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원 여행기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의 자택이었던 뉴욕 롱아일랜드 코브넥의 새거모어힐(Sagamore Hill) 국립사적지

위기주부 2023. 9. 17.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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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상징하는 조형물로 4명의 미국 대통령 얼굴을 바위산에 조각한 아래의 러시모어 산(Mount Rushmore)은 누구나 사진으로 한 번쯤은 보신 적이 있겠지만, 그 4명이 각각 누구인지를 정확히 바로 답변하실 수 있을까? 좌우 끝의 워싱턴과 링컨은 아마 틀리시는 분이 없을테고, 왼쪽 두번째 제퍼슨까지는 미국 역사에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떠올리실 수 있다. 그러면 제일 안쪽으로 들어가 조각된 콧수염은 누구? 위기주부도 5년전에 직접 방문해서야 그가 제26대 대통령으로 1901.09~1909.01 재임한 시어도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었는데, 아래의 사진 링크를 클릭하시면 당시 여행기를 직접 보실 수가 있다.

그는 20세기 최초의 대통령으로 미국의 국력 신장에 크게 기여했으며, 흔히 정말 흥미로운 인생을 살았던 가장 매력적인 인물상의 역대 대통령으로 기억되는 경우가 많다. 러시모어를 빼고 그를 단독으로 기리는 국립공원청이 관리하는 장소만 5곳이나 되는데, 그의 인생 전체가 깃든 뉴욕 롱아일랜드의 자택을 시작으로 아마도 앞으로 차례로 소개가 될 예정이다.

롱아일랜드 여행 이틀째의 마지막 일정으로 나소카운티(Nassau County) 북쪽의 오이스터베이(Oyster Bay) 옆으로 튀어나온 작은 반도인 코브넥(Cove Neck)에 있는 새거모어힐 국립사적지(Sagamore Hill National Historic Site)를 찾아왔다. 루스벨트가 자신의 집을 직접 부른 이름인 '사가모어(Sagamore)'는 미동부 인디언 말로 부족의 추장을 의미한단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월요일은 비지터센터가 안 열기 때문에 바로 언덕 위의 저택으로 향했다. 루즈벨트는 부유한 가문의 맨하탄 집에서 1858년에 태어났는데, 그 출생지도 현재 국립사적지로 지정되어 있다. 그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1880년에 무려 스무 번이나 구애를 했었다는 앨리스(Alice Hathaway Lee)와 결혼하고, 독립해서 살 집을 지을 곳으로 여기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땅을 구입하게 된다.

새거모어힐의 1910년대의 모습으로 지금은 New Barn 옆으로 큰 주차장이 만들어져 있고, 아래쪽 과수원(Orchard)에 추가로 장남이 지었던 2층집이 비지터센터 겸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숲과 Eel Creek의 습지를 지나서 바닷가까지 걸어갈 수 있는 트레일도 잘 만들어져 있지만, 우리는 너무 늦은 시간이라서 언덕 위의 Roosevelt Home 주위만 한바퀴 둘러봤다.

지도에도 표시되어 있던 풍차(Windmill)가 아주 천천히 돌아가는데... 1884년초에 아내는 첫딸을 낳고 이틀만에 병사하고, 심지어 같은 날 어머니도 사망한다. 이에 충격을 받은 루즈벨트는 노스다코타(North Dakota)에 있는 가문 소유의 엘크혼랜치(Elkhorn Ranch)에서 2년 가까이 카우보이 생활을 하는데, 그 농장과 주변 지역들이 지금은 그의 이름을 딴 내셔널파크(National Park)가 되었다.

방이 23개나 되는 빅토리아 양식의 저택을 투톤으로 칠해놓은 것이 특이했다. 어릴적 친구인 에디스(Edith Kermit Carow)와 1886년에 재혼하면서 이 집에 정착한 후에, 루즈벨트는 뉴욕 주의원, 뉴욕시 경찰국장, 그리고 해군부 차관 등의 경력을 쌓게 된다. 그러다가 지금의 쿠바에서 미국-스페인 전쟁이 발발하자 "Rough Riders"라는 의용병을 직접 조직해 이끌고 전투에 참가해 전국적으로 유명해지고, 돌아와서는 불과 40세의 나이인 1898년에 뉴욕 주지사에 당선이 된다.

안내판에 있던 말년에 백악관에서 찍은 가족사진으로 가운데 서있는 여성이 첫번째 부인이 낳은 큰딸 앨리스(Alice)이고, 오른쪽에 앉아 있는 두번째 부인과 나머지 4남1녀를 더 낳아서 자식이 모두 6명이다. 그 아이들 중 장남 쥬니어(Theodore Jr.), 2남 커밋(Kermit), 그리고 둘쨋딸 에델(Ethel)의 3명이 이 집에서 태어났다.

아빠의 어깨에 기대고 있던 막내 아들 쿠엔틴(Quentin)이 얼음 저장고인 Ice House 지붕 꼭대기에 올라간 사진인데, 그는 4살때 아빠가 대통령이 되어서 들어간 백악관에서도 장난꾸러기로 유명했단다. 그는 하버드 재학중에 만난 여성과 약혼하고 졸업을 앞두고 있었지만, 형들을 따라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위해 대학을 중퇴하고 유럽으로 건너갔다가 1918년에 프랑스에서 전사했단다.

남향을 바라보는 이 쪽이 집의 정문이었다... 루즈벨트는 공화당 매킨리 대통령의 1900년 재선 도전에 마지못해서 러닝메이트가 되는데, 전임 부통령이 1년전 병사해서 공석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부통령은 실권이 거의 없는 명예직에 가까워 정치 생명이 끝나는 자리였다고 함) 그런데, 매킨리가 2기 취임 후 약 6개월만인 1901년 9월에 뉴욕 버팔로 시에서 암살 당하는 바람에, 불과 42세의 나이에 미국 제26대 대통령이 되는데, 그가 급하게 취임 선서를 했던 버팔로 시에 위치한 친구 Ansley Wilcox의 집도 현재 국립사적지이다.

아내가 현관 유리문을 들여다 봤는데, 불은 켜져 있는데 인기척은 없었다. 혹시 루즈벨트의 유령이...? 이 공원은 건물 외부는 해질 때까지 매일 자유롭게 개방이 되지만, 비지터센터 겸 박물관은 목~일요일만 오픈하고 그 때만 내부 가이드투어가 진행된다고 한다. 루즈벨트는 1919년에 이 집 2층 침실에서 60세로 사망했지만, 아내가 1948년 죽을 때까지 계속 거주했고, 그 후에 바로 기념재단에서 관리하다가 정부에 기증해서 국립 공원이 되었기 때문에, 내부의 모든 가구와 장식이 루즈벨트가 지내던 모습 그대로라고 한다.

루즈벨트 재임시에는 '여름 백악관(Summer White House)'이었던 집의 넓은 발코니 흔들의자에 앉아서 V자를 하는 위기주부 모습이다... 그는 대중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1904년 선거에서 쉽게 재선에 성공해서, 국내로는 반독점법으로 당시 대기업을 규제하고, 국외로는 팽창주의를 주창하며 파나마 운하의 건설을 주도하는 등 미국을 대내외적으로 강국의 반열에 들게했다. 따라서 3선 연임도 가능해 보였지만 그는 일찌감치 자신의 후계자로 점찍어둔 윌리엄 태프트(William Taft)를 공화당 후보로 제27대 대통령에 당선시키고는, 장기간 아프리카로 사냥여행을 떠나면서 야인으로 물러나는 듯 했으나...

(위기주부가 앉았던 발코니가 바로 뒤로 보임) 루즈벨트가 자신의 정책을 계승하지 않는 태프트를 비판하자, 그는 루즈벨트 재임시의 추문을 폭로하면서, 둘은 친구에서 원수지간이 되고, 결국 루즈벨트가 다시 자신이 대통령을 또 하겠다고 1912년 선거에 나서게 된다. 문제는 공화당 후보로 현직인 태프트가 지명되자, 루즈벨트는 지지자들을 끌고 나와 진보당(Progressive Party)을 만들어 독자 출마를 했는데, 결과는 어부지리로 민주당의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이 제28대 대통령에 당선되고 만다. 그 후로도 남미 아마존으로 탐사대를 끌고 떠났다가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1920년 대통령 선거에 다시 출마 계획을 세우지만... 앞서 언급한 막내아들 퀜틴이 전사한 후에 급속히 쇠약해져서 이듬해인 1919년 1월에 자다가 갑자기 죽었다.

대통령을 상징하는 황금색 독수리가 새겨진 북쪽으로 돌출된 커다란 방은 재선 후에 추가된 것으로, 업무를 위한 접견실과 회의실의 용도로 사용되었단다. 특히 1905년에 이 곳에 일본과 러시아 대표단을 따로 각각 불러서 직접 사전 조율을 한 후에, 뉴햄프셔 포츠머스(Portsmouth)에서 두 나라가 만나 조약을 체결해 러-일 전쟁을 종식시킨 공로로 1906년에 미국 대통령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물론 그 직전에 당시 전쟁부 장관이던 태프트를 일본에 보내서, 미국이 필리핀을 가지고 일본이 조선을 가진다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게 한 것도 루즈벨트 대통령이다.

마지막으로 영부인이 좋아했다는 나무 아치와 그 옆의 Pet Cemetery 등을 잠깐 둘러보고는 주차장으로 돌아갔는데, 역사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아내도 사가모어힐(Sagamore Hill)의 분위기는 참 마음에 든다고 했다. 참, 전혀 언급하지 않은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중요한 업적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우리 동네에 있는 그의 '살아있는 기념물(Living Memorial)'을 방문한 이야기에서 자세히 들려드릴 예정이다. 이렇게 롱아일랜드 여행 둘쨋날을 마치고 예약한 숙소를 찾아갔는데, 아내가 여행 전에만 알았으면 이 날 우리가 숙박할 수도 있었던 다른 호텔의 모습을 보너스로 보여드린다.

롱아일랜드 웨스트힐(West Hills)에 1919년 완공된 오헤카 캐슬(Oheka Castle)은 원래 127개의 방이 있는 저택으로, 뉴욕 주에서는 제일 크고 미국 전체에서도 3번째로 큰 개인 집이었다고 한다. 독일 출신의 투자은행가 Otto Hermann Kahn이 이니셜 OHK로 만든 이름을 자신의 집에 붙인 것으로, 지금은 32개의 객실을 가진 럭셔리 호텔과 레스토랑 및 이벤트 장소로 이용되고 있는데,

특히 뉴욕 부자들의 결혼식 장소로 인기가 있어서, 여기서 웨딩을 한 유명인들도 상당히 많다고 한다. 위기주부가 또 예식장을 이용할 일은 없을 듯 하니... 비수기 평일에는 200불 정도밖에 안 하는 이 성의 호텔방에서 한 번 자보는 것은 괜찮을 듯 하다.^^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롱아일랜드를 방문해서, 오헤카 캐슬에서 숙박하고 10여분 거리의 루즈벨트 집 내부투어도 하는 그런 날이 꼭 오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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