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원 여행기/캐피탈이스트

로간서클 역사지구(Logan Circle Historic District)의 미국 국립사적지들과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등

위기주부 2023. 12. 16. 00:00
반응형

프랑스 출신의 피에르 랑팡(Pierre L'Enfant)이 베르사유 왕궁을 참고해 1791년에 설계했다는 워싱턴DC 중심부의 도로망은, 일반적인 바둑판 형태에다 중요 장소들을 비스듬히 연결하는 대로들을 추가한 것이 특징으로, 동서 방향의 도로는 알파벳, 남북은 숫자, 그리고 사선의 대로는 여러 주(state)의 이름을 붙였고, 백악관과 의사당이 들어선 위치를 제외한 나머지 그 대로들이 교차하는 곳에는 사각형의 넓은 광장이나 또는 '서클(Circle)'이라 부르는 둥근 로터리를 만들었다. 메릴랜드의 그린벨트 공원 하이킹을 마치고 DC를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중에 소소한 볼거리들이 부근에 많이 있는 로간서클(Logan Circle) 지역을 들러보기로 했다.

차를 주차한 곳은 로드아일랜드 애비뉴(Rhode Island Ave)에 접해있는 조그만 카터 G. 우드슨(Carter G. Woodson) 기념공원 부근이었다. 그는 노예였던 부부에게서 1875년에 태어나 농장과 탄광 일을 한다고 20세가 넘어 고등학교에 들어갔지만, 그후 꾸준히 문학과 역사를 공부해서 1912년에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런데 기념물 계단에 놓인 맥주캔에다가 동상 뒤쪽으로는 노숙자 한 분이 살림을 차리고 계셔서, 사진 한 장만 찍고는 바로 아래에 있다는 국립 공원으로 지정된 그의 집을 찾아갔지만...

카터우드슨 국립사적지(Carter G. Woodson Home National Historic Site)는 내부수리중으로 내년 봄에 재개관을 한단다. 그는 평생을 아프리카와 미국의 흑인들 역사에 대해 연구했는데, 그가 만든 학회에서 1926년에 최초로 2월 둘쨋주를 'Negro History Week'로 지정한 것이, 지금은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2월을 '흑인 역사의 달(Black History Month)'로 기리는 계기가 되었고, 이를 따라해서 수 많은 '○○ History(또는 Heritage) Month'들이 생겨났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남서쪽으로 비스듬한 로드아일랜드 대로를 따라 로간서클까지 걸어왔는데, 로터리 도로를 따라서 둥글게 늘어선 빅토리아풍의 예쁜 건물들은 1870년대부터 신흥부자들의 집으로 지어져서, 지금도 DC에서 주택가격이 가장 비싼 동네들 중의 하나라고 한다. 로터리 중앙에 만들어진 공원을 구경하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너가면,

1901년에 매킨리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헌정된,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장군이자 정치가였던 존 A. 로건(John Alexander Logan)의 청동 기마상이 공원 중앙에서 위용을 자랑한다.

일리노이 주 출신의 하원의원이었던 그는 블로그에 방문기가 있는 첫번째 불런 전투(First Battle of Bull Run)에 참가한 후에 주로 서부전선에서 남군과 싸웠다. 그리고 1868년에 남북전쟁에서 사망한 병사들을 추모하는 날의 제정에 앞장서는데, 그게 지금 미국의 여름 휴가시즌 시작을 알리는 연휴를 만든 5월말의 메모리얼데이(Memorial Day)가 되었다. 그 후 상원의원을 거쳐서 1884년에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출마하지만 낙선하고 2년 후에 사망했다.

날씨는 흐렸지만 가을 단풍이 들기 시작할 때였고, 동상 주변의 잔디만 더 잘 관리되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마상의 기단도 청동으로 만든 것은 처음인 듯 했는데, 이 쪽 면에 새겨진 그림은 상원의원 선서를 하는 모습이란다. 이제 공원을 통과해서 두번째 목적지를 찾아 걸어간다.

로건서클의 다른 '비스듬 대로'인 버몬트 애비뉴(Vermont Ave)를 따라 조금 내려오니까, 바로 길 건너편으로 메리맥러드베순 의사당 국립사적지(Mary McLeod Bethune Council House National Historic Site)라는 긴 이름이 적힌 작은 국립공원청 간판이 보였다.

로간서클 역사지구 안내판에 메리 매클러드 베튠(Mary McLeod Bethune, 1875~1955)에 대한 소개와 사진들이 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역시 노예의 딸로 태어났던 그녀는 학교를 만들어 흑인 소녀들에게 글을 가르치다가, 1935년에 FDR 대통령의 자문위원이 되어 DC에 와서는 전미흑인여성회(National Council of Negro Women)를 조직해서 권리신장과 평등을 위해 여생을 바쳤다.

그녀가 1943년부터 살면서 NCNW 본부로도 사용되었던 이 건물이 1982년에 국립 공원으로 지정되었는데, 점심 시간이라서 1시 이후에 문을 연다는 종이가 문에 붙어 있었다... 그래서, 버몬트 애비뉴를 따라서 남쪽으로 더 내려갔다가 다시 돌아오기로 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조금 작은 다른 서클을 만나는 모퉁이에 서있는 Luther Place Memorial Church는 1873년에 건축되었는데, 그 앞의 청동상은 당연히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Martin Luther)로 독일황제 빌헬름 1세가 선물한 것이란다~

사선의 매사추세츠 대로(Massachusetts Ave)가 지하로 지나가는 토마스서클(Thomas Circle)은 현대적으로 개발이 되었는데, 오른편 버몬트 대로로 계속해서 1km만 더 직진하면 백악관이 나온다. 교차로 중앙의 동상은 뒷모습만 멀리 보여서 그냥 이름만 찾아보고 넘어가려고 했지만, 위키피디아의 내용을 읽어보니까 그의 사진과 함께 간단히 소개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부 버지니아가 고향인 조지 H. 토머스(George Henry Thomas)는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한 군인으로, 남북전쟁에서 가족과 동료로부터 배신자 소리를 들으며 연방에 남아서 북군 지휘관이 되었다. 서부전선에서 그랜트와 셔먼에 버금가는 전공을 올리며 소장(major general)으로 전쟁을 마친 후에도, 회고록을 쓰며 업적을 자랑하는 다른 장군들과는 달리, 남부에서 학대받는 흑인들을 보호하며 군정에 참여했다. 잭슨 대통령이 중장으로 진급시켜 워싱턴으로 부르려 했지만, 그는 정치판에 얽히기 싫다며 거부하고, 태평양군 지휘관을 자청해 샌프란시스코로 온 이듬해 53세의 젊은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단다.

토머스서클에 있는 이 건물은 1930년에 만들어진 National City Christian Church라는데, 사실 걸려있는 큰 깃발에 더 눈이 갔다. 무지개 깃발이야 자주 봤지만 저런 식으로 색깔이 훨씬 더 많이 추가된 것은 처음이라 찾아보니 LGBTQIA2S+ 깃발이란다... 오후 1시가 넘어서 앞서 국립사적지를 다시 찾아갔지만, 계속 문은 잠겨있고 서성거려도 안에 인기척이 없어서 그냥 바로 3번째 목적지를 찾아갔다.

여기서 정서 방향에 있는 2011년 미동부 여행에서 숙박했던 듀퐁서클(Dupont Circle)은 상업지구로 개발된 반면에, 로간서클은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주택가로 남아있는게 큰 차이점이다. 이 예쁜 집들의 제일 북쪽에 목적지가 있는데, 다시 로터리 공원 안을 지나서 걸어간다.

로간 장군은 새들의 친구...ㅎㅎ 주변에 나무가 많고 교통량은 적은 곳이라서 그런지, 지금까지 워싱턴DC에서 본 동상들 중에서 새들이 가장 많이 앉아있는 모습이었는데, 대충 세어봐도 20마리 정도 되는 듯 했다. 기단의 서쪽면은 남북전쟁에서 가운데 로간이 장교들과 작전회의를 하는 모습이라는데, 모두 긴 콧수염에 같은 사람처럼 보인다.

옥상에서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는 모퉁이의 집이 바로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Old Korean Legation Museum)으로, 아래쪽 게양대에는 한미수교 70주년 기념 배너와 표지판도 볼 수 있었다.

우리 민족이 미국에서 처음 소유한 건물로 1891년에 고종의 쌈짓돈 2만5천불로 매입한 자주외교의 상징이었지만,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뺏긴 후 일제가 1910년에 매각한 것을 오랜 노력 끝에 2012년에 350만불에 다시 한국 정부가 사들였다. 그 후 6년 동안 옛모습으로 복원해서 2018년 5월 22일 박물관으로 재개관했는데, 1890년대에 DC에 있던 30여 곳의 외국 공사관들 중에서 유일하게 원형이 보존된 곳이란다.

평소에 문은 잠겨있고 사전예약을 통해서만 내부를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데, 몇 번 예약을 시도했었지만 우리 가족이 가능한 시간과는 잘 맞지가 않았다. 아무래도 바쁜 따님은 이제 시간 맞추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 2명으로 다시 예약을 해보도록 해야겠다~

복원 전에 주차장이 있던 자리에는 한국식 돌담과 작은 정원, 그리고 창덕궁 불로문(不老門)의 복제품이 세워졌는데, 다른 한국분들이 오랫동안 구경을 하셔서 저기도 다음에 함께 둘러보는걸로 하고, 주차해둔 곳으로 돌아가면서 마지막 보너스 하나를 더 찾아가봤다.

'수박집' 워터멜론하우스(Watermelon House)는 작은 연립주택의 벽면을 원래 핑크색으로 칠하려다, 색깔이 진하게 나오는 바람에 얼떨결에 수박을 그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2017년에 누군가 이 집 앞에서 점프를 하며 찍은 사진이 인스타그램에서 유명해져서 #watermelonhouse #watermelonjump 등의 태그를 단 나름 핫스팟이 되었단다. 혼자 점프를 하며 셀카를 찍을 수도 없고 해서 여기도 다음 기회에...^^ 참, 위에 소개한 2곳의 국립사적지도 내부는 못 봤지만 방문한 것으로 친다면, 이제 워싱턴DC 안에서 아직 둘러보지 못한 국립공원청의 독립적인 Official Unit은 딱 두 개만 남았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