Field Laboratory... 우리말로 번역한다면 산타수사나 '현장연구소' 정도로 부를 수 있겠지만, 그냥 줄여서 '필드랩'으로 부르기로 한다. (실제 트레일 경로를 보시려면 클릭)

세이지랜치 공원의 풍경은 같은 시미힐스(Simi Hills) 산맥의 바로 위에 있는 산타수사나패스 주립역사공원(Santa Susana Pass State Historic Park)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된다. 조금 걸으니까 아침안개가 바람에 날려 사라지는 것이 보이다가,

루프의 절반을 지나서 남쪽으로 향하니까, 파란하늘 아래로 뜬금없이 고압송전탑과 자동차도로, 또 트레일 바로 옆을 가로막은 튼튼한 철조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앞서 지도에 트레일이 회색으로 칠해진 구간 안쪽으로 들어가는 곳이 있었는데 여기인 것 같았다. 여기서 미리 준비해간 망원렌즈로 교체를 하고, 주변을 두리번 거린 후에 DSLR 카메라를 들었다. 마치 냉전시대 구 소련의 스파이처럼...^^

철조망 뒤에 세워진 것은 무슨 측정장비로 생각되지만, 침입자를 잡기 위한 동작감지 센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멀리 언덕 너머에는 아주 높은 연료탱크같은 타워가 세워져 있고,

창문이 없는 콘크리트 건물과 빨간 컨테이너들, 또 아래쪽에 건물이 철거된 장소에 역시 어떤 측정장비들이 세워져 있다. 바위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아래쪽 마을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 이 시설들은 모두 2차대전 이후 미국의 핵심적인 첨단의 과학기술 연구들이 여기서 진행되었던 흔적들이다.

위키피디아에 소개된 1990년의 항공사진으로 산타수사나 필드랩(Santa Susana Field Laboratory)의 일부 지역만 보여주고 있다. 처음 1947년에 로켓다인(Rocketdyne) 회사에서 액체연료 로켓엔진 테스트 시설을 여기 만들었는데, 달탐사를 한 새턴로켓우주왕복선의 메인엔진이 모두 여기서 개발되었다고 한다. 또 1953년부터 차례로 소형 원자로가 10기나 설치되어 핵실험을 했는데, 나중에는 우주에서 레이저로 적을 공격하는 스타워즈 계획을 위해 로켓에 실어서 우주로 쏠 수 있는 원자로를 연구했단다. 또 다른 중요한 연구로 1966년부터 액체금속 연구시설이 들어서서 1998년까지 운영되었는데, 아마도 <터미너이터2>에 나왔던 T-1000을 실제 만들려고 하지 않았을까?

계속해서 루프트레일을 따라서 길이 막혔다는 곳까지 가보니까, 비디오 감시안내와 출입금지 표지판이 철조망에 붙어있고 그 위에 파랑새 한 마리가 앉아있다. "혹시 저 새도 감시용 로봇...? 에이 설마~"

표시된 우회로를 따라서 가운데 언덕으로 올라왔더니, 중장비들이 있는 개인 사유지가 나왔다. 아마도 여기 세이지랜치(Sage Ranch)의 원래 땅주인이 농장건물 부근만 계속 개인소유로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이 되었다.

높이 올라왔더니 야외연구소가 있는 쪽이 멀리까지 보이기는 하는데, 안개가 또 짙어져 잘 보이지가 않는다. 염탐하러 온 스파이가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지...^^ 망원렌즈를 고정하고 최대한 줌으로 당겨서 새로운 다른 시설이 보이는지 확인을 해봤다~

항공사진에서 제일 아래쪽에 있던 큰 건물 하나만 멀리 보이는데, 현재 이 연구소는 로켓엔진 개발이 2006년에 종료된 것을 끝으로 모든 시설이 해체작업에 들어간 상태로, 장기적으로는 캘리포니아 주의 공원으로 개방이 될 예정이다. 하지만 그 시기는 요원한 상태인데, 60년대까지 무분별한 액체추진 로켓시험과 다수의 원자로 방사능가스 누출사고 등으로 연구소 부지의 토양이 심각하게 오염이 되었기 때문이다.

언덕 아래에는 작은 캠핑장도 있어서 전날 밤에 단체로 캠핑을 한 것 같은 사람들도 있었다. 이렇게 1시간여만에 '첩보활동'을 마치고, 공원을 나가면서 산타수사나 필드랩의 정문쪽으로 가보았다.

연구소의 정문은 굳게 닫혀있는 것 같지만, 안쪽에는 차들과 사람들이 약간 돌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모든 연구활동은 중단된지 오래되었고, 지금은 오염을 제거하고 토양을 정화하면서 자연상태로 복원을 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단다.

1996년에 이 곳을 인수한 보잉(Boeing)의 주관으로, 미국 에너지부와 NASA가 함께 정화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특히 이 곳의 오염 제거가 중요한 이유는... 연구소가 있는 이 바위산 속의 분지가 바로 일전에 소개했던 로스앤젤레스 강을 이루는 가장 큰 물줄기인 벨크릭(Bell Creek)의 발원지라서, 겨울철에 가끔 폭우가 내리면 많은 오염물질이 LA강으로 흘러들기 때문이다.

더 이상 LA지역에서 여기처럼 직접 야외실험을 하면서 로켓엔진과 원자로를 개발하는 곳은 이제 없지만, 다른 우주개발 관련 연구소들은 유명한 곳이 많이 있다. 요즘 화성에서 헬기를 날리고 있는 파사데나의 제트추진연구소(Jet Propulsion Laboratory, JPL)가 대표적이고, 방산업체 노스롭그루먼(Northrop Grumman)과 보잉의 관련 연구소도 있다. 무엇보다도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엘론머스크의 스페이스엑스(SpaceX) 본사가 LA공항 부근 호손(Hawthorne)에 있는데, 언제 혼자 근처를 지날 일이 있으면 입구에 세워져 있는 팔콘9(Falcon 9) 로켓을 구경하러 한 번 가봐야겠다.

P.S. 지난 두 주 동안 주말 하이킹을 못 간 이유는, 1년반 전에 작은 방부터 시작을 했던 집수리 리모델링의 마지막 단계로 주방공사를 갑자기 마무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4월초에 키친캐비넷 업체에 가서 최종 주문을 할 때는 설치 예정일이 5월이었는데, 갑자기 일정이 당겨져서 지난 주까지 급하게 공사가 진행되었다.

물론 캐비넷은 금요일, 카운터탑은 월요일에 사람들이 와서 조립과 설치를 했지만, 그 외의 모든 작업은 위기주부가 혼자 다 했다. 사전 작업으로 낡은 주방가구와 타일바닥을 모두 뜯어내고 천장과 벽을 보수한 후에 페인트를 칠하고 마루를 깔았고, 캐비넷을 설치한 후에는 모든 주방기기를 연결하고 싱크대 아래의 배수관 공사까지 모두 직접 했다. 특히 식기세척기와 디스포저 쪽에서 물이 새는 문제까지 연구해서 모두 해결을 했는데, 이제 밸리쪽에서 '무면허' 핸디맨이나 플러머 필요하신 분은 믿고 연락하셔도 될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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