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잘 쓰이지도 않는 옛말이지만,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굵은 글씨로 역사책에 이름을 남긴들 죽으면 다 무슨 소용이겠냐마는... 나는 그냥 이름이 새겨진 이런 의자나 벤치 하나쯤은 어딘가에 남겨놓고 싶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다. 그 새겨질 이름이 한글인지 영어인지? 또 본명인지 필명인지? 그것은 아직 결정을 못 했지만 말이다.

버뱅크 시의 와일드우드캐년(Wildwood Canyon) 공원의 입구에 내가 도착한 시간은 정각 6시였고, 이 날의 일출시각은 5:57 AM이었는데, 아직 공원게이트가 닫혀있다. "분명히 일출부터 일몰까지 문을 여는 공원이라고 했으면, 칼같이 일출에 맞춰서 문을 열어야할 것 아닌가벼?"

공원밖에 주차를 하고 입구에서부터 바로 급경사를 올라가는 트레일을 시작했다. 귀중품은 안 보이게 숨기고 차문을 잘 잠그라는 안내가 주차장에서부터 여러 번 나왔는데, 산 아래 외진 곳이다 보니 '빈차털이'가 자주 발생하는 모양이다.

능선을 따라 10분 정도 걸으니 공원 안에 있는 버뱅크 경찰서 화재훈련장(Burbank Police Live Fire Trainning Center)이 보인다. "경찰도 불 끄는 훈련을 하나?" 아래 와일드우드 계곡을 따라 만들어진 도로변에서 여기 주능선으로 올라오는 트레일을 시작하려고 했었는데, 게이트를 안 여는 바람에 제일 아래에서부터 걸어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LA지역에서 5월에 오전 내내 지속되는 이런 짙은 바다안개를 운율에 맞춰서 '메이그레이(May Gray)'라고 부른다. 6월은 쥰글룸(June Gloom), 7월은 노스카이쥴라이(No-Sky July), 그리고 매우 드물지만 바다안개가 낀 8월의 날씨를 의미하는 포거스트(Fogust)라는 단어도 있다.

햇볕에 완전히 바래고 갈라진 표지판에 씌여진 이 트레일의 이름은 바이탈링크(Vital Link)... 아마 버뱅크에서 버두고 산맥으로 올라가는 '핵심적인 연결통로'라서 이렇게 지은 것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트레일 이름으로는 참 특이하다.^^

하이킹스틱을 기대 세워놓은 곳에는 이 공원과 부근의 트레일 지도가 놓여져 있는데, 지도 왼편의 스터프캐년(Stough Canyon) 쪽은 4년전에 다녀왔는데, 여기를 클릭해서 산행기를 보실 수 있다.

정말 오래간만에 집근처 하이킹을 하면서 위기주부를 추월해서 지그재그 능선코스를 올라가는 두 분의 모습이다. 벌써 내려오는 사람도 여러 명 마주쳤던 인기있는 하이킹 코스이지만, 단 한 번의 내리막도 없는 처음 2 km 거리에 500 m 고도차를 올라가는 급경사의 연속이다. 게다가 매우 미끄럽기 때문에 오래간만에 하이킹스틱을 트렁크에서 꺼내온 것인데, 특히 하산할 때 지팡이가 없으면 발톱 빠지기 정말 딱인 길이다.

구름인지 안개인지를 뚫고 그렇게 1시간 정도를 힘들게 올라가서, 이렇게 높은 철탑과 안테나 등이 세워진 언덕이 바로 눈 앞에 보이면 일단 능선을 따라 이어진 바이탈링크 트레일의 오르막은 끝난 것이다.

봉우리마다 철탑이 세워져 있어서 약간은 미안한 느낌이 드는 버두고 산맥(Verdugo Mountains)의 주능선이 파란 하늘과 햇살 아래로 보인다. 이 때만 해도 이 산맥의 제일 높은 봉우리인 목적지에 도착을 했을 때는 발아래로 멋진 풍경이나 최소한 운해가 깔린 모습은 볼 수 있을거라 기대했었다.

바이탈링크 트레일이 끝나는 꼭대기 언덕에 놓여진 Willie Mann Memorial Chair인데, 지금까지 하이킹하면서 산에서 본 많은 의자와 벤치들 중에서 가장 예술적(?)이었다. 저 곡선의 의자에 앉아서 셀카도 찍기는 했는데, 최근 면도를 안했더니 산에 사는 노숙자처럼 나와 자체검열에서 통과를 못했다.^^ 여기서부터 버두고피크까지는 뒤로 보이는 넓은 소방도로와 같은 길을 따라 걸으면 된다.

주능선의 Verdugo Mtwy 소방도로가 Plantation Lateral 길과 갈라지는 삼거리인데, 도로명 아래에 붙어있는 흡연금지 표지판에 씌여진 문구가 살벌하다~^^ 뒤로 희미하게 보이는 나무도 유명한데, 갑자기 구름이 더 몰려와서 내려오는 길에 가까이 가보기로 했다.

다음 삼거리에 또 세워져 있는 흡연금지 경고문인데, 이 정도의 문구는 애교로 봐줄 수 있을 것 같다. 산맥 위쪽은 글렌데일 시에서 관리하는 것 같은데, 누구의 아이디어로 어느 선까지 결제를 받아서 이런 문구들을 공공장소 안내판에 넣기로 했는지 모르지만, 산에서 담배 피는 사람들을 정말 싫어하는 분이 글렌데일에 계신가 보다.

입구에 도로포장까지 되어있는 높은 나무기둥 5개가 세워져 있는 저 곳이, 이 산맥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버두고피크(Verdugo Peak)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예상대로라면 최소한 위쪽은 파란 하늘이 보여야 하는데, 정반대로 구름이 점점 더 몰려오고 있었다~

정상에는 철조망에 둘러싸인 무슨 시설이 있고, 그 둘레를 따라서 걸으면 남향으로 이렇게 벤치가 놓여져 있다. 저기 앉아서 준비해간 아침과 커피를 먹으며 20분 이상 기다렸지만 구름이 걷힐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버두고 산맥에 대한 소개와 내려다보는 LA 경치가 궁금하신 분은 여기를 클릭하시면 됨)

정상을 알리는 작은 이정표도 이렇게 철조망에 매여져 있는데, 해발고도가 3,126피트(953 m)로 최근 하이킹들 중에서는 가장 높고 힘든 산을 오른 것이었다. (여기를 클릭하면 가이아GPS로 기록한 경로와 소요시간 등을 보실 수 있음)

돌아서 내려가는 길에 앞서 표지판 뒤로 잠깐 보여드렸던 그 나무를 찾아갔다. 구글맵에는 '생명의 나무' 트리오브라이프(Tree of Life)로 표시되어 있는데, 딱 봐도 뭔가 영험해 보인다. 특히 저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서 바라보는 라크레센타 밸리와 그 너머 샌가브리엘 산맥의 풍경이 멋있다는데... 지금은 안개에 가려서 아무것도 안 보인다.

그 너머 아래쪽에는 Fire Warden’s Grove라 불리는 곳이 있는데, 1927년에 큰 산불이 있은 후에 '소방대장' 주도로 부근에 소나무와 유칼립투스를 심었다고 한다. 그런데 유칼립투스는 불에 잘 타는 식물이고, 소나무들도 계속된 산불로 옆가지들은 다 타버려서 대부분 저렇게 젓가락 모양으로만 겨우 살아있다.

얼마 전에 '비밀의 그네'를 찾아갔다가 허탕을 쳤다는 글을 기억하실지 모르겠다. 여기 버두고 산맥의 생명의 나무에도 그네가 하나 매달려 있는데, 여기는 이렇게 가지가 안 잘리고 잘 유지되고 있다.

속으로는 위기주부도 한 번 타보고 싶기는 했으나, 저 3명 일행이 차례로 다 타보는 것을 기다리기에는 좀... "그래, 조심해서 잘 타고 놀아라~ 나는 그만 내려간다."

이제 다시 급경사의 바이탈링크 트레일(Vital Link Trail)을 따라서, 차를 세워둔 버뱅크 와일드우드캐년 공원의 주차장까지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이 의자가 예쁘기는 하지만, 그냥 여러 명이 부담없이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가 이름을 남기기에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P.S. 어제는 미국의 마더스데이(Mother's Day) 였는데, 옛날처럼 꽃을 사서 집으로 돌아갈까 했으나... 전날 지혜가 대학에서 온라인으로 주문해서 엄마에게 보낸 꽃이 배달되어 와서, 올해 그냥 아빠는 건너뛰기로 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Posted by 위기주부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