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개척시대에 육로로 사람들이 대거 이주해서 결국 전쟁으로 1848년에 미국땅이 되기 전까지 캘리포니아는 스페인의 식민지에서 독립한 멕시코 영토였다. 그래서 스페인 지배의 역사가 곳곳에 남아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샌디에고부터 샌프란시스코 북쪽까지 촘촘히 건설된 21개의 미션(Mission)이다. 옛날 처음 그 중의 한 곳을 방문하고 쓴 포스팅을 클릭해서 보시면 그 21곳의 위치를 보실 수 있는데, 당시에 "왜 더 북쪽으로 올라가지 않았을까?" 이런 의문을 가졌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그것은 따뜻한 스페인 출신의 사람들이 추운 더 북쪽으로 올라가기 싫었을 수도 있고, 또 북쪽에서 내려오던 '추운 나라의 사람들'과 마주쳤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북부 캘리포니아의 해안가에 메티니(Metini)라 불리던 원주민 마을에 1812년에 만들어졌던 '로스 요새'를 복원해놓은 포트로스 주립역사공원(Fort Ross State Historic Park)의 비지터센터 건물이다. 미국에서 로스(ROSS)라고 하면 "Dress for Less"라는 슬로건의 옷가게가 바로 떠오르지만, 여기서 로스(Ross)는 러시아(Russia)를 시적으로 부르는 단어였다고 한다. 즉, 앞서 언급한 '추운 나라의 사람들'은 바로 러시아 사람들, 시베리아에서 얼어붙은 베링해를 건너고 알래스카를 지나서 해안을 따라 캘리포니아까지 내려온 러시안(Russian)이었던 것이다.
비지터센터 내부에는 러시아 제국의 국기와 함께, 어떻게 러시아가 알래스카를 식민지로 만든 후에 해안을 따라 여기까지 남하해서 스페인의 허락을 받고 요새를 지었는지에 대한 많은 설명이 있다. 로스 요새는 1841년까지 러시아군이 주둔했지만 경제적 어려움으로 철수하면서 버려지게 되고, 모두가 알다시피 1867년에 러시아가 미국에게 1 에이커당 2센트, 미화 720만 달러를 받고 알래스카를 팔아버림으로써, 포트로스를 포함한 러시아령 아메리카에 가지고 있던 모든 권리도 잃어버리게 된다.
전시물 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모형으로 요새가 있는 절벽 위에서 수심 깊은 곳에 떠있는 배까지 미끄럼틀을 만들어서 목재와 다른 물품들을 선적했다고 한다.
비지터센터를 통과해서 뒷문으로 나가면 이렇게 옛날 마을이 있던 경계를 따라서 높은 나무담장으로 둘러싸인 로스 요새를 향해 걸어갈 수 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서쪽 입구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보이는 본관 건물이라고 할 수 있는 Kuskov House와 그 뒤로 러시아의 동방정교회 예배당이 보이는데, 조금 있다가 들어가 보기로 하고 일단 입구 옆의 건물부터~
공원 브로셔에는 매거진(Magazin)으로만 표시되어 있는 이 입구 옆의 건물은 중요 물품을 보관하는 창고같았다.
당시 러시안들이 여기까지 내려온 가장 큰 이유는 해달(sea otter)을 사냥해서 모피 장사를 하기 위해서였다고 하는데, 그래서 창고에는 여러 모피들이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면서 걸려있다.
직사각형의 요새에는 두 개의 튼튼한 망루(Blockhouse)가 세워져 있는데, 그 중 북서쪽의 망루에 올라가 봤다.
망루 2층에는 이렇게 밖으로 대포가 준비되어 있어서 침입에 대비했는데, 실제로 사용된 기록은 없다고 한다.
망루에서 요새 안쪽을 바라보는 모습이 참 멋있었는데, 잔디밭 가운데에 작게 보이는 것은 우물(Well)이다.
1812년에 25명의 러시안과 80명의 알래스카 원주민을 이끌고 이 요새를 직접 건설하고, 첫번째 요새의 사령관이 된 Ivan Kuskov의 이름을 딴 본채 건물로 들어가 보자.
아랫층에는 사무실과 함께 무기고로 보이는 방이 있었는데, 기다란 옛날 총들이 일렬로 세워진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윗층은 숙소로 사용되어서 침대들만 많이 있었다.
포트로스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은 특이한 십자가 모양으로 알 수 있는 러시아 정교회 예배당(Russian Orthodox Chapel)이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때 무너지고, 또 1970년에는 화재로 소실된 것을 재건한 것이기는 하지만, 건물의 역사가 가지는 중요성으로 현재 국가유적지(National Historic Landmark)로도 지정이 되었다.
러시아를 안 가봐서 정교회 예배당은 다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부의 중앙에는 십자가 대신에 예수의 초상화와 다른 작은 그림들만 걸려있는 것이 상당히 특이했다.
다시 밖으로 나와보니 건너편 남쪽의 막사(Quarters) 앞으로 기다란 총을 든 어린이들이 행진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공원 브로셔에도 똑같은 모습의 사진이 있는 것으로 봐서 주립공원에서 진행하는 역사체험 프로그램인 것으로 생각된다.
우물을 지나서 보이는 남쪽 출입문으로 나가면 절벽 아래로 샌디코브(Sandy Cove)도 내려다 볼 수 있고, 동쪽으로 좀 걸어가면 러시아인 묘지(Russian Cemetery)도 나온다고 하지만, 이 날 마지막으로 들러야 할 곳이 4시에 문을 닫는 관계로 서둘러 주차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요새 밖으로는 러시안들과 알래스카 원주민과 그 혼혈인 '크레올(Creole)'들, 또 이 지역 원주민들이 함께 살았던 러시아식 마을인 '슬로보다(Sloboda)'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샌프란시스코 지역에 거주하는 러시아계 후손들이 여기서 매년 행사를 가지며, 2000년대 초에 캘리포니아 재정난으로 공원이 폐쇄될 위기에 처했을 때는 러시아 대사가 주지사에게 청원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 이 요새는 캘리포니아 최초로 풍차(windmill)가 만들어진 곳이라는 기록도 가지고 있는데, 그래서 200주년이 되던 2012년에 러시아에서 직접 전통 양식으로 풍차를 만든 후에, 여기로 가지고 와서 주차장 아래쪽에 이렇게 다시 조립을 해서 세워놓은 것도 볼 수 있다.
포트로스를 지나서 1번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의 풍경도 멋진데, 도로 오른편의 바다는 러시안걸치(Russian Gulch) 주립해안으로 지정되어 있다. 사진에 보이는 러시안리버(Russia River) 건너편도 소노마코스트(Sonoma Coast) 주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우리는 여기서 잠시 저 강건너 1번도로와는 작별하고 강을 따라서 내륙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어려운 선택 문제의 마지막 6번째로 낙점을 받았던 곳은 (무슨 문제인지 궁금하면 여기를 클릭), 북부 캘리포니아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이벤트인 포도주를 만드는 와이너리 방문이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코벨와이너리(Korbel Winery)는 간판 아래쪽에 덩쿨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샴페인셀라(Champagne Cellars)'라고 씌여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스파클링와인(sparkling wine)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곳이다. 특히 캘리포니아는 물론이고 미국 전체에서도 대표적인 최고급의 샴페인을 만들기 때문에, 대통령의 취임식이나 백악관의 국빈만찬에서도 항상 이 곳에서 만들어진 샴페인이 건배주로 사용된다고 한다.
아침부터 200 km 이상을 달리며 앞서 5곳을 구경하고 6번째 목적지에 문 닫는 시간 전에 맞춰서 오는데 까지는 성공이었는데, 유료로 시음을 하려면 사전에 반드시 예약을 했어야 한다고, 야외 테이블이 비었는데도 테이스팅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가이드가 앞에 걸어가시는 손님한테 미리 예약 안했다고 또 혼났다. 흑흑~
그래서 그냥 맛은 못 보고 (맛을 봐도 구분도 잘 못하지만^^), 직원이 추천해 준 여기서 가장 대표적인 내츄럴(Natural' ← 이유는 모르는데 단어 뒤에 apostrophe가 있음)을 두 병 샀다.
당시 와이너리 투어는 중단 상태라서 그대로 차에 올라서 소노마밸리의 중심도시인 산타로사(Santa Rosa)에 예약한 호텔에 일찍 체크인을 했다. 그리고 모처럼 여유있게 시내도 좀 걸어다니며 구경을 한 후에 러시안리버 맥줏집(Russian River Brewing Company)에서 치맥으로 저녁을 먹고 7박8일 자동차여행의 6일째를 마무리 했다.
보너스로 보여드리는 사진은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지혜가 다시 보스턴으로 돌아가기 전날, 코스트코에서 파는 제일 맛있는 소고기를 숯불에 구워 코벨 샴페인과 함께 마신 모습이다. (다 먹고 나니까 생각이 나서, 뒷 배경이 좀 지저분함^^) 마침 지혜가 내년 여름에 뉴욕에서 인턴쉽을 구한 것도 축하할 일이고 해서, 비록 돔페리뇽(Dom Perignon)은 아니지만 고급 샴페인이 딱 어울리는 즐거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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