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원 여행기

파이어 섬(Fire Island) 국립해안 비지터센터와 TWA800 사고 추모비 및 윌리엄 플로이드(William Floyd) 저택

위기주부 2023. 9. 9.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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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뉴욕의 딸과 지인을 만난 후에 2박3일 롱아일랜드(Long Island) 여행을 했다지만, 사실상 관광지를 찾아다니며 구경한 날은 둘쨋날 가운데 하루가 전부였다. 미국 대서양에서 가장 큰 섬이기도 한 롱아일랜드에 대해서는 마지막 셋쨋날 여행기에서 자세히 알려드리기로 하고, 섬의 거의 한가운데인 '핫바지' Hauppauge에서 숙박한 후에 495번 고속도로를 동쪽으로 달리다 빠져나와 찾아간 남쪽 바닷가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위기주부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국립 공원에 해당하는 파이어아일랜드 국립해안(Fire Island National Seashore)을 찾아왔는데, 일단 섬의 이름이 '파이어(fire)'라는게 재미있다. 하지만, 실제 불과는 아무 관련이 없고, 뉴욕 해안을 처음 탐험했던 네덜란드 사람들이 기다란 섬 4~5개가 붙어 있어서 vier(four) 또는 vijf(five)로 적어놓은 것이 발음이나 스펠링이 와전되어서 영어로 fire라는 이름이 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라 한다.

작은 비포장 주차장을 끼고 모래사장 위에 나무로 잘 지어놓은 이 건물은 공원의 4개의 비지터센터들 중에서 가장 동쪽에 있는 Wilderness Visitor Center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롱아일랜드의 남쪽 바다에도 좁고 기다란 평행사도(barrier island)가 발달해 있는데, 동서로 봤을 때 거의 가운데 위치한 파이어 섬(Fire Island)에서 지도에 표시된 길이 약 26마일(42 km) 영역이 국립 해안으로 1964년에 지정되었다. 포장도로는 본섬에서 양쪽 끝의 입구까지만 만들어져 있어서, 가운데에 위치한 두 곳의 비지터센터는 배를 타야만 가볼 수 있는 것도 특이하다.

기념품 코너의 벽에 걸린 액자에 파이어 섬 등대(Fire Island Lighthouse)가 보이는데, 저 등대가 있는 제일 서쪽 비지터센터를 갈까 하다가, 등대는 남쪽의 다른 국립 해안에서 많이 봤기 때문에 특별한 역사적 볼거리들이 근처에 있는 동쪽 끝으로 온 것이다.

뉴욕주의 다른 NPS 공원 브로셔들까지 한 번에 챙겨 밖으로 나와서 남쪽 대서양 바닷가를 바라보니... 백사장에는 왼쪽부터 쓰레기통, 비치 의자, 작은 텐트(바람막이?) 하나씩만 차례로 보이는 휑한 풍경이었다~^^

360도 전망의 윗층 전시실에도 휑하니 우리 부부뿐... 월요일 오전이라서 그런지 국립 해안과 비지터센터는 적막했다.

국립공원청 로고가 그려진 오래된 서핑보드가 눈에 띄었고, 앞쪽 테이블에는 조개껍질 등 다양한 해양 생물의 잔해를 만져볼 수 있도록 해놓았는데, 가운데 까맣고 커다란 것은 혹시 진짜 삼엽충인가?!

"사모님, 그냥 차로 돌아갈까요? 아니면, 국립 해안의 모래라도 한 번 밟아 보시겠습니까?"

앞서 사진의 쓰레기통까지만 딱 걸어왔으나 정면에는 그냥 모래와 수평선 뿐이었고, 동쪽으로 몇 명의 사람들과 건물이 보였다. 여행 계획을 세울 때, 저 건물 옆쪽으로 기념물같은 것이 있던게 생각이 나서 걸어갈까 하다가 차를 몰고 가보기로 했다.

이리로 돌아가서 차를 몰고 로터리를 지나 찾아갔지만... 거기부터는 뉴욕 서폭카운티(Suffolk County)가 관리하는 Smith Point County Park로 그 건물 주변은 전부 관계자 전용 주차장이었다. 그래서 차에 아내가 타고 있고 혼자서 잠시 다녀오려고 해도 공원 직원이 절대로 안된다며, 멀리 도로 건너편의 유료 주차장에 주차하라고 딱딱하게 구는게 싫어 그냥 차를 돌려서 나왔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가져온 사진을 아래에 보여 드린다.

1996년 7월 17일에 뉴욕 케네디 국제공항을 출발해 프랑스 파리로 향하던 트랜스 월드 항공(Trans World Airlines) 800편인 보잉 747 여객기가 이륙 12분만에 공중폭발해서 탑승자 230명 전원이 사망한 항공기 사고의 추모비인 TWA Flight 800 International Memorial and Gardens이 그 추락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여기 바닷가에 만들어져 있는데, 14개의 국기는 사망자들의 국적을 상징한다. 이 사고는 9·11 테러를 제외하고 지금까지 미국에서 3번째로 큰 항공사고이며, 결국 TWA는 2001년 9·11 이후에 파산해서 아메리칸 항공에 합병된다.

사고 원인을 밝히기 위해서, 바다에 떨어진 잔해를 모아 동체를 재조립한 이 사진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실거다. 최종 결론은 몸통 앞쪽의 연료탱크가 전기 합선에 의해 폭발한 것으로 나왔지만, 근처에서 훈련하던 미해군이 쏜 순항 미사일에 맞았다거나 또는 UFO가 격추한 것이라는 등의 음모론이 아직도 돌아다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재조립된 잔해는 무려 25년 동안이나 보관되면서 교육용 등으로 사용되었지만, 사고 25주년이던 지난 2021년에 유족들과의 합의하에 완전히 폐기되었다고 한다.

다시 다리를 건너 본섬으로 돌아와 주택가를 지나서 찾아 온 숲속의 이 넓은 주차장에는 우리가 이 날의 첫번째 손님이었다.

윌리엄 플로이드 사유지(William Floyd Estate)라 적힌 안내판 옆으로 나무까지 깔아서 잘 만들어 놓은 트레일로 씩씩하게 걸어 들어갔는데... 사방에서 달려드는 새까만 모기들 때문에 얼마 못 가서 뒤돌아 나와야 했다. 비치된 트레일맵을 보니까 이 길은 숲을 지나서 저택의 앞마당으로 바로 이어지는 샛길이고, 차가 들어가는 넓은 길은 주차장 위쪽에 따로 있어서 그리고 향했다.

그 길 좌우로는 많은 부속 건물들이 있는데, 이렇게 새로 페인트 칠을 하고 있었다. (메인 저택도 수리중이라서 내부 투어가 중단된 상태)

조금 걸어가니까 본채인 Old Mastic House의 뒷뜰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왔다. 윌리엄 플로이드(William Floyd)의 할아버지가 1718년에 여기 땅을 사서 플랜테이션을 만들고 작은 집을 처음 지은 후에, 9세대를 거치며 계속 증축되어서 25개의 방이 있는 지금의 모습으로 커졌단다. 그리고 미국 독립 200주년이던 1976년에 그의 후손들이 국립공원청에 내부의 골동품 가구들을 포함한 집은 물론 넓은 토지까지 모두 기증해서, 인접한 파이어 섬 국립해안 공원의 일부로 편입된 것이다.

그는 1734년에 이 집에서 태어나 부유한 대농장주 및 민병대 지휘관으로 유명해졌고, 1776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2차 대륙회의에 뉴욕 식민지를 대표하는 4명에 포함되어서, 미국 독립선언서에 서명을 한 '건국의 아버지들' 56인의 한 명이다. 하지만 그 직후에 영국군이 뉴욕시와 롱아일랜드를 점령했기 때문에, 그의 가족은 독립전쟁이 끝나는 1783년까지 바다 건너 코네티컷으로 피신해야 했다. 미국 독립 후에 그는 여기 돌아와서 농장을 재건하고 뉴욕 주를 대표하는 첫번째 연방의원를 맡았고, 뉴욕 부지사 선거에도 출마했지만 낙선했단다.

초상화의 배경에도 등장을 했던 3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이 Old Mastic House는, 미국 독립선언서 서명자 56명이 당시 살던 집들 중에서, 현재 국립공원청이 소유 및 관리하는 단 4개의 집에 포함되는데, 메릴랜드에 있는 다른 하나는 바로 지난 주 포스팅에서 소개를 해드렸다. 그리고 나머지 2개는 작년에 방문했던 콜로니얼 국립역사공원에 포함되는 요크타운의 Nelson House와 보스턴 남쪽에 두 명의 미국 대통령을 배출한 아담스 가문의 집을 보존한 Adams National Historical Park이다.

그렇게 뉴욕 롱아일랜드 관광의 시작은 연방정부가 관리하는 바닷가와 숲속을 상쾌하게 산책하는 것으로 시작을 했고, 이제 미동부에서 가장 많은 별장들이 모여있다는 휴양지를 지나서 섬의 동쪽 제일 끝에 있는 유명한 등대까지 드라이브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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