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외의 여행지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일본인 강제수용소였던 '만자나 국립사적지(Manzanar National Historic Site)'

위기주부 2012. 8. 2.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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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3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정말 알차게 많은 곳들을 돌아본 이스턴시에라(Eastern Sierra) 395번국도 로드트립의 마지막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요즘 부쩍 세계대전과 동서냉전 등의 역사에 관심이 많은 지혜를 위해 특별히 선택한 곳이었다.

1942년과 똑같이 다시 만들어진 입구의 표지판에는 'Manzanar War Relocation Center'라고 되어있다. 만자나(Manzanar)는 1900년대 초에 만들어진 오웬스밸리(Owens Valley) 이 지역 마을의 이름으로 스페인어로 '사과 과수원(Apple Orchard)'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구글맵으로 지도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주차장에서 비지터센터로 걸어가는 길 뒤쪽으로 아직도 눈이 남아있는 해발 4천미터가 넘는 시에라네바다(Sierra Nevada) 산맥이 펼쳐져 있다. 이 황량한 사막이 바로 제2차 세계대전중에 캘리포니아 지역에 살던 일본인들을 강제로 수용한 곳으로, 지금은 만자나 국립사적지(Manzanar National Historic Site)로 관리되고 있다.

친근한 돌화살촉 모양의 국립공원마크와 기념품을 파는 코너는 물론, 쥬니어레인저 프로그램까지 있는 것은 국립공원관리국에서 운영하는 다른 곳들과 똑같았지만, 이어지는 전시관의 내용은 아주 달랐다.

제2차 세계대전중인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하와이 진주만 폭격으로 미국과 일본은 전쟁상태가 되고, 미국은 미본토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을 잠재적 위협으로 판단하고 이들을 수용소로 이동시키기로 한다. 문제는 이들 일본인 대부분이 이민자들의 후손으로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미국인(American Citizen)'들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버려진 마을이었던 이 곳에 군대식 막사건물을 세우고, 처음에는 백인들의 위협을 피해서 일본인들에게 자발적으로 이주(relocation)를 권했다고 하지만, 사실상 강제적으로 모두 잘 살던 곳을 떠나 여기 수용소로 올 수 밖에 없었다고 하는데, 가장자리에는 서치라이트가 있는 감시탑을 세우고 내부를 향하는 기관총도 배치되었단다.

이러한 수용소는 미본토에 모두 10개가 만들어져서 모두 11만여명의 일본인과 일본계 미국인들을 가두어 놓았는데, 이것은 "누구든지 적법절차에 의하지 않고서는 생명·자유·재산을 박탈당하지 않는다"는 미국의 수정헌법 5조를 미국정부가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었다. (참고로 당시 하와이에는 전체 미국인의 1/3인 15만명이 일본계여서, 수용소를 따로 만들 수가 없었음)

실내의 모든 전시를 꼼꼼히 둘러보던 지혜가 방명록에 적힌 글들을 읽고 있다. 오른쪽 페이지에 세로로 씌여있는 글은... "I am Japanese, not a Jap!"

NEW ARRIVALS - 샌프란시스코와 LA등에 있던 자신의 집과 가게 등을 모두 버려두고, 군당국에 의해서 허용된 한 사람에 두 개씩의 여행가방만 들고는 이 사막 한가운데의 판자로 지은 막사로 와서는 밀짚을 채워넣은 매트리스를 깔고는 잠들어야 했단다...

당연히 어린이와 아기들도 가족과 함께 이 수용소에서 생활을 했는데, 당시의 어린이들이 그린 그림과 장난감 등을 전시해 놓았다.

당시 수용소의 사진이 비춰지는 하얀 판에다가 수용되었던 1만여명의 이름이 빼곡히 씌여있었다. 이 판의 뒤쪽으로 가면 비지터센터 건물 밖으로 나가는 문이 있었다.

뜨거운 Owens Valley 사막의 햇살 아래에 성조기를 조기로 게양해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1945년에 수용소가 폐쇄되자마자 모든 건물과 감시탑까지 철거가 되었다고 하는데, 지금 아내와 지혜가 걸어가고 있는 막사건물은 국립사적지 지정 이후에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재현한 건물인 것을 알면서도 뭔가 측은한 느낌이 들어서인지, 약간은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다시 뜨거운 태양 아래로 나와보니 건물이 있던 위치에 이렇게 표지판들만이 차례로 서있었다. 여기는 여름철에는 섭씨 40도 가까이 올라가지만, 겨울에는 또 0도까지도 떨어지면서 눈이 오는 경우도 있다. 또 우리 여행의 첫날에 경험했지만 모래바람이 일년내내 심하게 부는 곳이란다.

비지터센터로 돌아와 주차장으로 나가는 길에 입구에 있는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저 꼬마는 자기는 미국인인데 왜 여기에 갖혀있어야 하는지 알았을까?

자동차를 몰고 수용소 안의 비포장도로를 달려 찾아온 이 곳은 수용소의 서쪽끝에 있는 묘지이다.

이 위령탑은 1943년에 만들어졌다고 하고, 멀리서 그 옆에 화려한 색깔로 보이던 것은 꽃이 아니라 모두 종이학이었다. 주로 일본인 후손들이 여기 위령탑에 종이학과 다른 물건들을 두고 가는데, 국립공원관리국에서 정기적으로 수거해서 실내에 전시하거나 따로 보관한다고 한다.

위령탑 왼쪽으로 보이는 돌무더기가 묘지인데, 여기 수용소에서 죽은 146명 중에서 15명이 여기에 묻혔고, 그 중 다섯명은 아직도 여기에 잠들어 있다고 한다. 1945년에 이 수용소는 폐쇄되었지만 미국정부는 민간인들을 불법적으로 감금한 것에 대해서 계속 침묵하다가 1988년에 레이건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정부차원의 사과를 하고, 생존자들에게 1인당 2만불의 보상을 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역사적 중요성을 인정받아서 1992년에 국립공원관리국에서 관리하는 국립역사유적지(National Historic Site)로 지정이 되게 된다. 묘지 입구의 말뚝에 매달려있는 종이학들을 보는 지혜와 나... 하늘 정말 파랗다~^^

이 글을 마치면서 얼마전에 봤던 <내 이름은 칸> My Name Is Khan 영화가 떠올랐다. 진주만이 폭격을 당하고 약 60년후, 미국은 다시 이슬람 급진주의자들로부터 본토가 공격을 당한다...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9/11이다. 미국에 비록 이런 수용소가 다시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출신국가와 인종, 피부색에 따라서 차별과 편견이 아직 남아있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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