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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사우스(Deep South) 분위기가 곳곳에서 느껴지는 컬럼비아(Columbia)의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청사

위기주부 2026. 5. 1.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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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딥 사우스(Deep South)'는 남부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앨라배마, 조지아, 그리고 사우스캐롤라이나의 5개 주와 그 주변 지역을 말하는데, 플랜테이션 농업을 유지하기 위해 노예제에 의존했기에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합의 핵심세력이었고, 지금도 공화당의 표밭이라 레드 스테이트(Red States)로 불린다. 위기주부는 2019년 가을에 아내와 환승을 하며 애틀란타 다운타운을 슬쩍 둘러본 것 말고는 아직 이 빨간 주들에 가본 적이 전혀 없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사우스캐롤라이나에 혼자 발을 들인 것이다.

운전 경로가 주도인 컬럼비아(Columbia)를 지나길래 '가볍게'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청사(South Carolina State House)만 구경하기로 했는데, 재작년의 1박2일 혼행에서 숙박했던 오하이오 주도인 컬럼버스(Columbus)와 헷갈리면 안된다. 그런데 건물 정면에 천막들이 쳐있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어서 다가가 보니...

이 날 미국 전역에서 제3차 노킹스(No Kings) 시위가 열려서, 여기 딥사우스 도시에서도 오전에 1천명 정도가 집회와 행진을 했고, 주청사 광장에 여러 진보단체들이 부스를 만들어 오후까지 남아있는 것이었다. 스티커나 기념품이라도 혹시 얻어볼까 싶어서 둘러보고 싶었지만, 안내판에 주청사 공짜 투어가 토요일 2시반이라는 것을 보고 시간이 딱 맞길래 바로 옆문을 찾아 보안검색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갔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작은 극장에서 짧은 소개를 먼저 보고는 1층 중앙에서 왼쪽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는 참가자들이다. 오른편의 주지사 사무실 입구에 성조기와 함께 역대 주지사의 사진을 모두 담은 액자들을 세워 놓았는데, 2024년 공화당 경선에서 마지막까지 트럼프와 경쟁하며 "우리는 왕을 옹립하지 않는다(We don't anoint kings)"라는 말을 처음 했던 전 UN대사 니키 헤일리(Nikki Haley)도 사우스캐롤라이나 최초의 여성이자 유색인종 주지사로 2011년부터 6년간 재임했었다.

거의 10분이나 한자리에서 설명만 듣고는 마침내 2층으로 올라가는 모습인데, 극장과 붙어있던 화장실의 냄새가 여기 계단까지 많이 났었다. 그런 기억을 연관시키는게 좀 치사하기는 하지만 사우스캐롤라이나의 1인당 소득은 워싱턴DC와 50개주 전체에서 46위를 기록하고 있다. (처음 언급한 딥사우스 5개 주가 모두 꼴찌에서부터 10등 안에 들어감)

계단을 올라가면 바로 나오는 124석의 하원 회의실(House Chamber)로 정면에 성조기와 함께 전편에서 설명했던 남색 바탕에 초승달과 야자수가 그려진 주기가 걸려있는 것이 보인다. 참고로 남북전쟁이 끝나고 흑인들에게 투표권과 참정권이 부여된 직후인 1868년 선거에서는 주하원 당선자들의 과반이 흑인이었는데, 이는 미국 역사상 최초이자 지금까지도 유일한 경우라고 한다. 그러나 재건시대가 끝나고 '짐크로(Jim Crow)' 법들이 만들어져 흑인들 차별이 시작되자 1902년을 마지막으로 백인들만 뽑히다가 1970년에야 다시 흑인이 여기 앉을 수 있게 된다.

이 건물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2층 중앙이 넓은 거실처럼 꾸며져서, 편안한 소파에 앉아서 가이드의 설명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또 설명이 길어지길래 뒤돌아 빛이 들어오는 창문 밖을 내다보니,

그 사이에 노킹스 참가자들 대부분이 떠나고, 소수만 남아서 주청사 정면의 저베이 스트리트(Gervais St)를 지나는 차들에게 팻말을 들어보이고 있었다. 도로명은 독립전쟁 시기의 정치인으로 1786년에 주도를 찰스턴에서 주 중앙부로 이전하는 법률을 제출한 John Lewis Gervais의 이름을 딴 것으로 그가 '컬럼비아'란 도시명을 제안했는데, 그래서 컬럼비아는 미국 최초로 허허벌판에 만들어진 계획도시라는 타이틀도 가지고 있다.

맞은편의 상원 회의실(Senate Chamber)은 무슨 이유로 볼 수 없다고 했던 것 같고, 로비 정면에 위치한 도서관이 샹들리에와 나선형 계단 등이 옛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지만 역시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그냥 중앙에 세워진 동상을 자세히 구경하는 것으로 투어는 사실상 끝이었다.

존 칼훈(John C. Calhoun)은 사우스캐롤라이나 정치사를 대표하는 인물로 존 퀸시 애덤스와 앤드루 잭슨 밑에서 연달아 부통령을 한 독특한 이력을 가졌다. 19세기초 미의회 3인방 중 하나로 꼽히는 거물은 맞지만, 노예제와 주의 권리(States' Rights)를 옹호해 남북전쟁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했단 비판이 크다. 두 대통령과의 사이도 나빠서 첫번째는 '갈아타기'를 했고 두번째는 상원 출마를 위해 스스로 관둬서 자진사임한 최초 부통령이기도 하다. (그 덕택에 잭슨 재임기의 부통령을 거쳐, 제8대 대통령이 된 'OK맨'에 대해서는 여기를 클릭)

동상 뒷편으로 위층에 보이던 스테인드글래스의 밝은 사진을 하나 가져와 보여드리는데, 유리조각 37,000개 이상을 붙여서 만든 모자이크로 위쪽에 야자수가 그려진 원형의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문양(Seal of South Carolina)이 보인다. 참고로 이 동네 야자수는 한국어 '배추야자'로 번역되는 팔메토 야자(Sabal Palmetto)로 미국 동남부가 고향인 품종이라 캘리포니아 야자수보다는 작고 아담하단다.

내려가는 반대편 계단의 모습으로 왼쪽에 영국군과 싸우는 독립전쟁의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 보인다. 영국이 전쟁 후반부에 왕당파가 많은 남부를 주요 거점으로 삼았기 때문에, 의외로 전체 기간을 통틀어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가장 많은 전투가 벌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여행 다음날 오전에만 그러한 장소들을 기념하는 국립 공원들을 3곳이나 찾아가게 된다~

정문 계단참에 설치된 워싱턴 청동상은 예전에 아내와 함께 방문했던 버지니아 주청사 중앙 로비에 있던 대리석 조각을 복제해서 1858년에 설치했는데 지팡이가 부러져 있다! 그 이유가 기단의 동판에 적혀있는데... 남북전쟁 막판인 1865년 2월에 셔먼 장군이 이끄는 북군이 남부를 폐허로 만드는 초토화 작전의 일환으로 컬럼비아를 점령했을 때 북군 병사들에 의해 고의적으로 훼손되었다고 까는 내용이다.

현재의 주청사는 1855년에 착공되었지만 남북전쟁 발발과 함께 공사가 중단되어 외벽만 세워지고 지붕도 없는 상태였는데, 셔먼의 군대는 당시 사용되던 목조 주청사는 불태우고 여기도 포격을 가했다고 한다. 그래서 옛 주청사가 있던 자리에도 그 사실을 기록한 표석을 세우고, 대포에 맞아 부서진 화강암 벽면 6곳도 보수하지 않고 별을 붙였단다. 거의 "잊지말자 북군의 만행!" 수준이랄까... 그나저나 오래간만에 야자수, 그것도 윗부분이 살짝 꺽인 야자수를 보니 인앤아웃 버거가 먹고 싶어졌다~^^

딥사우스 분위기의 절정은 바로 창밖으로 뒷모습을 먼저 보여드렸던 이 기념탑으로, 남북전쟁 패배의 결과인 군정이 끝나고 연방군이 완전히 물러간 직후인 1879년애 세워진 남군 기념비(Monument to the Confederate Dead)이다. 탑의 중앙 야자수 아래에는 남부연합을 뜻하는 CSA(Confederate States of America)가 새겨져 있고, 그 아래 비문은 "패배가 그들의 명예를 훼손할 수 없었다"는 내용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남부연합기가 2015년까지 함께 기념물 바로 뒤에 게양되어 있었지만, 그 해 찰스턴 흑인교회 총기난사 사건 이후에야 마지못해 철거되었단 점이다.

평화적인 노킹스 시위가 모두 끝나고 경찰들만 남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고, 주청사는 남북전쟁이 끝난 후에도 주의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1907년에야 최종적으로 완공이 되었다. 이 건물의 가장 큰 특징 또는 자랑으로 언급되는 것은 정면에 보이는 높이 13미터의 코린트식 기둥이 단일한 하나의 화강암을 깍아서 만든 것이란다.

연초에 포스팅을 올렸던 뉴욕 주청사는 돔이 없는 것이 특징이라고 했던걸 기억하실텐데, 사우스캐롤라이나는 전형적인 구형 돔으로 표면은 구리로 덮었단다. 정말 쓸데없는 사실을 또 확인해보니... 돔이 있는 미국 주청사 38곳 중에서 금박을 입힌게 11곳, 여기처럼 동판이 10곳, 그리고 나머지는 석재나 타일 또는 다른 금속으로 마감이 되어 있단다~

주청사의 반대편으로도 한바퀴 돌면서 다른 기념물들도 구경하고 싶었지만, 국립공원 비지터센터 문 닫기 30분전에 도착하려면 이제 출발해야 할 것 같아서 주차한 곳으로 가려는데 멋진 기마상이 보여서 '선촬영 후공부' 모드로 사진만 하나 찍고 돌아섰다~^^

웨이드 햄튼 3세(Wade Hampton III)는 수천 명의 노예를 소유했던 남부의 대부호로 자기 재산으로 군단을 만들어 남북전쟁에 참전해 남군의 기병대 사령관으로 중장 계급까지 올랐다. 1876년에 백인 우월주의 통치를 회복하는 구원자 주지사(Redeemer Governor)로 불리며 당선되었는데, 이 때 자신의 사병조직인 '레드 셔츠(Red Shirts)'들을 동원해 무력으로 흑인들의 투표를 방해했단다. 그의 사후 1906년에 이 기마상이 여기 세워졌는데, 현재 주청사 부지 내의 기념물은 주의 유물법에 따라 주의원들 2/3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만 철거할 수 있단다...

마지막으로 주청사 동쪽에 2001년에 만들어진 흑인역사 기념물(African-American History Monument)을 보여드리는데, DC의 '흑인 박물관' 방문기에서 설명한 적이 있는 노예선 모형과 추모탑,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처음 노예가 끌려온 1619년부터 400년의 흑인들 역사를 보여주는 청동판 12개가 반원형으로 둘러싼 모습이다. 그러나 이것도 주청사 꼭대기에서 1961년부터 펄럭이던 남부연합기에 대한 비판이 거세진 2000년에 깃발을 앞서 보여드린 남군 기념비 옆으로 옮겨서 계속 유지하는 것에 대한 타협안(?) 중의 하나로 세워진 것일 뿐이다.

남국의 정취가 느껴지게 잘 가꾸어 놓았던 정원에서 흑인 커플이 웨딩 촬영을 하고 있었고, 나무들 뒤쪽으로 멀리 보이는 주청사 돔의 꼭대기에는 성조기와 사우스캐롤라이나 주기가 상하로 펄럭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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