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로 이사온 후 주변에 어떤 국립 공원들이 있는지 훑어보다 처음 들어보는 사람의 집이 국립사적지로 지정된 것을 발견했었다. 그리고 지난 봄에 남쪽으로 혼자 2박3일 여행을 계획하며 여기를 들리기로 했을 때는 20세기 문학가란 사실만 확인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여정을 마치고 애쉬빌(Asheville)까지 이어지는 26번 고속도로로 주경계를 지난 후, 노스캐롤라이나 플랫락(Flat Rock)이란 마을의 그 곳을 찾아가며 든 생각은... "대통령이나 민권운동가 등을 제외하고, 어느 정도의 업적(?)이 있어야 '나랏돈'으로 집을 공원으로 바꿔줄까?"

넓은 주차장에서 오른편 위에 멀리 살짝 보이는 하얀 집이 그 곳 같은데, 안내판을 보니까 우측으로 바로 가면 0.3마일이지만, 하이킹 트레일을 따라 0.5마일이나 걸리는 길로 우회(detour)하라고 되어 있었다. 이 날 테네시를 지나 켄터키 주에 2박째 숙소를 예약해놓았기 때문에 마음이 급해서 저 산길을 씩씩거리며 뛰었던 기억이 난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새로 만든 듯한 나무 다리로 개울을 건너니까 길이 갈라졌는데, 양방향이 목적지까지 거리는 같았다. 급히 핸드폰에 지도를 띄워보니 우측이 원래 찾아가는 길과 만나는 것 같아서 하류쪽으로 다시 내려갔다.

주차장 끝에 지어진 안내소 겸 화장실 건물에서 바로 이 쪽으로 건너오는 철제 다리가 보이는데, 2024년의 허리케인 헬렌(Helene)으로 홍수가 나서 작은 댐이 무너졌고, 사진에 살짝 보이는 것처럼 그 위에 만들어졌던 다리가 휘어져서 통행불가라 우회를 시킨 것이었다.

그리고는 야트막한 경사를 좀 더 올라간 후에 정문 진입로를 만났다. 옛날 집주인은 이리로 차를 몰고 들어갔겠지만, 당연히 현재는 일반 차량은 통행이 허용되지 않는 도로이다.

얼핏 소박해 보이지만 무려 30만평의 대지를 거느린 이 집은 1838년에 크리스토퍼 멤밍거(Christopher Memminger)란 인물의 별장으로 지어졌는데, 그는 남북전쟁 발발 후에 남부연합의 초대 재무장관을 지낸 백인 우월주의자였다. (나중에 이게 역사적 아이러니가 됨) 그리고 1900년에 섬유 산업가가 여기를 사서 아일랜드 서부 지역의 이름을 딴 '코네마라(Connemara) 농장'으로 40여년간 가꾼 것을, 이제 계단 아래의 입구로 들어가면 나오는 비지터센터에서 만나게 되는 주인공이 1945년에 67세 때 불과 45,000달러로 구입을 한 것이다.

칼샌드버그홈 국립사적지(Carl Sandburg Home National Historic Site) 방문을 환영한다는 간판이 벽난로 위에 걸려있다. 왼편에는 아내 릴리안(Lilian)과 러브스토리를 보여주는 편지와 사진들이고, 오른편에는 뜬금없이 염소 인형 아래로 고트밀크(goat milk)를 이용한 비누와 로션을 판매하고 있는데... 여기 노스캐롤라이나 시골의 농장으로 부부가 말년에 이사를 온 이유는 아내가 염소 사육가였기 때문이란다! 물론 이미 저명인사었던 남편이 조용히 글을 쓸 수 있는 장소를 찾은 것이기도 하다.

칼 샌드버그(Carl August Sandburg, 1878~1967)는 스웨덴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13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우유 배달원, 벽돌공, 이발소 급사 등의 거친 노동을 전전하다 미국-스페인 전쟁에 참전 후 대학을 나와서 시카고 데일리 신문사의 기자가 된다. 미국 산업의 중심지였던 시카고의 거친 활력과 도시 노동자의 삶을 묘사한 시집 <Chicago Poems>를 출간해 전국적 명성을 얻은 후에 1919년에 퓰리처상 시 부문을 처음 수상하게 된다.
The fog comes
on little cat feet.
It sits looking
over harbor and city
on silent haunches
and then moves on.
<시카고 시편> 시집에 실린 그의 가장 유명한 짧은 시인 '안개(Fog)'로 대강 번역을 해보면... "작은 고양이 발로 안개가 온다. 소리없이 웅크리며 항구와 도시를 굽어보다 자리를 뜬다."

자원봉사자와 국립공원청 직원, 그리고 손님 두 명이 있었는데, 30분 정도 기다리면 저택 내부를 돌아보는 무료 투어에 참가할 수 있다고 했다. 50년 이상 저술 활동을 한 그가 소장했던 약 12,000권의 책과 많은 음반들 및 그가 연주했던 기타 등의 악기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였지만, 이 날만 여기 이후로도 2곳의 국립 공원을 더 들리는 일정이었기 때문에 그냥 지하실 반대편 공간에 꾸며놓은 작은 전시실만 둘러보기로 했다.

구석에 그의 책상을 재현해 놓았는데, 지금 확인해보니 여기는 저 의자에 앉아서 타자기를 직접 쳐볼 수 있는 체험 공간이란다. 벽에 링컨 대통령의 초상화가 걸려있는 이유는 그가 1939년까지 17년간에 걸쳐서 6권짜리 <에이브러햄 링컨> 평전을 집필해서, 그 이듬해에 퓰리처상 역사 부문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또 3명의 딸들을 위해서 기차, 팝콘, 빌딩이 등장하는 미국식 동화인 <루타바가 이야기> 시리즈 40여편을 쓰기도 했다.

역시 틀어볼 수 있는 오래된 LP 플레이어와 음반들이 책상에 놓여있고, 그 옆으로는 가족들 앞에서 기타를 치는 그의 사진이 있다. 그는 십여년간 미국 전역을 기타를 메고 떠돌며 카우보이, 부두 노동자, 흑인 노예, 군인과 죄수들에게 입으로만 전해 내려오던 약 300곡의 미국 민요를 수집해 악보와 가사를 정리해서 1927년에 <The American Songbag>을 출간하고 직접 부른 음반도 녹음했다. 그 후 자신의 시 낭송회나 강연에 항상 기타를 들고 나와 그 민요들을 노래했기에 '최초의 포크싱어' 또는 '포크 음악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시도 소개했으니 노래도 하나 들려드리면, 그가 직접 기타를 치며 부른 짧은 민요 "If I Die a Railroad Man"을 유튜브에서 들으실 수 있다. 캡션을 켜서 대강 가사를 읽어보니, 고향을 떠난 철도건설 노동자의 애잔한 마음이 느꺄지는 것 같다...

마지막 전시는 아내가 사용한 책상을 재현한 것으로 옛날 전화기 뒤로는 염소젖(goat milk) 통이, 책상 위에는 관련 서류들이 보인다. 그녀는 미시간 주에 살던 1935년에 취미로 3마리의 젖염소(dairy goat)를 키우기 시작해서, 독학으로 품종 개량을 통해 산유량을 늘리는 것에 몰두해 세계 챔피언 염소를 배출할 정도로 낙농업에 열정을 가졌다. 결국 염소가 수 백마리에 이르자 코네마라 농장으로 이사를 결정했고, 지금도 여기 축사에서 그녀가 개량한 품종의 후손 십여마리를 국립공원청 직원이 관리하고 있단다.

비지터센터를 나와서 바로 옆에 극장 및 교육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옛날 차고로 들어가봤다. 그는 여기로 이사온 후에 시 전집 <Complete Poems>를 발간해서 다시 1951년에 총 3번째 퓰리처상을 받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간이 테이블 위에 놓여진 쥬니어레인저 책자에도 염소들이 그려져 있고, 또 장난감 모형도 가져다 놓았지만... 여기서 언덕을 너머 제법 걸어가야 나오는 진짜 염소 축사까지 둘러보기에는 시간이 빠듯했기 때문에 그만 주차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집의 정면에서 내려다 본 풍경으로 멀리 개울 너머의 주차장이 나무들 사이로 살짝 보인다. 칼 샌드버그는 이 집에서 22년간 살다가 1967년에 89세로 사망하는데, 그의 아내가 부동산 전체를 정부에 매각하고 모든 유품은 기증하기로 하면서 의회의 법안 통과와 당시 린든 B. 존슨 대통령의 서명을 거쳐서 바로 이듬해에 미국 역사상 최초로 '시인(詩人)'을 기리는 국립사적지로 지정이 된 것이다.

내려올 때는 도로를 따라 계속 걸어서 주차장 안내소 겸 화장실에 들릴 수 있었는데, 제일 왼편의 여기 지도를 보면... 물론 그의 업적도 훌륭하지만, 집이 정말 공원처럼 넓어서 국립사적지로 지정이 된 것은 아닐까라는 쓸데없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원래는 제일 처음 마주쳤어야 얼굴 사진을 마지막으로 보여드리며 방문기를 마치는데, 여기 안내판과 홈페이지 등에서 칼 샌드버그를 '민중의 시인(Poet of the People)'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또 존슨 대통령이 단순히 미국의 목소리나 미국의 시인이 아니라 "그가 미국이었다(He was America)"란 찬사를 보낸 것도 유명하단다. 이렇게 전혀 몰랐던 한 시인의 업적을 기리는 장소를 떠나서, 다음은 정반대로 욕을 들어먹지만 대통령이라서 생가가 국립사적지로 지정된 곳을 찾아간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국립공원 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영화 <패트리어트>의 마지막을 장식한 전투가 실제로 벌어졌던 사우스캐롤라이나 카우펜스(Cowpens) (2) | 2026.06.16 |
|---|---|
| 미국 독립전쟁 최종 승리의 결정적 전환점이 된 1780년 10월 7일의 킹스마운틴(Kings Mountain) 전투 (0) | 2026.06.09 |
| 사우스캐롤라이나 최초 독립전쟁 전투와 막바지 포위전이 벌어졌던 나인티식스(Ninety Six) 국립사적지 (0) | 2026.05.23 |
| 독립전쟁때 대륙군의 2인자는? 노스캐롤라이나 길포드코트하우스(Guilford Courthouse) 국립군사공원 (0) | 2026.04.09 |
| 뉴욕항 입구를 지키는 게이트웨이(Gateway) 국립휴양지에 속하는 뉴저지 주의 샌디훅(Sandy Hook) 유닛 (0) | 2026.03.25 |


